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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너머의 침입자7화

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7화: 뒤바뀐 기억

"억!"

도윤은 반사적으로 뒤로 넘어지며 실험대 모서리를 붙잡았다. 차가운 타일 바닥으로 주저앉은 그의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암흑 속에서 손전등의 좁은 불빛만이 허공을 갈팡질팡 찔러댔다.

벅, 벅, 벅.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코앞에서 멈췄다. 도윤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끝이라는 공포가 머릿속을 하얗게 비웠다.

"어이, 학생. 여기서 뭐 해?"

걸걸하고 칼칼한 목소리.

도윤이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손전등 불빛 너머로 익숙한 남색 경비원 제복을 입은 나이 지긋한 아저씨의 얼굴이 보였다. 경비 아저씨는 한 손에 진압용 곤봉을 든 채 혀를 차고 있었다.

"아…… 경비 아저씨."

"이 밤중에 불 다 꺼놓고 뭐 하는 거야? 방금 이 건물 전체 차단기가 내려가서 발전기 도는 소리에 올라와 봤더니만. 대학원생들은 다 퇴근했다며?"

"아, 예. 그게…… 실험 장비 전원을 만지다가 과부하가 걸렸나 봐요. 죄송합니다."

도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대답했다. 다리가 풀려 혼자 힘으로 일어서기도 힘들었다. 경비 아저씨의 부축을 받아 겨우 일어난 도윤은 서둘러 짐을 챙겼다. 붉은 진흙과 피 묻은 영수증 조각은 이미 주머니 속에 쑤셔 넣은 뒤였다.

"쯧쯧, 조심해야지. 기계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네. 얼른 정리하고 퇴근해."

"예, 죄송합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도윤은 도망치듯 공학관 건물을 빠져나왔다.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그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자취방으로 돌아온 도윤은 문걸이를 걸어 잠그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환청이나 환각이 아니었다. 주머니 속의 붉은 흙과 영수증 조각의 까칠한 촉감이 손끝에 선명했다. 가짜는 이미 경계를 흔들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눈을 뜬 도윤은 지독한 두통에 시달렸다. 찬물로 대충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취방 앞 골목길에 있는 편의점 '성송24'로 향했다. 매일 아침 삼각김밥과 캔커피를 사며 안면을 튼 아르바이트생 '지호'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을 시간이었다.

딸랑.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운터에 서 있던 지호가 도윤을 보더니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평소라면 "일찍 나오셨네요" 하며 살갑게 건네던 인사말 대신, 극도로 경계하는 차가운 눈빛이 도윤을 맞이했다.

도윤은 위아래로 훑어보는 그의 시선이 어색해 대충 캔커피 하나를 집어 들고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계산해 주세요."

"……어제 일은 사과 안 하시는 건가요?"

지호가 카드를 건네받지 않은 채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도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제요? 어제 무슨 일 있었나요?"

"장난치지 마세요, 손님."

지호의 목소리에 노골적인 분노와 두려움이 섞여 들었다.

"어제 새벽 2시쯤에 후드 푹 눌러쓰고 들어오셔서 반말로 담배 던지라고 소리 지르셨잖아요. 카드 한도 초과 나오니까 편의점 매대를 발로 차고 저한테 쌍욕까지 퍼부으셨으면서, 이제 와서 기억 안 나는 척 발뺌하시는 거예요?"

"네? 제가요? 그럴 리가요. 전 어제 밤새 방에만 있었는데요……."

"여기 CCTV 다 찍혀 있어요! 경찰에 신고하려다가 평소 자주 오시던 분이라 참은 건데, 진짜 뻔뻔하시네. 다신 우리 매장 오지 마세요."

지호는 캔커피를 거칠게 봉투에 담아 던지듯 건넸다. 도윤은 멍한 얼굴로 편의점을 쫓겨나듯 나왔다.

머릿속이 징 소리를 낸 것처럼 웅웅거렸다. 새벽 2시. 자신은 분명 방 안에서 공포에 질려 불을 끄고 누워 있었다. 몽유병인가? 아니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다중인격이라도 발현된 것인가?

혼란은 대학교 캠퍼스에 도착하자 극에 달했다.

과방에 들어서자마자 동기들의 시선이 일제히 도윤에게 쏠렸다가, 이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제까지 살갑게 인턴 걱정을 해주던 민우마저 도윤을 피하듯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도윤은 민우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았다.

"민우야. 무슨 일 있어? 애들 표정이 왜 저래?"

민우는 도윤의 손을 슬그머니 뿌리치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윤아, 너 진짜 왜 그러냐? 아무리 졸업 연계 인턴 때문에 예민하다고 해도 그렇지……."

"내가 뭘 어쨌는데?"

"모르는 척하지 마. 너 어제 저녁에 학생회관 앞 계단에서 전자과 조교인 지훈 형 멱살 잡고 협박했다며. 내 졸업 승인 방해하면 가만 안 두겠다고,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쳤다며? 지나가던 애들이 다 봤어."

도윤의 머리가 둔기로 얻맞은 듯 띵했다.

"멱살을 잡았다고? 내가 지훈 형을? 아니야, 난 어제 10시 넘어서 랩실에 있었고, 그전에는 세미나실에 있었어. 그럴 시간이……."

"조교 형 코뼈 내려앉을 뻔했다고 난리야. 학과 사무실에 공식 제소하겠다는 거 민아가 겨우 말리고 있어. 너 평소에 얌전하던 애가 왜 갑자기 깡패처럼 굴어? 무섭게 진짜……."

민우는 진저리를 치며 과방을 나가버렸다.

도윤은 다리가 풀려 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변에 남은 동기들의 수군거림이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그의 고막을 찔렀다.

'기억이 없어. 내가 하지 않은 일들이 내 이름으로 기록되고 있어.'

온몸을 엄습하는 공포감에 호흡이 가빠졌다. 자신이 미쳐버린 것일까?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하는 괴물이 내면에 숨어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 순간, 도윤의 뇌리에 벼락처럼 한 가지 사실이 스쳤다.

'아니야. 내가 미친 게 아니야.'

지문이 같고, 얼굴이 같고, 목소리가 같고, 심지어 입고 다니는 옷의 스타일까지 완벽히 똑같은 존재.

0.01%의 틈을 뚫고 이쪽 세계로 스며든 자.

Beta 차원의 '가짜 임도윤'이었다.

그놈은 이미 이 세계로 완전히 넘어왔거나, 혹은 차원의 경계가 헐거워진 틈을 타 밤마다 이쪽 세계로 건너와 진짜 도윤의 삶을 야금야금 좀먹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미치광이처럼 굴며 진짜 도윤의 사회적 평판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나를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시키려는 거야.'

도윤은 온몸의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가짜의 목적은 명확했다. 진짜 도윤을 미치광이 범죄자로 만들어 사회에서 매장하고, 그 틈을 타 진짜 도윤을 제거한 뒤 자신이 그 완벽하게 비어버린 '임도윤'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음모.

주변을 둘러보니 창밖의 햇살이 기괴하게 왜곡되어 보이는 듯했다. 동기들의 싸늘한 시선, 조교의 적대감, 편의점 알바생의 공포.

이 모든 것이 가짜가 쳐놓은 촘촘한 덫이었다.

도윤은 자신이 딛고 선 현실이 사정없이 늪처럼 가라앉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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