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17화: 매출의 요정, 독서실의 얼음 황태자
"여기가 요즘 난리 난 그 '독서실의 얼음 황태자'가 있는 곳이야?"
"대박, 소문이 진짜였네. 얼굴 크기 실화야? 완전 순정만화 남주잖아……."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아이비 독서실' 로비가 난데없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수험생들이 좀비처럼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지만, 최근 며칠 사이 독서실 데스크 주변은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인근 고등학교 여학생들과 고시생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도하는 검은색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자로 잰 듯 반듯한 자세로 앉아 영수증 출력을 누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한 여학생이 수줍게 월정액 회원권을 내밀고 있었다.
"저, 저기…… 총무 오빠. 내일부터 1인실로 자리 옮기고 싶은데, 남는 자리 있어요?"
"3번 방의 1인 가구가 내일 만기 예정입니다. 오전 9시 이후 행정실에서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면 최우선으로 배치해 드리지요. 그리고……."
도하가 고개를 들어 날카로우면서도 깊은 눈동자로 여학생을 똑바로 응시했다.
"학생은 올해 수험생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3일간 야간 입실률이 저조하더군요. 비즈니스든 학업이든 일관성이 생명입니다. 내일부터는 타임라인을 엄수하도록."
"악! 네! 열공할게요 오빠!"
여학생은 얼굴이 터질 듯 붉어져서는 비명을 지르며 제 열람실로 도망치듯 뛰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대기자들도 "대박, 카리스마 장난 아니다", "나도 한소리 듣고 싶어"라며 쑥덕거렸다.
"하여간 못 말려. 완전히 기업 컨설팅을 하고 계시네."
로비 구석의 정수기 뒤에서 이 진풍경을 지켜보던 세아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도하가 야간 총무를 맡은 지 고작 일주일 만에, 만년 적자에 허덕이던 아이비 독서실은 전 좌석 매진이라는 전례 없는 신화를 기록 중이었다. 원장 아주머니는 도하를 복덩이라 부르며 싱글벙글했고, 덕분에 세아와 도하의 야식 퀄리티도 나날이 상승했다.
"윤 작가. 거기서 스파이처럼 숨어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이것 좀 도와주지."
도하가 서류 뭉치를 툭툭 치며 세아를 불렀다. 세아가 눈치를 보며 데스크 안쪽으로 쏙 들어가 앉자, 주변에 있던 시선들이 일제히 세아에게 꽂혔다. '저 후줄근한 여자는 대체 누구냐'는 질투 어린 시선들이었지만 세아는 꿋꿋하게 도하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이게 뭐예요, 진우 씨?"
"이번 달 독서실 이용자들의 불만 사항과 개선 대책 보고서다. 내가 SWOT 분석 기법을 도입해 입출입 동선과 공조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정리해 봤어. 원장에게 제출할 생각이다."
"와…… 미치겠다. 시급 만 원 받는 총무가 독서실 경영 구조 개선안을 짜고 있네. 아주머니가 감동해서 독서실 지분이라도 떼어 주겠어요."
세아가 기가 막힌다는 듯 웃자, 도하의 입가에도 아주 미세하고 부드러운 호선이 그려졌다. 그 짧은 미소 하나에 주변에서 "어머, 웃었어!" 하는 소리가 작게 터져 나왔다.
"난 허투루 일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생산적인 노동을 하고 나니, 이 세계가 생각보다 꽤 살만하다는 느낌이 들어."
"그래요? 다행이네. 처음엔 옥탑방 더럽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더러운 건 지금도 여전하다. 특히 싱크대 모퉁이의……."
"아, 알았으니까 그 얘긴 조용히 해요!"
세아가 급하게 도하의 입을 제 손으로 틀어막았다. 단단하고 시원한 도하의 입술이 세아의 작은 손바닥에 부드럽게 닿았다. 찰나의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아주 팽팽하고 묘한 정적이 흘렀다.
도하는 제 입술을 막은 세아의 손목을 천천히 아프지 않게 쥐어 내렸다. 그의 깊은 눈동자가 허공에서 방황하는 세아의 시선을 단단히 붙잡았다.
"내 입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건, 이 세상에서 오직 당신 하나뿐이야. 윤 작가."
낮게 깔린 동굴 목소리가 세아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주변의 소음이 일순간에 지워지고, 데스크 안쪽의 좁은 공간에서 오직 두 사람만의 숨소리만이 선명해졌다. 자신이 쓴 소설의 주인공이자, 현실 세계의 유일한 내 편인 이 남자에게 세아의 마음은 겉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