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평행선 너머의 침입자49화

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49화: 남겨진 상흔

그 폭풍 같은 밤이 지나고 석 달의 시간이 흘렀다. 한여름의 끈적한 장마는 가고, 가을의 청량하고 서늘한 바람이 캠퍼스의 붉게 물든 단풍잎들을 흔들고 있었다.

임도윤은 혐의를 완전히 벗었지만, 세상의 비밀을 알아버린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도윤아, 밥 먹으러 가자."

민아가 랩실 문을 열며 살갑게 불렀다.

도윤은 실험대 위에서 아날로그 기판을 만지던 손을 멈추고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난 석 달 동안, 도윤은 대학 졸업을 1년 유예해야 했다. 차원 틈새 속으로 모든 연구 데이터와 소스 코드를 던져버렸기에, 졸업 전시 작품은 물론 인턴십 기회까지 완전히 백지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부모님이 가짜에게 사기당한 3천만 원의 신용 대출 빚은 고스란히 가계의 무거운 짐으로 남았다. 최 경위의 배려와 강력계 형사들의 협조로 사기 범죄 계좌의 일부 잔액을 회수하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남도병원 투석실에서 견뎌내야 하는 육체적, 정신적 상처는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하지만 도윤은 더 이상 예전처럼 무기력하게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모님의 대출금을 매달 갚아나갔고, 낮에는 학부 연구실 구석에서 기본 전자 회로 소자부터 차근차근 다시 납땜질을 시작했다. 비록 1년이 늦어졌지만, 제 힘으로 딛고 서는 진짜 자신의 삶은 그 어떤 요행보다 단단했다.

그러나 지울 수 없는 상흔(트라우마)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도윤을 덮쳤다.

가끔 밤늦게 비가 내리는 거리를 걸을 때면, 골목길 모퉁이 너머에서 올리브색 맥코트를 입은 사내가 기괴하게 웃으며 걸어 나올 것만 같은 환각에 반사적으로 쇠 파이프를 찾듯 주머니를 더듬었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의 닫히는 철제 문 너머로, 자신과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누군가가 자신을 빤히 응시하다가 문이 닫히며 사라지는 착각에 숨이 턱 막히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볼 때마다, 거울 속의 내가 혹시 0.1초 늦게 눈을 깜빡이지는 않는지 뚫어지라 응시하며 굳어버리는 버릇은 고치기 힘들었다.

"아직도 플래시백이 와?"

민아가 따뜻한 캔커피를 도윤의 볼에 대며 물었다.

"어…… 아주 가끔. 그냥 거울을 볼 때나 빗소리를 들을 때 좀 서늘해져."

도윤이 캔커피를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아는 도윤의 곁에 걸터앉아 그의 굳은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우리가 그 괴물을 완전히 밀어냈고, 문은 닫혔잖아. 그리고 네 곁엔 내가 있고, 최 경위님도 수시로 안부 전화를 주시니까 걱정 마."

"고마워, 민아야."

도윤은 민아의 따뜻한 손을 지그시 맞잡았다.

평행 우주의 끔찍한 비밀과 시공간 붕괴 사투를 공유한 유일한 소울메이트. 민아의 존재는 도윤이 남겨진 트라우마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가장 튼튼한 안전망이었다.

상흔은 흉터가 되어 아물어가고 있었고, 진짜 임도윤은 한층 더 단단해진 내면으로 자신의 소중한 일상을 뚜벅뚜벅 살아내고 있었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