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47화: 마지막 선택
가짜의 비명이 차원의 틈새 속으로 완전히 사그라들고, 옥상의 쩍 갈라졌던 시공간 균열은 빛의 테두리를 그리며 서서히 오므라들고 있었다.
지옥 같던 전자기 뇌우는 멎었고, 먹구름 낀 하늘은 원래의 무겁고 차가운 빗방울만을 쏟아냈다. 도윤은 옥상 진흙 바닥에 누운 채 품안에 쥐고 있던 싱크로 장치를 내려다보았다.
기계는 이미 회로가 다 녹아내려 검은 매연을 뿜고 있었지만, 내부의 전하 보존 인덕터에서는 여전히 미세한 고주파 비프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삐이이이이-.
그것은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었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차원의 미세한 틈새를 뚫고 들렸던 그 무서운 Gamma 차원의 파괴 조율 신호가 다시 한 번 수신기에 희미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였다.
- ……경계 영역 좌표 동조율 99% 붕괴 감지…… Gamma-03 제거대, 역추적 중…….
도윤의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가짜는 소멸했지만, 차원의 틈새를 뚫고 뿜어져 나간 양자 비콘 신호는 여전히 미지의 고차원 포식자들에게 이 세계(Alpha 차원)의 정확한 지리적, 물리적 주소를 송출하고 있었다. 저 틈새가 완전히 봉합되기 전에, 이 차원 이동의 이론적 공식과 소스 코드가 든 모든 물리적 증거를 소멸시키지 않는다면, 그들은 조만간 이 좌표를 역추적해 다시 침입해 올 터였다.
"도윤아! 저 기계랑 네 노트북…… 전부 저 틈새 속으로 던져버려!"
민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틈새가 닫히기 직전이야! 저 균열이 완전히 밀봉되기 전에, 이 세계에 남겨진 모든 차원 이동 데이터와 장치를 저 소멸의 틈 속에 던져서 흔적조차 없이 지워버려야 해!"
도윤은 주춤했다.
그의 등 뒤에 서 있는 최 경위와 형사들도 숨을 죽였다.
도윤의 손에 들린 싱크로 장치, 그리고 그의 가방 속에 들어있던 졸업 작품용 소스 코드 드라이브와 노트북. 그것들은 도윤이 지난 3년 동안 학자금 대출에 쪼들려 가며, 대기업 인턴십 연계와 대학 졸업을 위해 사흘 밤낮을 피땀 흘려 코딩하고 설계해 낸 그의 인생 그 자체였다.
그것들을 저 틈새 속에 던져 지워버리는 순간, 도윤의 대학 졸업은 물론이고 약속되어 있던 대성전자 인턴십 연계 기회도 완전히 허공으로 날아가게 된다. 평범한 흙수저 대학생인 그에게, 자신의 유일한 미래이자 희망을 제 손으로 파괴해야 하는 잔인한 선택이었다.
- Gamma-03, 좌표 추적 중. 30초 내로 게이트 균열 복구 실패 시, 제거 전대를 강제 전송한다…….
기계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제3의 임도윤, Gamma의 그 차가운 기계식 명령어가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처럼 도윤의 이성을 압박했다.
도윤은 눈물이 빗물과 함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미래, 자신의 꿈, 그리고 평생을 고생해 쌓아 올린 과학적 성취.
하지만 눈앞에서 상처를 입은 채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민아, 그리고 병실에 누워 아들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계실 부모님,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경찰 직위를 걸고 허위 무전을 날린 최 경위의 믿음.
도윤은 마침내 굳건한 미소를 지었다. 소심했던 과거의 임도윤은 이미 죽었다.
"고마웠어, 내 꿈아."
도윤은 붉게 타들어 가던 싱크로 장치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닫히기 직전, 불과 한 뼘 크기로 조여들던 옥상 바닥의 검은 암흑의 균열 속으로 기계를 거칠게 던져 넣었다. 뒤이어 가방 속에서 꺼낸 자신의 졸업 연구 파일이 든 노트북과 외장 SSD 드라이브까지 망설임 없이 그 틈새 속으로 쾅 하고 던져 버렸다.
슉! 툭.
기계와 컴퓨터 장치들이 검은 균열 속으로 빠져드는 순간, 쩍 갈라졌던 옥상 바닥의 시공간 틈새가 지익 소리를 내며 번쩍이더니 마침내 한 줄기 순백의 빛과 함께 완전히 결합하여 닫혔다.
아지랑이도, 붉은 인광도, 기괴한 비명소리도 모두 사라졌다.
옥상 바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한 시멘트 타일과 빗물이 고인 웅덩이로 완벽하게 정상 복구되었다.
도윤은 빗물이 쏟아지는 옥상 바닥에 주저앉아 젖은 얼굴을 하늘로 향했다. 모든 연구 자료를 잃었고 인턴 기회도 날아갔지만, 도윤의 마음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완전한 평화와 승리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세상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는 가장 위대하고 숭고한 '마지막 선택'을 완수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