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5화: 비명 지르는 라디오
인간은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두 가지 선택을 한다. 도망치거나, 혹은 그 두려움의 실체를 파헤치거나.
임도윤은 후자였다. 비록 소심하고 개인주의적인 성격이었지만, 전공 서적을 파고들 때 발휘되던 지독한 집착이 이번에도 그의 이성을 붙들었다.
'가지러 갈게. 그 장치.'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흘러나왔던 피투성이 가짜의 붉은 미소와 속삭임. 그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사형 선고와 같았다. 0.01%의 틈새 너머에 존재하는 살인마가 이쪽 차원을 인지했고, 자신을 타깃으로 삼았다. 기계를 부수고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적어도 저쪽 세계의 침입자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그 추격의 실체를 파악해야만 했다.
도윤은 싱크로 장치를 해체하여 고주파 오디오 변조(Audio Demodulation) 회로를 대폭 보강했다.
외부 안테나의 코일 감도를 극대화하고, 주파수 추적 필터를 다단계로 배치해 신호의 선명도를 물리적으로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비주얼 정보가 차단된 어둠 속에서 오직 청각적 정보에만 의존해 저쪽 세계를 완벽하게 모니터링하기 위함이었다.
뚝딱거리는 그의 손끝에 식은땀이 배어 회로판을 적셨다.
밤 11시 30분. 자취방의 창틀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낮게 깔린 어둠 속에서, 도윤은 개조된 싱크로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렸다.
치이이이익-.
스피커에서 찢어질 듯한 기계음이 울리다, 이내 정교한 노이즈 캔슬링 필터가 작동하며 서서히 여과되었다. 0.01%의 틈새가 열리며 스피커 너머의 공간이 귀로 렌더링되기 시작했다.
후우…… 하아…….
가장 먼저 들려온 것은 가짜 도윤의 거칠고 무거운 호흡 소리였다. 숨결 하나하나에 맺힌 피로와 살기가 스피커의 얇은 종이 콘을 흔들며 도윤의 귓가로 전달되었다.
가짜는 방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바닥판 소리, 서랍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물건들을 쓸어 담는 금속성 마찰음이 들렸다. 저쪽 세계의 그는 도주를 준비하는 듯했다.
그때였다.
멀리서 날카로운 소음이 흘러나왔다.
에에에에엥-! 에에에에엥-!
사이렌 소리였다. 하지만 묘하게 낯설었다. 우리가 흔히 듣는 3단음의 경찰 사이렌이 아니었다. 주파수가 한 옥타브 높고 더 찢어지는 듯한, 마치 공습경보에 가까운 섬뜩한 파장을 지닌 사이렌 소리였다. 0.01%의 미세한 차이가 만들어낸 저쪽 세계의 공권력의 신호음이었다.
스피커 너머에서 가짜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 ……쳇, 벌써 냄새를 맡았나.
가짜 도윤의 짓씹는 듯한 나지막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곧이어 빗소리를 뚫고 요란한 자동차 타이어 마찰음이 들렸다. 여러 대의 차량이 원룸 건물 주변을 포위하는 소리였다. 쿵쾅거리는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건물의 콘크리트 계단을 따라 올라오는 소리가 오디오 신호를 타고 입체적으로 전해졌다.
- 3층이다! 302호 포위해!
- 피의자는 극도로 위험한 상태다. 방검 장구 확실히 하고, 저항 시 발포를 허가한다!
확성기를 통해 웅웅거리는 거친 목소리들이 복도를 메웠다. 형사들의 목소리였다.
도윤은 침대 모서리를 꽉 쥐었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존재가 살인 용의자로 몰려 경찰의 진압 부대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 그 공간에 자신이 함께 서 있는 듯한 극한의 일체감이 그를 옥죄었다.
쿵! 쾅!
- 경찰이다! 문 열어! 임도윤, 도주로는 없다! 순순히 투항해라!
문이 사정없이 걷어차이는 진동이 마이크를 타고 날카로운 고주파 노이즈로 변환되어 스피커를 찢을 듯 울렸다.
방 안의 가짜 도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피커에서는 자그마한 스위치를 올리는 기계음이 들렸다.
지이이이이잉-.
그것은 도윤이 지금 쥐고 있는 싱크로 장치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발진음이었다.
'그쪽에서도 기계를 켰어!'
도윤은 경악했다. 가짜 도윤 역시 그쪽 차원에서 싱크로 장치와 유사한 공간 왜곡 기기를 가동하고 있었다. 두 기계가 동일한 주파수로 맞물리자, 엄청난 루프 현상(Feedback)이 발생하며 라디오 스피커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이이이익-!
귀를 찢는 고음의 하울링이 방 안에 몰아쳤다. 도윤은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지만, 스피커 볼륨을 줄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수신음 너머에서 일어나는 파국을 끝까지 들어야만 했다.
쾅! 벌컥!
마침내 저쪽 차원의 현관문이 부서지며 경찰들이 들이닥치는 소리가 들렸다.
- 움직이지 마! 손 머리 위로 올려!
- 엎드려! 당장 엎드려!
형사들의 다급하고 살기 띤 고함.
하지만 가짜 도윤은 엎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스피커에서는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기괴한 타격음이 들려왔다.
퍽! 크아아악!
- 이 새끼가……! 총 쏴! 으아아악!
- 내 다리! 내 다리리가……!
단발의 총성이 탕! 하고 울렸지만, 뒤이어 들려온 것은 총에 맞은 가짜의 비명이 아니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섬뜩한 둔탁음, 살점이 찢어발겨지는 습한 파열음, 그리고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고통의 비명들이 사방에서 얽혀 들었다.
가짜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괴력으로, 혹은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함으로 무장한 경찰들을 도살하듯 제압하고 있었다.
- 크흐흡…… 끄윽…….
비명소리는 이내 젖은 흙바닥에 피가 고이듯 잦아들었다. 거친 빗소리 사이로 신음마저 끊어진 정적이 찾아왔다.
도윤은 공포로 턱을 부르르 떨었다. 방 안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는 듯한 오한이 들었다.
스피커 너머에서 툭, 툭, 하는 피 묻은 발자국 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사내는 바닥에 쓰러진 형사들의 시체를 대수롭지 않게 밟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발자국 소리는 마침내 싱크로 장치의 좌표가 위치한 책상 바로 앞까지 걸어왔다.
치지직…… 삐이이이익…….
두 기계의 공진음이 더욱 격렬해지며 라디오 하우징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짜 도윤이 스피커에 입을 바짝 대고 낮게 읊조렸다.
- 좌표를 완전히 고정했어.
사내의 목소리는 방금 전 경찰 부대를 몰살한 존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고 평온했다.
- 지문도, 얼굴도, 심지어 이 방의 구조까지 완벽하게 똑같군. 거기는 참 평화로운 모양이지?
"……!"
- 기다려라, 또 다른 나. 내가 그곳으로 건너가서…… 네 삶을 살 테니까.
그 선언과 동시에, 스피커에서 고주파의 파열음이 광포하게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앙-!
귀를 찢는 듯한 비명 소리가 라디오 스피커를 뚫고 나와 자취방 전체를 뒤흔들었다. 싱크로 장치의 내부 회로에서 불꽃이 튀며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도윤은 고통스럽게 귀를 막으며 바닥으로 굴렀다.
라디오는 완전히 타버려 침묵에 잠겼지만, 가짜 도윤의 잔혹한 선언은 도윤의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붉은 낙인처럼 깊게 새겨졌다.
그는 이제 도망칠 곳이 없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