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31화: 밤의 거래
민아의 좁은 원룸 방 안은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도윤은 창문 밖 가로등 불빛이 커튼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젖은 수건으로 뺨의 핏자국을 훔쳤다. 대학가 주변은 순찰차들의 사이렌 소리로 여전히 술렁이고 있었고, 진짜 임도윤의 이름은 뉴스 속보와 SNS를 타고 흉악 살인마의 대명사로 낙인찍혀 있었다.
바로 그 찰나,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던 민아의 스마트폰이 징잉, 징잉 하고 진동하기 시작했다.
액정 화면에 뜬 번호는 공란이었지만, 도윤은 즉각 그것이 가짜의 신호임을 깨달았다.
민아가 떨리는 손으로 스피커폰 통화를 수락했다.
- 좁은 방에 쥐새끼들처럼 잘 숨어들었군, 도윤아.
가짜의 여유롭고 서늘한 음성이 좁은 원룸 안에 흘렀다. 가짜는 도윤이 민아의 방에 숨어들 것까지 완벽히 짐작하고 있었다.
"원하는 게 뭐야. 기계도 다 훔쳐 갔으면서 왜 자꾸 전화를 걸어?"
도윤이 억눌린 분노를 토해냈다.
- 네게 꽤 흥미로운 타협안을 제시하려는 거지. 일종의 '밤의 거래'랄까.
수화기 너머의 가짜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 넌 이 세계에서 이미 3천만 원 사기꾼에, 조교를 죽인 엽기 연쇄살인범이자 대낮에 벽돌을 휘두른 무장 용의자야. 이대로 체포되면 넌 사형선고를 받거나 평생 독방에서 썩을 테고, 도망치려 들면 경찰의 총탄에 벌집이 되겠지. 네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을 줄게.
"대안?"
- 내 본래 차원, Beta 세계로 가라.
가짜의 제안은 파격적이고 기괴했다.
- 네가 스스로 싱크로 장치를 작동시켜 Beta 차원으로 넘어가 준다면, 네 살인 누명을 완벽히 벗겨줄 수 있는 '진짜 범인의 자백 녹음'과 물증이 든 USB의 좌표를 최 경위에게 넘겨주마. 그럼 넌 비록 다른 세계지만 자유인 임도윤으로 살 수 있고, 네 부모님과 민아도 이 차원에서 안전하겠지. 서로 윈-윈하는 거래잖아?
도윤은 순간 흔들렸다.
가짜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이 차원을 포기하고 Beta 차원으로 추방되는 대가로 부모님과 민아는 누명과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아는 다급하게 도윤의 팔을 흔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윤아, 속지 마! 저쪽 세계는 이미 뉴스에서 봤듯이 경찰 수색 영장이 발부된 파멸의 지옥이잖아! 게다가 들었던 그 무서운 Gamma의 수색대까지 널 노릴 거야!"
민아의 외침이 수화기 너머로 전달되자, 가짜는 낮게 조소했다.
- 강민아, 넌 쓸데없이 예리해서 탈이란 말이지. 하지만 선택권은 도윤이에게 있어. 평생 이 차원의 감옥에서 연쇄살인범으로 썩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차원에서라도 목숨을 건질 것인가. 결정해라.
도윤은 침묵 속에서 노트북의 잔여 전파 로그를 훑어보았다.
그는 가짜의 이 솔깃한 회유가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기만책임을 즉각 간파했다. 가짜는 도윤을 Beta 차원의 경찰 수사망과 Gamma의 차원 제거 부대(Gamma-03)가 득실거리는 함정으로 던져버려 소멸시키고, 자신은 Alpha 차원의 임도윤으로 합법적이고 안락하게 살아갈 마지막 덫을 놓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윤은 이 제안을 역이용하기로 했다.
"……좋아, 거래에 응하지."
도윤이 짐짓 꺾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 현명한 선택이군. 오늘 새벽 2시, 재개발 4구역의 지하 기계창고로 혼자 오리지널 장비를 동조시키러 와라. 내가 게이트를 열어둘 테니 몸뚱이만 넘어가면 끝이다.
"알았어. 그리로 갈게."
도윤이 전화를 끊었다.
민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도윤아, 진짜로 그 지옥으로 가겠다는 거야?!"
"아니."
도윤의 안경 렌즈 뒤 눈동자가 밤의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빛났다.
"가짜가 거래를 위해 새벽 2시에 게이트를 켜두고 동조 좌표를 고정하겠다고 했어. 그렇다는 건, 그 시간 동안 기계 창고의 방어망이나 경계가 느슨해지고 그놈도 기계 제어에 온 신경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야. 그 틈이 우리가 가짜의 아지트를 습격해 싱크로 기계를 빼앗고 포털을 완전히 박살 낼 유일한 기회야."
도윤은 민아와 함께 가짜를 역으로 낚아챌 3부 탈환 작전의 설계를 시작했다.
밤의 거래는 양쪽 모두 서로를 파멸시키기 위해 파놓은 이중의 덫이었고, 새벽 2시의 시한폭탄 도화선은 소리 없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