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25화: 세 번째 차원의 신호
쉬익-!
가짜 도윤이 휘두른 칼날이 빗속의 허공을 찢으며 내려앉았다.
도윤은 급히 고개를 젖혔지만, 뺨을 스친 서늘한 감촉과 함께 뜨거운 피가 빗물과 함께 뺨 아래로 번져 나갔다. 칼날 끝이 도윤의 셔츠 깃을 찢었고, 도윤은 무게중심을 잃고 흙벼랑 아래로 사정없이 굴러떨어졌다.
쿠르릉, 쾅!
도윤이 바닥에 나뒹굴 때, 가짜가 쥐고 있던 싱크로 장치 역시 빗물에 미끄러져 진흙탕 위로 튕겨 나갔다.
기계는 흙 속에 처박힌 채, 가해진 물리적 충격 탓인지 내부의 양자 인덕터가 강제로 폭주하며 디스플레이가 빠르게 깜빡였다.
지이이이이잉-.
양자 동조 코일이 전기를 뿜어내며 기계 주변의 빗방울이 공중에서 일시적으로 멈추는 공간 왜곡 현상이 발생했다.
그와 동시에, 붉은색 액정 화면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이한 에러 메시지와 숫자가 렌더링되기 시작했다.
[ SYSTEM DETECTING THIRD PHASE ERROR... ]
[ DIM_INDEX: 1.0002 (UNSTABLE) ]
[ ERROR FREQUENCY: 924.887 THz ]
"DIM_INDEX 1.0002?"
도윤은 통증을 참으며 흙 속의 기계를 바라보았다.
기본 Alpha 차원은 1.0000. 가짜의 Beta 차원은 1.0001이었다. 그렇다면 1.0002는 완전히 다른 제3의 평행 우주, 'Gamma 차원'을 의미했다.
도윤의 기계가 폭주하며 찢어놓은 차원의 균열이 너무 넓어진 탓에, Beta 차원을 넘어 또 다른 미지의 차원과 맞물려 공진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치지직…… 치직…… 콰아아악!
기계의 소형 스피커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찢어지는 고주파 노이즈 너머로, 빗소리와는 질감이 다른 차가운 기계적 파열음과 함께 어떤 음성이 뿜어져 나왔다.
- ……여기는…… Gamma-03 수색조…….
소름이 돋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거친 쇳소리와 필터 왜곡을 가득 머금고 있었지만, 단어의 피치와 성대 주파수는 의심할 여지없이 임도윤, 자기 자신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톤은 한층 더 감정이 마비된, 마치 완전무결한 군인이나 학살자 같은 기계적인 차가움을 풍기고 있었다.
- 차원 좌표
1.0000및1.0001에서 비정상 비콘 신호 감지. 균열 개방 중. 즉시 제거 부대를 파견한다. 문을 여는 놈들은 다 죽여버릴 거다.
그 차가운 군대식 명령 억양이 빗속에 흩뿌려졌다.
가짜 도윤 역시 칼을 쥔 채 그 신호를 듣고 온몸을 굳혔다. 그의 얼굴에서 조롱 섞인 미소가 싹 걷히고, 생전 처음 보는 지독한 공포의 기색이 번졌다.
"이런 씨발…… Gamma의 놈들이 벌써 냄새를 맡았다고?!"
가짜는 이 제3의 차원인 Gamma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그가 있던 Beta 차원이 붕괴하거나 위기에 처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저 차원 제거 부대 'Gamma'의 침공이었을지도 몰랐다.
"저놈들은 다 지워버린단 말이야…… 문을 연 흔적까지 싹 다!"
가짜 도윤이 패닉에 빠져 소리치며 싱크로 장치를 걷어차 부수려 발을 뻗었다.
이 틈을 놓칠 도윤이 아니었다.
도윤은 이를 악물고 진흙 바닥을 굴러 가짜의 서 있는 다리를 온몸으로 걷어찼다.
"어억!"
가짜가 빗속에서 비틀거리며 균형을 잃었다.
도윤은 재빠르게 기어가 진흙 속에서 웅웅거리며 타오르는 싱크로 장치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가짜의 칼날이 다시 날아들기 전에, 가파른 흙벼랑 등산로 아래의 빗길 코너를 향해 몸을 굴려 내려갔다.
"거기 서! 임도윤! 기계 내놔!"
가짜의 발악 어린 고함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지만, 도윤은 이미 미끄러운 진흙 경사면을 타고 야산 뒤편 대학 랩실 건물 방향으로 맹렬하게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품에 안긴 싱크로 장치의 붉은 액정은 여전히 DIM_INDEX: 1.0002와 1.0001 사이를 어지럽게 오가며 경고음을 뿜어내고 있었다.
도윤은 빗속을 뒹굴며 깨달았다.
자신이 연 문은 단순히 가짜 도윤 한 명만을 통과시키는 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행 우주 전체의 포식자들과 또 다른 괴물들(Gamma)의 시선까지 끌어당긴, 닫지 못하면 세상 전체가 지워질 판도라의 상자였다.
그는 피를 흘리며 랩실 건물의 뒷문 유리창을 박차고 건물 안으로 들이닥쳤다. 문이 열렸고, 파멸의 카운트다운은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