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26화: 옥탑방 리턴즈와 기묘한 삼자대면
"도착했다…… 나의 소중한 안식처."
노란색 레이가 옥탑방 골목길 초입에 멈춰 서자마자, 세아는 거의 기어가듯 조수석에서 내렸다. 강남의 번쩍이는 빌딩 숲에서 벌인 지분 전쟁보다, 미소 씨의 레이 조수석에서 1시간 동안 마감 독촉 잔소리를 듣는 게 체력 소모가 훨씬 심했다.
뒷좌석에서 간신히 거구를 구겨 넣고 있던 도하 역시 문이 열리자마자 길쭉한 다리를 뻗으며 탈출했다. 구겨진 셔츠 차림이었지만, 옥탑방 골목길의 전신주 옆에 서 있는 모습조차 밀라노 길거리의 화보 같았다.
"드디어 내 척추가 제 자리를 찾는군. 윤 작가, 다시는 저 조악한 이동 수단에 나를 탑승시키지 마라."
"배부른 소리 마세요, 진우 씨! 미소 씨 아니었으면 우린 지금 강남경찰서 유치장에 있거나 데이비드 블랙한테 잡혀서 한강 구경하고 있었을 테니까."
세아가 혀를 내두르며 차 문을 닫으려는데, 운전석에서 미소 씨가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내렸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빨간색 마감 체크용 수첩이 들려 있었다.
"저기요, 두 분? 나 아직 안 갔거든요? 대기업 사장님이 현실 세계에 실체화됐다는 이 말도 안 되는 판타지는 대충 눈으로 봐서 믿겠는데, 내 마감은 판타지가 아니에요. 오늘 밤 11시. 약속하셨죠?"
"아하하…… 미소 씨, 일단 올라가서 시원한 믹스커피라도 한잔하면서 얘기해요."
세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미소 씨를 이끌고 가파른 옥탑방 계단을 올랐다. 도하는 그런 두 여자의 뒤를 묵묵히 따르며,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주총은 막아냈지만 데이비드 블랙이 이 세계의 자본을 쥐고 있는 이상, 언제 또 행정망을 흔들어 압박해 올지 모를 일이었다.
달컥-. 옥탑방 문이 열렸다.
"어머, 공간 참…… 아기자기하네. 여기서 성인 남녀 둘이 동거를 했다 이거죠?"
미소 씨가 좁아터진 방 안을 둘러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바닥에 대충 개어놓은 이불 한 채와 침대, 그리고 싱크대의 냄비들을 보며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눈치였다. 도하는 제 자리를 찾아가듯 자연스럽게 낡은 좌식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동거가 아니라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임시 체류다. 공간의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보안 면에서는 대형 행정망의 추적을 피하기에 이 누추한 곳이 최적이니까."
"우와, 말투 봐. 진짜 소설 속 강도하 사장님이 튀어나온 게 맞네. 작가님, 대단해요. 자기 이상형을 진짜 모니터에서 꺼내다니, 이건 웹소설 역사상 전무후무한 치트키예요!"
미소 씨가 감탄하며 세아의 어깨를 찰싹 쳤다. 세아는 아픈 어깨를 문지르며 노트북을 책상 위에 세팅했다.
"치트키는 맞는데,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치트키라 문제죠. 미소 씨, 이제 장난칠 시간 없어요. 데이비드 블랙이 현실의 'K-스마트 코리아' 주주들을 더 포섭하기 전에, 다음 화에서 도하 씨의 입지를 완전히 굳히는 에피소드를 써야 해요."
"당연하죠! 나도 오늘 밤은 여기서 밤샘 모니터링할 각오로 온 거니까. 자, 윤 작가님. 당장 키보드에 손 올리세요!"
미소 씨가 세아의 침대 머리맡에 털썩 앉으며 채찍질을 시작했다. 도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제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며 세아의 보조 의자를 당겨 앉았다.
"나도 돕지, 윤 작가. 다음 화 기획은 팩스턴의 취약한 보안 알고리즘을 현실에서 폭로하는 서사가 좋겠어. 내 뇌 속에 있는 K-스마트의 핵심 소스코드를 소설 속에 아주 살짝 노출하는 거다. 그럼 현실의 팩스턴 주가는 폭락할 테니까."
"오! 사장님 천재!"
미소 씨와 도하의 불타는 서포트(?) 속에, 세아는 다시금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광란의 마감 전선에 돌입했다. 한 침대에 앉은 담당 편집자와 제 옆에 바짝 붙어 숨결을 나누는 남주인공. 이 기묘한 삼자대면 속에서, 옥탑방의 밤은 뜨겁게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