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21화: 가짜의 사교성
차량이 재개발 구역 빌라 단지의 음산한 골목길에 멈춰 섰다.
부슬비가 차창을 두드리는 가운데, 형사들은 총기 상태를 점검하며 차 문을 열기 시작했다. 도윤 역시 노트북을 닫고 내릴 채비를 하던 중, 손에 쥔 스마트폰이 가볍게 진동했다. 과 동기 단톡방과 그의 어머니로부터 온 메시지 알림이었다.
도윤은 홀린 듯 화면을 터치해 들어갔다. 그곳에는 가짜가 저지른 폭행과 사기의 전조였던, 소름 끼치도록 교활한 대인관계 잠식의 흔적들이 낱낱이 드러나 있었다.
단톡방의 대화 기록은 도윤이 최근 며칠간 자취방과 랩실에 틀어박혀 밤샘 회로 설계에 미쳐 있던 시간대의 타임라인이었다.
[ 야, 임도윤 어제 동아리 술자리 와서 완전 대박이었음. 평소엔 구석에서 아싸처럼 말도 안 하더니 웬일로 싹싹하게 분위기 띄우더라? ]
[ 인정. 술값도 지가 다 내고. 최근에 돈 좀 들어왔나 봐? ]
[ 교수님 세미나 때도 도윤이가 피드백 엄청 매끄럽게 잘해서 다들 놀랐잖아. 최근에 도윤이 성격 진짜 밝아져서 보기 좋다. ]
도윤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그는 어제 동아리 술자리에 간 적이 없었다. 자취방에서 싱크로 장치와 씨름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가짜 도윤은 진짜 도윤이 방에 박혀 눈치채지 못하는 틈을 타, 수시로 이 차원으로 스며들어 '임도윤'의 행세를 하고 다녔던 것이다.
가짜는 소시오패스 특유의 매력적이고 위선적인 가면(Persona)을 완벽하게 쓰고 있었다.
평소 소심하고 개인주의적이었던 진짜 도윤의 대인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며 동기들과 조교, 심지어 교수님의 환심까지 사두었던 것이다. 동기들은 진짜 도윤의 어수룩함을 답답해하다가, 가짜가 보여준 세련되고 사교적인 모습에 완벽히 홀려 있었다.
어머니에게서 온 예전 메시지들 역시 도윤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 아들, 요새 웬일로 하루에 두 번씩 먼저 전화해서 애교도 부려? 목소리가 조금 감기 기운 있는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밝게 얘기해 주니까 엄마 아빠는 너무 기쁘다. 우리 도윤이 다 컸네. ]
"어머니까지……."
도윤은 손끝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가짜는 도윤이 바빠서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소홀히 하던 틈새까지 정교하게 메웠다. 가짜의 다정한 목소리와 거짓 웃음에 홀린 부모님은, 아들이 대기업 인턴 보증금 3천만 원이 급하다고 하자 아무런 의심 없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 보냈던 것이다.
끔찍한 인지 부조화였다.
동기들과 부모님의 눈에 비친 '진짜 임도윤'은 최근 사교성이 좋아지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완벽한 아들이었다.
반면, 가짜의 정체를 눈치채고 극도의 불안감에 떨며 조교의 멱살을 잡고 경찰에게서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친 진짜 도윤의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최근 밝아졌던 도윤이가 취업 스트레스로 미쳐버려 흉악범이 된 것'으로 왜곡되어 해석되고 있었다.
가짜는 도윤을 미치광이 범죄자로 고립시키고, 자신은 주변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업그레이드된 임도윤'으로 안착할 무대를 이미 완벽하게 설계해 두었던 것이다.
"이 괴물 같은 새끼……."
도윤의 절망 섞인 중얼거림에, 조수석 문을 열던 최 경위가 뒤를 돌아보았다.
"임도윤. 내릴 준비 해."
"경관님……."
도윤이 물기 어린 눈으로 최 경위를 보았다.
"저놈은 이미 제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스며들었어요. 다들 저를 미친놈으로 보고, 저놈을 진짜 도윤이로 믿고 있어요. 제가 여기서 저놈을 물리적으로 죽인다 해도, 세상 사람들은 제가 착한 쌍둥이 동생을 시샘해서 죽인 흉악범으로 기억할 겁니다. 저놈은 제 삶을 통째로 해킹한 거예요."
최 경위는 잠시 침묵하더니, 도윤의 어깨를 툭 쳤다.
"수사는 경찰이 한다. 네 억울함은 저 괴물 놈을 잡아서 진실을 밝혀내면 그만이야. 낙담하지 마, 임도윤. 넌 저놈과 DNA만 같지, 전혀 다른 인간이다."
최 경위의 투박한 위로가 차가운 빗속에서 도윤의 마음속에 작은 불꽃을 지폈다.
도윤은 가방끈을 꽉 움켜쥐고 승합차에서 내렸다. 빗방울이 그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지만, 그의 두 눈은 재개발 구역의 어둡고 비틀린 골목길 안쪽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가면을 쓴 가짜의 사교성이 만들어낸 위선의 무대를, 이제 진짜 도윤의 손으로 완전히 불태워 무너뜨릴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