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는 휴재 중입니다만?

11화: 첫 고료 그리고 삼겹살 파티
"으아아아아! 마감 끝!"
세아는 양팔을 하늘 높이 뻗으며 의자 뒤로 홀라당 넘어갔다. 연참 분량을 무사히 넘긴 모니터 화면에는 '다음 화 예약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화면 구석의 시계는 어느덧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수고했군, 윤 작가."
언제 가져갔는지 세아의 소중한 맥심 모카골드 커피를 종이컵에 타서 홀짝이던 도하가 나지막하게 칭찬을 건넸다. 소설 속 묘사대로라면 최고급 블루마운틴 원두만 고집해야 할 남자였으나, 어느새 믹스커피의 '프림과 설탕의 황금비율'에 완벽하게 길들여진 모습이었다.
띵동-.
그때 세아의 스마트폰으로 경쾌한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OO은행 입금: 1,200,000원 (OO플랫폼 작가고료)]
"와! 들어왔다, 들어왔어!"
세아는 침대 위로 뛰어올라 방방 뛰기 시작했다. 지난달 피와 살을 갈아 넣었던 유료 연재분의 정산금이 통장에 꽂힌 것이다. 통장 잔고가 세 자릿수로 불어난 것을 확인한 세아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도하는 침대 위에서 날뛰는 세아를 흥미롭다는 듯, 한편으로는 조금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겨우 백 이십만 원에 그렇게 이성을 잃는 건가? 내 하루 품위유지비도 안 되는 금액이다만."
"어허, 강진우 씨! 현실 세계의 백 이십만 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모르는 모양인데, 이건 옥탑방 한 달 월세와 한 달 식비를 책임지는 거룩한 돈이라고요! 그리고 돈 벌었으면 뭐다?"
"뭐지?"
"고기다!"
세아는 도하의 팔통을 꽉 쥐고 옥탑방 문을 박차고 나갔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동네 작은 정육점 옆에 붙은 허름한 드럼통 삼겹살집이었다. 사방에 매연처럼 번진 삼겹살 기름 냄새와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로 시끌벅적한 곳이었다. 도하는 들어서자마자 옷에 냄새가 밸 것 같다며 미간을 찌푸렸지만, 세아가 강제로 둥근 철제 의자에 그를 앉혔다.
"여기 삼겹살 3인분하고 소주 한 병, 사이다 한 병 주세요!"
"난 알코올은 취급하지 않는다. 뇌세포를 파괴하는 효율적이지 못한 음료야."
"누가 도하 씨 준대요? 소주는 내 거고, 도하 씨는 사이다나 드세요."
치이이익-.
달구어진 불판 위에 두툼한 삼겹살이 올라가자 예술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아가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구우려 하자, 도하가 자연스럽게 집게와 가위를 빼앗아 들었다.
"비켜봐. 비즈니스의 기본은 화력 조절과 타이밍이다. 고기 굽기도 예외는 아니지."
"오…… 역시 K-스마트 사장님의 마인드셋?"
도하는 서툰 솜씨인 듯하면서도 예리한 눈썰미로 고기가 가장 맛있게 익는 순간을 포착해 정확하게 가위질을 해댔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삼겹살 한 점을 도하가 세아의 앞접시에 툭 얹어주었다.
"먹어보지."
"잘 먹겠습니다!"
상추에 고기 두 점, 구운 마늘에 쌈장까지 야무지게 얹어 입이 터져라 쌈을 싸 먹는 세아를 보며, 도하는 묘한 흡족함을 느꼈다. 자신도 고기 한 점을 기름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육즙과 숯불 향에 도하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나쁘지 않군. 아니, 꽤 훌륭해."
"그쵸? 이게 바로 현실 세계의 진짜 행복이에요. 맨날 소설 속에서 스테이크만 썰어대니까 이런 서민의 맛을 몰랐지."
세아는 소주를 한 잔 들이켜며 캬 소리를 냈다. 발그레해진 세아의 뺨을 보던 도하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윤 작가. 소설 속의 나는 정말로 행복했나?"
"네? 그야…… 돈도 많고 잘생겼고 다 가졌으니까 행복했겠죠?"
"아니. 난 늘 공허했어. 당신이 써 내려간 텍스트의 명령대로 움직여야 했고, 누구에게도 진심을 털어놓을 수 없었으니까. 주위에 사람은 많았지만 전부 내 배경만 보더군."
도하가 사이다 잔을 만지작거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소설 속 차가운 사장님의 완벽한 가면 뒤에 숨겨진 진짜 외로움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세아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신이 자극적인 전개를 위해 만들었던 그의 외로운 서사가 현실의 아픔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세아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도하의 단단한 손등 위에 제 손을 포개었다.
"도하 씨…… 아니, 진우 씨. 여기서는 소설의 명령 같은 거 없어요. 그러니까…… 여기 있는 동안만큼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내가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줄게요."
도하는 제 손등 위에 얹어진 세아의 작고 따뜻한 손을 내려다보았다. 시끌벅적한 삼겹살집의 소음이 순간 멀어지고, 오직 세아의 따뜻한 눈빛만이 그의 세상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