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41화: 최후의 통첩
"기계만 넘겨서는 부족해."
가짜 도윤이 난간 벼랑 끝의 시공간 아지랑이 틈새 속으로 민아를 한 걸음 더 밀어 넣으며 속삭였다.
그녀의 발목 주변으로 붉고 푸른 스파크가 튀며 신발 굽이 연기처럼 깎여 나갔다. 가짜의 칼날은 민아의 핏줄 위에 살벌하게 밀착되어 있었다.
"네가 그 싱크로 기계의 리셋 버튼을 누른 채, 직접 저 차원의 틈새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 네 몸뚱이가 저 진공의 틈 속에서 분쇄되어 사라지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해야만, 이 계집을 난간 안쪽으로 당겨 살려주마."
가짜 도윤은 진짜 도윤의 목숨과 기계의 완전한 인도를 요구하는 최후의 통첩을 던졌다.
도윤은 절망적인 눈빛으로 폭주하는 싱크로 장치와, 그 장치가 뿜어내는 양자 전자기장이 찢어발기고 있는 옥상의 현실 장벽을 바라보았다.
'내가 발명한 이 저주받은 기계가…… 결국 민아를 죽이고 세상을 무너뜨리고 있구나.'
도윤은 뼈저리게 뉘우쳤다.
자신의 소심한 아웃사이더 인생을 극복하고 대기업 인턴십과 학문적 인정을 받겠다며 밤을 새우며 납땜질을 하던 그 지독한 집착과 학구열. 그것이 결국 차원의 경계를 무너뜨려 이 살인마 괴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일상과 소중한 동료인 민아를 이 파멸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시발점이었다.
도윤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자신의 과오로 시작된 이 끔찍한 연쇄 비극을 끝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이 기계와 함께 차원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일지도 몰랐다.
스스스스-.
그때, 도윤의 귀에 꽂혀 있던 미세한 무선 수신기 이어폰 너머로, 전자기 노이즈를 뚫고 최 경위의 억눌린 쇠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들어왔다.
- 도윤아, 옥상 방화문 뒤다. 조준선 정조준 완료했다. 5초만…… 가짜 놈이 바람막이 난간 안쪽으로 들어오게 유도해라. 저격 각도가 안 나온다.
최 경위와 형사들이 마침내 비상계단을 뚫고 옥상 철문 뒤쪽 엄폐물에 진입해 저격 자세를 잡은 것이었다. 하지만 가짜가 벼랑 끝 난간 바로 뒤에 서 있었기에, 빗나간 총탄이 민아를 맞추거나 가짜와 함께 벼랑 속으로 추락할 위험이 컸다.
도윤은 안경을 고쳐 쓰며, 무릎을 꿇었던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좋아, 가짜. 네 요구대로 하겠어."
도윤이 품에 안은 싱크로 기계의 전선 단자를 다잡으며 가짜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갔다.
"내가 저 차원의 틈새 속으로 들어갈 테니, 넌 민아를 안전하게 이 옥상 바닥 안쪽으로 당겨 놔줘. 내 눈으로 민아가 안전한 것을 확인하기 전에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
도윤은 가짜를 난간 안쪽, 즉 최 경위의 저격 조준선이 확보되는 사각지대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 미끼를 던졌다.
가짜 도윤은 칼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도윤의 걸음걸이를 주시했다.
"꼼수 부리지 마라, 도윤아. 널 죽이고 기계를 빼앗는 건 내게 일도 아니니까."
"꼼수 아니야. 나만 사라지면 모두가 원래대로 돌아가잖아. 넌 임도윤이 되고, 부모님은 치료비를 받고, 민아도 살 수 있으니까……."
도윤은 눈물을 흘리며 가짜의 눈빛을 흔들었다. 가짜 역시 도윤의 기억과 감정의 일부를 뇌파 동조로 공유했기에, 도윤의 목소리에 실린 진짜 희생적 슬픔과 결의가 거짓이 아님을 직감했다.
가짜 도윤은 민아의 멱살을 잡은 채, 그녀의 몸을 벼랑 끝에서 조심스럽게 난간 안쪽 대리석 바닥으로 한 걸음 끌어당겼다.
철컥.
그 찰나의 순간, 가짜 도윤의 올리브색 맥코트 어깨선이 최 경위가 숨어 있는 방화문 틈새의 조준선 안으로 완벽하게 노출되었다.
결전의 뇌우가 옥상을 가르는 순간, 벼랑 끝의 시한폭탄 도화선은 마지막 격발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