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36화: 탈환 작전
끼이이익-.
도윤은 땀에 젖어 미끄러운 손으로 지하 전산 창고의 최후 철문을 밀어 열었다.
어둡고 거대한 지하 공간 안쪽은, 기이하게도 붉고 푸른 인광(燐光)으로 가득 차 일렁이고 있었다. 0.01%의 틈을 비집고 쏟아지는 왜곡 에너지 탓에, 사방의 벽면과 바닥 타일이 마치 거울에 비친 상처럼 흔들리며 번들거렸다.
공간 중앙에는 가짜가 이쪽 차원에서 가동 중인 대형 변전 단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가방 통째로 빼앗겼던 오리지널 '싱크로(Synchro)' 장치가 전선들과 얽힌 채 벌겋게 과부하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가짜 도윤은 변전 단자 앞에 서서 등을 보인 채, 싱크로의 주파수를 튜닝하고 있었다.
"가자."
최 경위가 수화기로 조용히 수신호를 보냈다.
최 경위와 두 명의 사복 형사는 철제 배전반 설비들의 좌우 측면 우회로를 통해 가짜의 시야 밖에서 접근했고, 민아는 입구 쪽에 숨어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퇴로를 감시했다. 진짜 도윤은 가짜의 정면이자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중앙의 굵은 고압 배선 기둥을 방패 삼아 가짜의 등 뒤로 은밀하게 들이닥쳤다.
오리지널 싱크로 장치를 빼앗는 것만이, 이 시공간 붕괴 파국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었다.
벅, 벅, 벅.
도윤의 발소리가 미세한 자기장 진동음 속에 묻혔다. 가짜와의 거리는 불과 5미터.
그때, 가짜 도윤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어졌다. 그는 이쪽 차원의 공기 밀도와 기압이 침입자들의 체중 때문에 0.01% 변한 것을 즉각 감지해 낸 것이었다.
- 멍청한 놈들.
가짜 도윤이 차갑게 읊조리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 최 경위와 형사들이 양옆에서 스프링처럼 튀어나와 가짜의 팔다리를 덮쳤다.
"꼼짝 마! 수갑 찬다!"
형사들의 무자비한 태클이 가짜의 어깨와 허리를 직격했다. 하지만 가짜 도윤은 미친 듯이 웃으며, 변전 단자에 연결되어 있던 싱크로 장치의 주파수 트리거 스위치를 거칠게 눌렀다.
파지직! 콰아아아앙-!
기계에서 방출된 강력한 양자 전자기 척력파가 구형 돔 모양으로 사방으로 폭발했다. 최 경위와 형사들은 강한 중력 밀침 현상을 이기지 못하고 철제 배전반 벽면으로 사정없이 날아가 부딪히며 주저앉았다.
"으윽!"
그 폭풍의 잔해 속에서, 오직 진짜 도윤만이 쇠 파이프를 내던진 채 가짜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는 날아오는 충격파를 정면으로 받으며 가짜의 목덜미를 부여잡고 바닥으로 함께 굴러떨어졌다.
쿵!
두 사내는 붉고 푸른 광취 속에서 진흙과 피로 얼룩진 채 서로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난사했다. 똑같은 두 임도윤의 처절한 육탄전이 변전 설비 옆 진흙 더미 위에서 다시 폭발했다.
도윤은 뺨이 찢어지고 입술이 터지는 고통 속에서도, 가짜의 손에 꽉 들려 있던 오리지널 싱크로 장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건…… 내 기계야!"
도윤이 소리치며 가짜의 엄지손가락을 사정없이 꺾어버렸다.
우드득!
"아아악!"
가짜의 손아귀에서 힘이 빠지는 찰나, 도윤은 오리지널 싱크로 장치를 낚아채 자신의 가슴팍 안으로 강하게 끌어안았다.
탈환에 성공한 것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가짜의 손에서 떨어진 싱크로 장치는 이미 최만수의 살인 생체 에너지와 자취방의 붕괴 주파수가 융합되어, 통제할 수 없는 임계점(Critical Mass)을 돌파해 있었다.
품에 안긴 싱크로 장치의 붉은 액정은 에러 메시지를 뿜어내며 하얀 스파크 연기를 뿜어냈고, 방 안의 중력이 비틀려 도윤의 몸이 허공으로 수 센티미터 떠오르기 시작했다.
"도윤아! 피해!"
민아의 비명소리가 찢어지게 울렸다.
기계의 강탈은 성공했으나, 열려버린 게이트의 폭주는 이제 지구의 물리 법칙조차 완전히 유린하며 대폭발의 전조를 내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