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18화: 옥탑방의 소나기
독서실 퇴근길,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앗, 차가워! 기상청에서는 분명 맑다고 했는데!"
세아는 들고 있던 에코백으로 머리를 가린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우산은커녕 옥탑방 창문을 열어두고 온 것이 뒤늦게 생각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 옆에서 도하는 빗줄기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망설임 없이 제 셔츠 겉옷을 벗어 세아의 머리 위로 넓게 펼쳐 들었다.
"진우 씨?"
"뛰어, 윤 작가. 이 세계의 소나기는 자비가 없는 것 같군."
도하의 단단한 품 안으로 세아의 몸이 쏙 들어갔다. 그의 넓은 어깨가 가림막이 되어 거센 빗줄기를 막아주었다. 두 사람은 빗속을 뚫고 옥탑방 계단을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자마자, 거친 숨소리와 함께 사방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하아, 하아…… 다행이다. 창문은 조금밖에 안 열려 있었네."
세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거울을 보았다. 머리는 대충 지켰지만 어깨와 옷자락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건 도하였다. 세아에게 옷을 양보하느라 도하의 흰 셔츠는 온통 물에 젖어 살결에 척 달라붙어 있었다.
운동으로 다져진 널따란 가슴팍과 선명한 초콜릿 빛 복근 실루엣이 젖은 셔츠 너머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소설 속에서 '그리스 조각상 같은 완벽한 피지컬'이라고 침을 튀기며 묘사했던 바로 그 몸이었다.
"어…… 저기, 진우 씨. 옷이 너무 젖었는데……."
세아는 얼굴이 화끈거려 저도 모르게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깠다. 도하는 아무렇지 않게 젖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체온이 떨어지는군. 현실 세계의 몸은 면역계 관리가 까다로워."
"잠깐만요! 왜 옷을 여기서 막 벗어요?!"
"그럼 젖은 옷을 그냥 입고 있으라는 건가? 억지군."
도하가 피식 웃으며 셔츠를 완전히 벗어 던졌다. 드러난 다부진 상체와 등 근육을 마주한 세아는 결국 비명을 지르며 수건으로 제 얼굴을 가려버렸다.
도하는 그런 세아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천천히 다가왔다. 옥탑방의 낡은 전등 아래, 빗소리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방 안의 긴장감을 더했다. 도하의 시원한 손가락이 세아의 얼굴을 가린 수건을 슬그머니 걷어내렸다.
"윤 작가. 소설 속의 강도하는 눈앞에 여자가 상의를 탈의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냉혈한이었지."
"그, 그렇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설정이니까……."
"하지만 지금 현실의 나는…… 조금 다른 것 같군."
도하의 깊고 진한 눈동자가 세아의 붉어진 입술을 지시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불길이 지피는 것 같았다. 도하는 세아의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다정하게 넘겨주며,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창조주인 당신이 날 이렇게 자극적인 상황에 밀어 넣은 건가, 아니면…… 내 진짜 심장이 반응하는 건가."
귓가를 간지럽히는 도하의 숨결과 함께 두 사람의 거리가 단 1센티미터도 남지 않게 좁혀졌다. 창밖의 소나기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오직 서로의 살결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긴장감과, 제멋대로 뛰기 시작한 심장 소리만이 좁은 옥탑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