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39화: 가짜의 과거
쿵! 콰당탕!
진흙과 피로 얽힌 두 임도윤은 미로 같은 복도 바닥을 구르며 뼈가 으스러져라 주먹을 주고받았다.
도윤이 가짜의 멱살을 잡고 바닥으로 매치려던 바로 그 순간, 품에 안겨 있던 싱크로 장치에서 강렬한 양자 방전 스파크가 두 사람의 몸을 관통했다.
파지직-!
강렬한 고전압 전류가 뇌를 직접 찌르는 듯한 감전 충격과 함께, 두 사람의 동공이 일시에 풀려나갔다. 0.01%의 장벽이 붕괴하고 양자 동조율이 극에 달하자, 두 임도윤의 뇌파가 일시적으로 다차원 링크(Neural Link)를 형성하여 서로의 뇌 신경망에 직접 주입되는 정신적 중첩 현상이 일어난 것이었다.
"아아악-!"
도윤은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기억이 아닌 가짜 도윤의 끔찍하고 황폐한 과거의 기억 속으로 강제로 빨려 들어갔다.
머릿속에 펼쳐진 광경은 지옥 그 자체였다.
그것은 가짜가 살아온 Beta 차원의 서울이었다. 하늘은 회색 먹구름 대신 자줏빛의 걸쭉한 화학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가로등 백열등 아래 쏟아지는 비는 강한 산성을 띠어 닿는 모든 철골 건물을 검게 부식시키고 있었다. 무분별한 전자기 무선 전력 송출 실험의 부작용으로 생태계는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고, 사람들은 방독면을 쓴 채 어두운 지하 방공호 골목을 짐승처럼 배회하고 있었다.
그 황폐한 세계의 임도윤은 한서대 실험실 대신, 국가 양자 역학 연구소의 지하 밀폐실에서 노예처럼 부려지는 하급 연구원이었다.
- 임도윤, 네가 짠 차원 이동 위상 회로 설계도는 내 이름으로 학회에 등록하마. 넌 인턴 계약이 만료되었으니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라.
기억 속 김 박사의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얼굴이 도윤의 시야에 오버랩되었다.
가난과 독성 환경 속에서 만성 신부전증으로 병상에 누워 피를 토하던 부모님, 그리고 땡전 한 푼 없이 학자금 빚에 허덕이다가 자신이 평생을 바쳐 발명한 기술마저 가로채이고 쫓겨나야 했던 절박한 상황.
그 절망의 끝에서, Beta 차원의 임도윤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소시오패스적 생존 본능과 살의가 폭발했던 것이다.
철제 렌치를 쥔 손이 김 박사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려쳤다.
퍽-!
붉은 선혈이 뿜어지던 찰나의 희열, 그리고 연구 기금 50억 원을 탈취해 도망치던 중 들이닥친 경찰들의 사이렌 소리. 사방이 꽉 막힌 추격의 그물망 속에서, 가짜는 연구소에서 훔쳐 온 차원 비콘 수신기에 잡힌 Alpha 차원의 깨끗하고 온화한 세상의 신호를 보았다.
'저기라면 살 수 있어. 저 깨끗하고 화사한 세상의 나약한 나를 지우고, 내가 그 자리에서 다시 태어나는 거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모든 도덕을 버리고 벼랑 끝의 야수가 되어버린 도망자의 지독하고 처절한 생존 본능이었다.
파지직! 툭.
뇌파 동조 링크가 끊기며, 도윤은 격렬한 구토감과 함께 복도 바닥으로 튕겨 나갔다.
"하아…… 하아……."
두 임도윤은 서로 몇 미터 떨어진 채 진흙 묻은 바닥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도윤은 가짜의 기억을 공유하며, 그가 왜 살인귀가 되었는지, 그가 딛고 섰던 세상이 얼마나 참혹한 지옥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악인의 잔혹함 뒤에 숨겨진, 물러설 곳 없는 쥐새끼 같은 처절한 절박함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았다.
하지만 도윤은 흙투성이가 된 얼굴을 들어 가짜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너의 처지는 안됐지만…… 그렇다고 내 삶과 내 소중한 사람들을 도살할 권리는 없어, 이 괴물 새끼야."
가짜 도윤은 머리를 감싸 쥐며 이마의 피를 닦아냈다. 그의 눈빛에는 광기와 독기가 한층 더 서슬 퍼렇게 차올라 있었다.
"살아남는 놈이 진짜 임도윤이다. 넌 날 이길 수 없어."
가짜는 품에서 다시 칼을 고쳐 쥐고, 무너져 내리는 기하학적 복도의 진흙을 디디며 최후의 살육을 위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