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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13화

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13화: 적대자의 서막

도서관의 퀴퀴한 책 냄새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세아는 도하가 덮어버린 시사 잡지를 떨리는 손으로 다시 펼쳤다.

[글로벌 보안 기업 '팩스턴(Paxton)', 아시아 시장 진출 본격화…….]

기사 면에 인쇄된 푸르스름한 기업 로고는 세아가 <퍼펙트 라이프> 8화에서 묘사했던 ‘먹이를 노리는 매의 날개’ 형상과 소름 끼치도록 일치했다. 실존하는 기업 '백스턴'의 이름을 살짝 비틀어 소설 속 악덕 기업으로 창조해 낸 빌런 세력이 진짜 현실 세계의 거대 자본이 되어 지면에 박혀 있는 것이다.

"말도 안 돼…… 강도하가 현실로 나온 것도 모자라서, 내가 만든 가짜 빌런 회사까지 현실에 존재한다고?"
"존재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윤 작가."

도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잡지를 가리켰다. 그의 목소리는 도서관의 백색소음마저 얼려버릴 만큼 차가웠다.

"이 기사의 발행 연도를 봐."

세아는 서둘러 잡지 표지로 시선을 돌렸다. 발행일은 정확히 현재 시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사 본문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던 세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팩스턴'은 최근 국내 IT 벤처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합병(M&A)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특히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팩스턴의 최종 목표는 국내 토착 대기업의 핵심 보안 기술 유출 및 말살인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건…… 내가 다음 주 연재분으로 구상하던 스토리라인인데?"
"그래. 당신이 머릿속으로 집필을 준비하거나 소설에 반영하는 순간, 이 세계의 현실도 그에 맞춰 변형되고 있다는 뜻이지. 만약 내가 이 세계로 도망쳐 온 것처럼, 내 세계의 적대자인 '팩스턴의 수장' 역시 이 세계 어딘가에 실체화되어 있다면?"

도하의 예리한 분석에 세아는 숨이 턱 막혔다.

자신이 연재를 이어갈 때마다 현실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진다면, 앞으로 소설 속에서 도하를 위협하는 위기들이 현실에서 고스란히 그를 덮칠 터였다. 반대로 연재를 멈추면 도하는 물론 세아 역시 독자들과 플랫폼으로부터 계약 위반으로 파멸하게 된다. 진퇴양난이었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해요? 소설을 휴재해야 하나?"
"아니. 비즈니스에서 후퇴는 가장 어리석은 방어책이다. 오히려 정면 돌파를 해야지."

도하가 세아의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이 내 기술과 자산을 노리고 이 세계까지 침식해 들어온다면, 나 역시 이 세계에서 내 기반을 다져야 해. 가짜 신분증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짜 자금이 필요해."
"자금이라니요? 우리 전 재산은 어제 삼겹살 먹고 남은 잔고가 전부라니까요?"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 능력을 보여주지."

도하가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세아의 노트북을 제 앞으로 당겼다. 그리고 세아의 명의로 된 모의 주식 투자 사이트와 합법적인 프리랜서 구인 플랫폼을 빠른 속도로 훑기 시작했다.

"윤 작가. 당장 내일부터 날 데리고 'K-스마트'의 현실 변형 판인 'K-스마트 코리아'의 지사 근처로 간다."
"거긴 왜요?"
"내 비밀 금고의 보안 코드가 이 세계의 시스템에서도 작동하는지 확인해야겠어. 만약 내 예상대로라면, 현실의 행정망 깊은 곳에 내 '비자금' 역시 설정되어 있을 테니까."

무일푼 회색 추리닝 백수에서, 순식간에 반격을 준비하는 냉철한 CEO로 돌아온 도하의 모습에 세아는 넋을 잃었다. 소설 속 남주인공의 카리스마는 현실에서도 유효했다.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제 옆에서 든든하게 지휘봉을 잡은 도하의 옆모습을 보며 세아는 이상하리만치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것은 공포가 아닌, 이 완벽한 남자와 함께라면 그 어떤 거대한 소설 속 위기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묘한 설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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