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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 고쳐야 사는 보건교사3화

평판 고쳐야 사는 보건교사

평판 고쳐야 사는 보건교사

3화: 역할은 줄 앞에서 돌아온다

체육관 바닥에 줄이 다시 생겼다.

줄은 곧 믿음의 모양이었다. 앞에 선 학생들은 조은별의 국자를 보았고 뒤에 선 학생들은 앞사람이 죽을 받아 삼키는지부터 살폈다.

윤서하는 배급대 옆에 찢은 골판지를 세웠다.

물 한 컵. 묽은 죽 반 국자. 알레르기 대체식은 담임 확인.

오하린은 그 아래에 반별 명단을 붙였다. 손끝이 떨렸지만 글씨는 반듯했다.

"반 대표만 앞으로 나와 주세요. 받은 시간과 컵 개수 적겠습니다."

문재익이 명단 쪽으로 다가왔다. 행정실에서 가져온 얇은 파일을 품에 끼고 있었다.

"학생 개인정보가 섞일 수 있습니다. 배급 기록을 학생회가 단독으로 들고 있으면 나중에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보건실 사본과 행정실 사본을 따로 둡니다."

서하가 말했다.

"지금은 배급을 멈추지 않습니다."

"장부 대조 전입니다."

"대조는 진행합니다. 식사는 기다리지 못합니다."

문재익은 더 말하지 않았지만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는 절차를 걱정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 뒤의 계산까지는 아직 증명할 수 없었다.

조은별은 커다란 냄비 앞에서 쌀을 손으로 골랐다. 멀쩡한 쌀은 많지 않았다. 찢어진 포대에서 흘러나온 쌀에는 유리 가루와 먼지가 섞여 있었다.

"바닥 쌀은 못 써. 씻어도 유리 조각은 애들 입 안 찢어."

하린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양이 모자라지 않나요?"

"모자라지. 그래서 반 국자야."

은별은 물통을 두드렸다.

"물 많이 잡고 오래 끓여. 죽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속 비우고 버티는 데는 그게 나아. 소금은 조금만. 짜게 먹이면 물 더 달라고 난리 난다."

줄 끝에서 누군가 중얼거렸다.

"쌀 숨긴 사람이 양 적다고 하면 누가 믿어."

은별의 손이 멈췄다.

서하는 그 학생을 바로 꾸짖지 않았다. 대신 배급판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쌀 포대 절단자는 미확인. 조은별 동선과 포대 위치 불일치.

"확인된 사실만 기록합니다. 불만도 기록할 수 있습니다. 대신 이름을 붙여 말하세요."

학생은 입을 다물었다.

그때 급식실 쪽에서 낮은 기계음이 꺼졌다. 냉동창고 전원이 한 번 더 죽은 소리였다.

은별이 욕을 삼켰다.

"저거까지 나가면 고기 다 버려."

강도윤이 체육관 문을 막은 채 고개를 돌렸다.

"급식실로 다시 나가는 건 위험합니다. 복도 소리가 많아졌습니다."

"소리 줄이고 가야죠. 저 안에 오늘 먹일 게 있는데."

은별은 국자를 내려놓고 앞치마 끈을 다시 묶었다. 도망가려는 사람의 동작이 아니었다.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사람의 동작이었다.

서하의 손목이 뜨거워졌다.

역할 복귀 확인 중.

문구는 흐렸지만 아직 남아 있었다.

"셋만 갑니다. 은별 조리사님은 식재료 상태만 확인하고 바로 돌아옵니다. 도윤 씨가 앞. 민재는 전원 차단함만 봐."

농구대 아래에 있던 백민재가 고개를 들었다.

"저는 언제부터 전기 기사였죠?"

"전선이 살아 있는지 보는 사람."

"그건 더 싫은데요."

민재는 투덜거리면서도 작은 배터리와 손전등을 챙겼다.

급식실 앞 복도에는 새벽보다 짙은 냄새가 고여 있었다. 젖은 쌀과 식은 기름 냄새 뒤에 안개 특유의 탄 플라스틱 냄새가 섞였다.

도윤은 소화기 핀을 뽑지 않은 채 들고 걸었다.

"발소리 줄이세요."

복도 끝 계단 아래에서 무언가 벽을 긁었다.

집에.

아주 작은 소리였다.

은별은 숨을 멈추고 급식실 안으로 들어갔다. 냉동창고 표시등은 꺼져 있었다. 민재가 배전함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스위치가 내려간 게 아니에요. 누가 테이프로 반쯤 걸어 놨어요. 흔들리면 끊기게."

"실수?"

서하가 물었다.

민재가 비웃었다.

"실수로 테이프를 이렇게 접어서 붙이면 예술 점수는 높겠네요."

은별은 냉동창고 문을 조금 열었다. 찬 김이 약하게 새어 나왔다.

"아직 버틸 수 있어. 고기는 뒤로 미뤄. 먼저 삶은 콩하고 채소 써."

"아침 죽에는요?"

"콩은 으깨서 조금만. 씹을 힘 없는 애들도 있어. 냄새 세게 나면 복도 놈들도 달려들 테니까 기름 쓰지 말고."

그 말은 거칠었지만 정확했다. 서하는 수첩에 적었다.

전원 차단함 테이프. 냉동창고 약냉. 삶은 콩 우선. 기름 사용 금지.

민재가 배전함 안쪽을 손전등으로 비췄다.

"여기 벽지 뒤에 뭐 붙어 있는데요."

서하가 다가가려는 순간 계단 아래에서 긁는 소리가 커졌다.

"집에. 집에."

도윤이 낮게 말했다.

"돌아갑니다."

민재는 벽지 틈을 더 보려다 손을 뗐다.

"나중에요. 저거한테 물려서 죽으면 장부고 뭐고 없으니까."

체육관으로 돌아오자 문재익이 행정실 파일을 펼쳐 놓고 있었다. 파일철 모서리는 젖어 있었고 안쪽 종이는 급히 뜯어 온 듯 삐뚤었다.

"보관 장부입니다."

서하는 파일을 받아 급식 장부와 나란히 놓았다.

빈 줄은 행정실 장부에도 있었다.

하린이 숨을 들이켰다.

"원본에도 비어 있으면 조리사님 장부 실수가 아니라는 뜻인가요?"

"원본이라는 말은 아직 조심해야 해."

서하는 종이를 빛에 비추었다. 지워진 자리에는 식재료 단위처럼 보이는 글자가 아니었다. 숫자와 반 표기가 섞인 흔적이 남아 있었다.

2-B

그 뒤는 문질러져 있었다.

문재익이 파일을 회수하려 했다.

"학생 자료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공개하면 안 됩니다."

서하는 손을 떼지 않았다.

"사진 찍고 돌려드리겠습니다. 공개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본이 늘어나면 통제가 안 됩니다."

"사본이 없으면 책임도 사라집니다."

체육관의 시선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은별에게만 가지 않았다. 문재익의 파일과 서하의 휴대폰과 하린의 명단 사이에서 머뭇거렸다.

은별은 냄비를 저었다.

"말 길게 할 시간 없어. 받아 갈 사람 앞으로 와."

아무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은별이 숨을 들이마셨다.

"나 숨긴 거 있다. 그건 내가 잘못했다. 알레르기 있는 애들 이름 안 팔겠다고 혼자 챙겼어. 다음부터는 보건실하고 학생회가 같이 확인해."

그녀는 국자를 들어 냄비 바닥을 긁었다.

"근데 쌀 훔친 적은 없어. 훔쳤으면 이런 묽은 죽부터 안 끓여. 애들 씹을 것도 없이 배 채우는 게 얼마나 성질나는지 아냐?"

짧은 침묵 뒤에 한 1학년 담임이 앞으로 나왔다.

"저희 반부터 받겠습니다."

은별은 종이컵에 죽을 담았다.

"뜨겁다. 뛰지 마. 컵 버리지 말고 이름 써."

첫 컵이 넘어갔다.

두 번째 컵도 넘어갔다.

서하는 손목을 보았다. 검은 균열 같은 글자가 조금 더 옅어졌다. 아직 마지막 한 조각이 남아 있었다.

배급은 천천히 이어졌다. 하린은 컵 개수를 적고 학생회 두 명에게 중복 줄을 막게 했다. 민재는 체육관 문 근처에서 배터리를 잡고 CCTV 정지 화면을 보존했다. 도윤은 복도 소리가 커질 때마다 손을 들어 줄 전체를 멈췄다.

은별은 누구에게도 큰 소리로 이름을 묻지 않았다. 담임에게 작은 종이를 받아 대체식 봉투를 건넸다.

"표시 스티커 붙은 애들만. 남으면 나중에 다시 계산한다."

그때 작은 아이 하나가 앞으로 밀려 넘어졌다. 손에 든 컵이 바닥에 떨어졌다. 묽은 죽이 운동화 사이로 퍼졌다.

"아!"

뒤쪽에서 누군가 화를 냈다.

"아깝게 뭐 하는 거야!"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려 했다.

은별이 먼저 걸어 나왔다. 모두가 그녀의 입을 보았다. 거친 말이 나올 자리였다.

은별은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다쳤어?"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네가 할 일 있어. 여기 휴지로 먼저 막아. 미끄러지면 세 명 더 넘어진다."

"제 거는요?"

"다시 줄게. 대신 네 컵은 오늘 마지막 새 컵이다."

은별은 주변을 보았다.

"들었지? 컵 버리는 사람은 다음부터 자기 손으로 씻어. 물은 밥보다 귀해."

이번에는 웃음이 조금 더 분명하게 퍼졌다. 아이는 훌쩍거리며 바닥을 닦았다.

서하의 손목에서 열이 사라졌다.

문구가 풀리듯 흩어졌다.

내일 지급.

그 아래에 아주 작은 문장이 떠올랐다.

냉동창고 보조 전원. 북쪽 벽 두 번째 스위치.

서하는 숨을 오래 내쉬었다. 성공이라는 말은 없었다. 용서라는 말도 없었다. 다만 은별은 다시 배급대 앞에 서 있었고 사람들은 그녀에게 컵을 내밀고 있었다.

서하는 그 차이를 기억하기로 했다.

배급이 끝날 무렵 은별은 빈 냄비 바닥을 긁었다.

"점심은 장담 못 해. 냉동창고부터 살려야 해."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서하는 하린에게 기록판을 맡기고 급식실로 향했다. 도윤이 말없이 따라붙었다. 민재도 배터리를 주머니에 넣고 뒤따라왔다.

"왜요. 북쪽 벽이라도 보시게요?"

서하는 멈췄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급식실 보조 전원은 보통 북쪽 벽에 있잖아요. 제가 천재라서 아는 게 아니라 건물이 그렇게 생겼다고요."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급식실 북쪽 벽 두 번째 스위치는 선반 뒤에 가려져 있었다. 은별 혼자서는 평소에도 손이 닿기 어려운 위치였다.

스위치를 올리자 냉동창고 표시등이 약하게 켜졌다.

그리고 스위치 옆 벽지 틈에서 젖은 종이 조각 하나가 떨어졌다.

민재가 먼저 손전등을 비췄다.

찢긴 장부 조각이었다.

식재료 이름은 없었다.

젖어 번진 글자 사이에 한 줄만 남아 있었다.

2-B 상담 이관

서하는 그 문장을 보며 손목을 감쌌다.

첫 아침은 지나갔다.

하지만 누군가는 처음부터 쌀이 아니라 사람의 이름을 지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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