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35화: 폭로
철제 보일러실 건물의 낡은 뒷문을 열고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은 최 경위와 강력3팀 형사들이었다.
"반장님……!"
민아가 소리 죽여 최 경위를 맞이했다. 최 경위는 입구 구석의 보일러 탱크 틈새에서 풍겨 나오는 비린내를 맡고 급히 플래시 불빛을 비추었다. 드럼통 안쪽에 구겨져 처박힌 브로커 최만수의 굳어버린 시체가 불빛 아래 참혹한 실체를 드러냈다.
최 경위와 형사들은 이 잔인하고 신속한 살인 현장을 보고 주먹을 꽉 쥐었다.
"방금…… 방금 그 가짜 놈이 저지른 짓입니다."
도윤이 진흙 묻은 쇠 파이프를 쥔 손을 부르르 떨며 속삭였다.
민아는 최 경위의 팔을 붙잡고, 도윤의 노트북 화면에 복원되어 있던 Beta 차원의 살인 일지 데이터와 양자 동조 왜곡 상수값의 전말을 다급하게 폭로하기 시작했다.
"반장님, 저 가짜 임도윤은 평범한 도플갱어가 아니에요. 본래 세계에서 수석 연구원을 살해하고 50억 원을 횡령해 도망치던 중, 도윤이가 우연히 쏘아 올린 초고주파 비콘 신호를 역추적해 차원의 문을 열고 건너온 도망자예요. 저 시체의 죽음 직전 발생하는 뇌파 에너지까지 기계의 차원 동조율을 고정하는 매개체로 쓰고 있었어요!"
민아의 정교하고 구체적인 과학적 증언은 최 경위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했다.
최 경위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스마트폰 무전 어플을 켜서 강북경찰서 수사과장에게 직통 전화를 걸었다. 이 상상을 초월하는 차원 범죄의 전말을 공식적으로 폭로하여 본서의 기동대 병력을 이쪽으로 돌려야만 했다.
"과장님! 강력3팀 최진혁입니다! 긴급 폭로 보고 드립니다! 지금 우리가 쫓고 있는 임도윤은 한 명이 아닙니다!"
- 최 반장!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등산로 서쪽 수색은 어떻게 하고 이탈한 건가?
과장님의 거칠고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오늘 발생한 대학로 폭행 사건과 조교 살인 사건의 진짜 배후는 이쪽 세계의 임도윤이 아닙니다! 위상차가 0.01% 어긋난 평행 우주에서, 진짜 도윤이 만든 전송 장치를 역추적해 건너온 다른 차원의 살인마 가짜 임도윤입니다! 지금 재개발 4구역 보일러실에서 그 가짜 놈이 또 다른 희생자를 살해한 현장을 직접 확보했습니다! 당장 기동대를 이쪽으로 돌려주십시오!"
최 경위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동안 차가운 정적이 흐르더니, 이내 폭발적인 비웃음과 고함이 터져 나왔다.
- 최진혁! 너 지금 20년 형사 생활 하더니 완전히 돌아버린 건가? 평행 우주? 다른 차원의 임도윤? 영화 시나리오 쓰나?! 징계 위원회에 회부되고 싶어서 환장한 거야? 당장 그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집어치우고 용의자 임도윤 체포해 오라고!
"과장님! 제 눈으로 직접 그 균열과 두 명의 도윤을 확인했습니다! 이건 과학 수사의 맹점을 노린……."
- 시끄러워! 당장 직위 해제하기 전에 본서로 복귀해!
툭.
전화가 거칠게 끊어졌다.
최 경위는 멍하니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경찰 조직의 단단하고 경직된 관료제 시스템 안에서, 차원 이동과 평행 우주의 살인마라는 진실은 미치광이의 헛소리로 치부될 뿐이었다.
"예상했던 대로군."
최 경위가 씁쓸하게 웃으며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본서 기동대는 여전히 캠퍼스 뒤편 등산로를 뒤지고 있어. 윗선에서는 우리 말을 1%도 믿지 않아. 결국 이 괴물과의 대결은…… 우리끼리 끝내야 한다는 뜻이다."
도윤은 최 경위를 바라보며 안경을 고쳐 썼다.
경찰의 지원도, 공식적인 구원도 없는 철저한 고립무원의 사면초가 상태. 하지만 그렇기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가짜가 쳐놓은 덫의 한복판이자 두 차원이 엉겨 붙어 붕괴하고 있는 저 지하 전산 창고의 철문 너머로, 진짜 도윤은 쇠 파이프를 다잡으며 차갑게 발걸음을 옮겼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실을 밝히고, 가짜의 가면을 찢어발길 최후의 밤의 대결이, 마침내 그들의 손으로 개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