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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16화

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16화: 사장님, 생애 첫 알바 전선에 뛰어들다

"……진우 씨. 지금 내 눈이 잘못된 거 아니죠? 저기 적힌 시급 숫자가 내가 아는 그 숫자가 맞나?"

옥탑방 골목길을 내려오던 세아가 전신주에 붙은 전단지 한 장을 가리켰다. 동네의 자그마한 독서실에서 야간 총무를 구한다는 구인 광고였다.

[업무: 야간 시간대 독서실 관리, 청소 및 면학 분위기 조성. 시급: 최저시급 준수. 우대사항: 신원 확실하고 인상 깔끔한 분.]

도하는 전단지에 적힌 액수를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자신의 매끈한 턱을 쓸어내렸다.

"현실 세계의 최저시급이란 건 참으로 소박한 수치군. 내가 K-스마트 임원들에게 분당 지급하던 기술 자문료의 소수점 첫째 자리에도 미치지 못해."
"사장님, 여긴 현실이라니까요? 지금 우리에겐 무기명 채권보다 당장 오늘 저녁에 먹을 햇반과 계란 한 판이 더 시급해요. 그 완벽한 인상으로 독서실을 장악해 보는 건 어때요? 마침 신분증도 '강진우'로 완벽하게 준비됐잖아요!"

세아의 끈질긴 설득 끝에, 도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 속에서 단 한 번도 이력서라는 것을 써본 적 없는 남주인공이, 현실의 생계를 위해 생애 첫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가게 된 것이다.

5분 후, 동네 '아이비 독서실'의 원장실.

푸근한 인상의 쉰 대 원장 아주머니는 도하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들고 있던 믹스커피 종이컵을 떨어뜨릴 뻔했다. 허름한 면바지에 흰 셔츠 하나만 걸쳤을 뿐인데, 원장실의 낡은 플라스틱 의자가 마치 최고급 이태리 가죽 소파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어머…… 총각. 아르바이트하러 왔다고?"
"강진우라고 합니다. 야간 시간대의 면학 분위기 통제 및 시설 관리에 필요한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자 지원했습니다."

도하가 면접용 비즈니스 톤으로 지나치게 엄숙하게 답변하자, 원장 아주머니는 입을 벌린 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깊고 신뢰감 넘치는 동굴 목소리와 조각 같은 얼굴이 이미 '합격'을 외치고 있었다.

"어머, 어머! 우리 독서실에 딱 필요한 인재네! 요즘 애들이 밤에 자꾸 부스럭거리고 시끄러웠는데, 총각이 저기 데스크에 앉아있기만 해도 애들이 무서워서…… 아니, 집중해서 공부가 아주 잘되겠어! 당장 오늘 밤부터 출근할 수 있지?"
"계약 조건만 명확하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도하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악수를 청하자, 원장 아주머니는 수줍게 웃으며 그의 단단한 손을 맞잡았다. 뒤에서 몰래 구경하던 세아는 소리 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완벽한 피조물이 제 밥벌이를 시작한 것이다.

그날 밤 10시. 독서실 총무석에 앉은 도하의 곁으로 세아가 야식을 슬쩍 배달하러 찾아왔다.

"진우 씨! 첫 출근 축하해요! 어때요, 할 만해요?"

데스크에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CCTV 모니터를 매섭게 응시하는 도하의 포스는, 독서실 총무가 아니라 무슨 국가정보원 상황실장 같았다.

"업무 강도는 최하 수준이다만, 생각보다 흥미롭군. 조금 전 3번 방에서 과자를 몰래 먹던 수험생과 7번 방에서 스마트폰으로 딴짓을 하던 학생에게 가벼운 '경고 조치'를 취했다. 내 눈과 마주치자마자 사르르 떨며 책에 코를 박더군."
"아휴, 독서실 애들 잡겠네, 잡겠어. 살살 해요, 사장님."

세아가 쿡쿡 웃으며 도하의 책상 위에 따뜻한 캔커피를 올려두었다. 도하는 캔커피의 온기를 느끼며 세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윤 작가."
"네?"
"누군가를 위해 내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바라는 삶이란…… 묘하게 신선하군. 소설 속 강도하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가졌기에 이 성취감을 몰랐어. 나에게 이런 생소한 경험을 시켜준 것에 대해…… 조금은 고맙게 생각한다."

은은한 독서실 스탠드 조명 아래에서, 도하가 세아를 향해 아주 부드럽고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설 속의 냉혈한 사장님이 아닌, 오직 현실 세계의 세아 앞에서만 보여주는 진짜 강진우의 얼굴이었다. 세아는 심장이 또다시 통제 불능으로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만의 작은 현실 적응기는, 생각보다 훨씬 달콤하고 알콩달콩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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