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9화: 사라진 스마트폰
욕실 문 너머의 그 기괴한 노크 소리는 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멈췄다.
도윤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방구석에 웅크려 있었다. 밖에서는 빗줄기가 가늘어지다 마침내 그쳤지만, 그의 내면은 여전히 차가운 얼음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날이 밝아 창문 틈새로 붉은 아침 햇살이 스며들자, 도윤은 겨우 굳은 몸을 움직였다.
조심스럽게 욕실 문을 열었다.
거울은 평범하게 도윤의 휭뎅그렁한 몰골을 반사하고 있었고, 손자국도, 창문 너머의 검은 그림자도 온데간데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밤의 공포를 지워주지는 못했다. 가짜는 도윤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안식처인 자취방의 경계선 바로 밑바닥까지 잠식해 들어와 있었다.
도윤은 정신을 가다듬고 책상으로 걸어갔다. 어제 랩실에서 회수한 헬름홀츠 코일 장비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중, 책상 서랍의 위화감을 포착했다.
서랍이 미세하게 열려 있었다.
도윤은 서랍을 끝까지 잡아당겼다. 보관함 안쪽을 뒤적이던 그의 손길이 뚝 멈췄다.
"……없어."
서랍 가장 안쪽에 항상 고무줄로 묶어 보관해 두던 구형 스마트폰이 사라졌다.
그것은 도윤이 군대에 가기 전까지 사용하던 스마트폰으로, 액정은 조금 깨졌지만 실험용 데이터 송수신 장치나 예비용 공기계로 자주 활용하던 물건이었다. 특히 그 폰에는 도윤의 오래된 클라우드 계정 정보와 대학 입학 이후의 사적인 사진,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의 옛 연락처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도윤은 다급하게 방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침대 매트리스를 들어 올리고, 책장 사이를 훑고, 쓰레기통까지 비웠지만 폰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도윤은 서둘러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었다. 그리고 고글(Goggle) 계정의 '내 기기 찾기' 서비스에 접속했다.
마우스 패드를 조작하는 그의 손가락 끝이 가볍게 경련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분실된 스마트폰의 기기명을 클릭했다. 화면의 지도가 빠르게 축소되더니 서울 지도를 거쳐 한서대 인근 골목길을 핀포인트로 가리켰다.
[ 실시간 위치 추적 중... ]
[ 기기 위치: 서울시 마포구 창천동 302호 내부 ]
"방 안에 있다고?"
노트북 화면의 초록색 동그라미는 도윤이 지금 앉아 있는 이 원룸의 한가운데를 정확히 정조준하고 있었다.
오차 범위는 불과 5미터 내외.
도윤은 다시 한 번 방 안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액정이 깨진 구형 스마트폰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침을 삼키며 노트북 화면의 [ 기기 벨소리 울리기 ] 버튼을 클릭했다. 이 기능을 실행하면 무음이나 진동 모드로 설정되어 있어도 5분간 최대 볼륨으로 벨소리가 울려야 했다.
클릭.
띠리링-. 띠리링-.
방 안에 희미한 기계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도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의 근원지를 추적했다. 소리는 옷장도, 침대 밑도, 책상 서랍 내부도 아니었다.
소리가 나는 곳은 믿을 수 없게도, 책상 위에 놓인 싱크로 장치 바로 옆,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중의 허공이었다.
띠리링-. 띠리링-.
도윤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 허공을 더듬었다.
손바닥에는 차가운 공기의 흐름 외에는 아무런 물리적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소리는 그 빈 공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 너머에 스마트폰이 놓여 있는 것처럼, 음파가 차원의 틈새를 비집고 이쪽 차원으로 새어 들어오고 있는 기이한 중첩 현상이었다.
"가져갔어…… 저쪽 세계의 내가."
도윤은 싱크로 장치의 다이얼을 잡았다.
어젯밤 전원을 강제로 차단했던 기계의 플러그를 꽂고, 조심스럽게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지이이이잉-.
OLED 디스플레이가 켜지며 수치들이 깜빡였다. 주파수를 842.115 THz에 동조시키고 위상 조절 다이얼을 미세하게 비틀었다. 화면의 노이즈가 깔끔하게 정렬되며 스피커를 통한 하울링음이 삐- 하고 울리다 잦아들었다.
동시에, 도윤의 메인 스마트폰의 화면이 번쩍이며 알림음이 울렸다.
카톡!
메신저 앱에 알림이 떠 있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공란이었지만, 프로필 사진은 공포스럽게도 현재 도윤이 사용하고 있는 것과 완벽히 동일한 사진이었다.
도윤은 바르르 떨리는 손가락으로 메신저 대화방을 열었다.
[ 너 스마트폰 비밀번호 너무 쉽더라. 네 생일인 1007에 뒤 네 자리 번호 조합하니까 바로 열리던데? ]
타이핑된 텍스트가 실시간으로 화면에 툭툭 찍혔다.
[ 폰에 별 쓸데없는 공학 데이터만 가득해서 재미없었는데, 사진첩이랑 예전 메신저 기록 보니까 꽤 흥미롭더군. ]
도윤은 타이핑을 시작했다.
"누구야. 너 내 폰으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거의 비명에 가까운 타이핑이었다. 잠시 후, 반대편에서 즉각적인 답장이 도착했다.
[ 이 세계에는 이런 최신 터치스크린 스마트폰이 없거든. 기술 붕괴가 일어난 차원이라 무전기 같은 뚱뚱한 전화기만 쓰고 있었단 말이지. 덕분에 문명적인 물건 잘 만져본다. ]
이어 전송된 것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사진은 도윤의 구형 스마트폰 화면을 캡처한 것이었다. 화면에는 진짜 도윤의 어머니 성함과 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병원 주소, 그리고 강민아와 나눈 사소한 일상 대화 캡처본이 펼쳐져 있었다.
[ 임창석, 김희자. 부모님 성함 맞지? 아버지는 만성 신부전증으로 남도병원 투석실에 계시네. 그리고 강민아라는 그 단발머리 여자애…… 네가 은근히 짝사랑하고 있는 동기 맞지? 아주 다정하게 톡을 주고받았던데. ]
도윤은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극심한 공포와 분노를 느꼈다.
가짜는 단순히 도윤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것을 넘어, 그의 사생활과 대인관계, 심지어 가족의 약점까지 샅샅이 분석하고 파고들고 있었다. 진짜 임도윤의 삶을 완벽하게 모방하고 대체하기 위한 최종 분석 단계를 밟고 있는 것이었다.
"그만둬, 미친 새끼야! 우리 가족이랑 민아는 건드리지 마!"
도윤이 스마트폰 액정이 깨질 듯 거칠게 입력했다.
그러자 스피커 너머에서, 가짜 도윤의 음성이 변조된 노이즈를 타고 흘러나왔다.
- 그만두라고?
가짜의 목소리는 한층 조롱 섞인 톤으로 울렸다.
- 내가 있던 세계의 경찰들이 벌써 네 냄새를 맡고 이 차원 틈새 주변을 지키고 있어. 난 그 지옥 같은 곳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거든. 난 네가 될 거야, 도윤아.
"내가 널 경찰에 신고할 거야! 네가 살인마라는 거 다 폭로할 거라고!"
- 신고? 누구한테? 경찰이 평행 우주에서 온 도플갱어가 살인마라는 네 말을 믿어줄 것 같아? 이미 이쪽 세계 사람들은 널 조교를 패고 편의점에서 행패 부린 미치광이로 보고 있는데?
스피커 너머의 가짜는 소름 끼치도록 영악하게 진짜 도윤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 폰 고맙게 잘 쓸게. 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아주 다정하게 연락을 돌려둘 테니 걱정하지 마.
뚝.
메신저의 접속이 끊어지고 싱크로 스피커는 다시 침묵에 빠졌다.
도윤은 스마트폰을 쥔 채 바들바들 떨었다. 가짜의 위협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었다. 당장 오늘부터, 가짜 도윤은 진짜 도윤의 이름과 정보를 이용해 부모님과 민아에게 접근하기 시작할 것이다.
가짜가 파놓은 늪의 입구가 그를 집어삼키기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