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평행선 너머의 침입자50화

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50화: 두 번째 노이즈

낙엽이 쓸려가는 캠퍼스의 늦가을 밤.

한서대학교 제3공학관 412호 공동 실험실의 창밖으로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도윤은 랩실 벽면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졸업 전시 우수작 상패를 보며 엷은 소회를 느꼈다.

1년의 졸업 유예 기간 동안, 도윤은 기어코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완성해 냈다.

물론 그 위험한 다차원 공간 왜곡 장치가 아니었다. 그는 인류에게 안전하고 실용적인 '초광대역 가변 전자기 노이즈 정화 및 필터 회로'를 개발하여 졸업 전시회에서 최고 등급의 평가를 받았고, 약속되어 있던 대성전자 인턴십 연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다음 달 첫 출근을 앞두고 있었다.

자취방 대출 빚도 부모님과 함께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 거의 상환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퇴원하여 가벼운 산책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하셨고, 도윤의 부모님은 아들의 착실한 졸업과 취업 소식에 매일 밤 눈물 어린 기도의 전화를 걸어오셨다. 가짜가 휩쓸고 갔던 일상의 상흔은, 기적적으로 아물어 새로운 흉터 위에 단단한 새살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도윤아, 짐 다 쌌어?"

민아가 박스 하나를 품에 안은 채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 역시 졸업 논문 심사를 통과해 다음 달 대기업 연구소 입사를 앞두고 있었다.

"어, 대충 다 정리했어. 1년 동안 정말 정들었던 연구실인데, 이제 진짜 떠난다고 생각하니까 시원섭섭하네."

도윤이 마지막 서류 뭉치를 가방에 넣으며 대답했다.

"고생 많았어, 도윤아. 진짜로 많았어."

민아는 도윤의 어깨를 조용히 도닥였다. 3년 동안 랩실에서 동고동락하며, 죽음의 벼랑 끝에서 서로의 목숨을 구해낸 두 사람의 우정은 이제 그 무엇보다 깊은 소울메이트의 형태로 굳건해져 있었다.

"먼저 주차장에 내려가 있을게. 차단기 내리고 내려와."

"어, 금방 갈게."

민아가 짐 박스를 들고 문을 나섰고, 랩실 안에는 다시 한번 고요함이 찾아왔다.

도윤은 랩실의 조명 차단기 앞으로 걸어가 스위치를 잡았다. 형광등 전원을 내리려는 찰나, 그의 시선이 연구실 맨 구석의 먼지 쌓인 계측 장비 선반 위로 향했다.

그곳에는 1년 전, 가짜와의 첫 대면 때 폭발하여 시커뎄게 타버린 채 버려두었던 구형 오실로스코프 계측기가 녹슨 기판을 드러낸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연구실 자산 등록이 되어 있어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고 한구석에 방치해 둔 골동품이었다.

딸깍.

도윤은 메인 차단기 스위치를 내렸다. 랩실 안의 모든 형광등과 모니터 불빛이 꺼지며 완전한 어둠이 방 안을 덮쳤다. 창밖의 가로등 노란 불빛만이 유리창을 비추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지이이이이-.

도윤은 온몸의 피가 일시에 얼어붙는 것 같은 원초적인 한기를 느꼈다.

전원 스위치가 내려가 건물 전체의 전기 공급이 차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석의 먼지 쌓인 고장 난 구형 오실로스코프의 액정 화면이 노란색 픽셀 선을 파르르 떨며 스스로 흐릿하게 켜지기 시작했다.

치지직…… 치직…… 치직.

완벽한 정적 속에서, 미세한 백색 잡음(Noise)이 구형 스피커의 찢어진 콘을 흔들며 스며 나왔다.

도윤은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가쁜 숨결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모든 기계와 차원 이동 데이터, 싱크로 장치까지 차원의 틈새 속으로 던져 완전히 소멸시켰는데, 대체 어떻게 이 잡음이 다시 울릴 수 있단 말인가.

그때, 오실로스코프의 노란색 파형 선이 깨끗한 정현파로 정렬되며 스피커 너머로 낯선 빗소리와 함께 비명 같은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도윤 본인의 음색을 지니고 있었으나, 가짜 도윤의 살기 어린 음색도, Gamma 제거 부대의 차가운 쇳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극도의 공포와 절박함에 사로잡혀 바들바들 떠는 완전히 새로운 '또 다른 임도윤'의 애원 가득한 목소리였다.

"……!"

뚝.

짧은 폭음과 함께 노란색 화면이 파르르 꺼지며 오실로스코프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어둠 속에서 도윤은 싱크로 장치도, 니퍼도 없는 맨손을 바르바르 떨며 꺼진 계측기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창밖에는 어느덧 1년 전의 그날처럼, 가을비가 유리창을 사정없이 두들기며 쏟아지기 시작했다.

끝난 게 아니었다.

Gamma의 포식자들이 마침내 문을 열었고, 새로운 차원의 붕괴가 그들의 일상을 향해 다시 한 번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평행선 너머의 침입은, 이제 또 다른 전율과 공포의 서막(두 번째 노이즈)을 올리며 막을 내렸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