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20화: 다른 나의 기록
경찰차의 사이렌은 꺼져 있었지만, 빗속을 질주하는 최 경위의 승합차 안은 무거운 침묵과 긴장감으로 터질 듯 팽팽했다.
도윤은 조수석에 앉아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무선 테더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신호를 잡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가짜가 훔쳐 간 구형 스마트폰의 클라우드 동기화 흔적을 추적하여, 저쪽 차원의 서버 드라이브로 들어갈 단서를 확보해야만 했다.
가짜의 아지트인 재개발 구역으로 가는 시간은 불과 15분. 그 안에 저 살인마가 숨겨둔 실체와 약점을 파악해야 했다.
"임도윤. 뭘 찾아내려는 거지?"
운전대를 잡은 최 경위가 전방의 빗길을 주시하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놈의 클라우드 드라이브예요."
도윤이 자판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그놈이 제 구형 스마트폰을 켜서 인터넷에 접속한 순간, 제 원래 계정과 그놈의 Beta 차원 백업 드라이브 사이의 백그라운드 동기화 포트가 일시적으로 열렸어요. 그놈도 저랑 완벽하게 똑같은 사고 패턴을 가지고 있으니, 클라우드 비밀번호의 조합 방식과 암호화 알고리즘도 저와 100% 동일할 겁니다."
도윤은 자신이 평소에 쓰는 비밀번호 생성 습관(자신의 학번, 첫 연구실 번호, 그리고 좋아하는 물리 상수의 조합)에 저쪽 세계만의 미세한 0.01% 위상차 오차 값을 대입해 보았다.
엔터키를 눌렀다.
[ LOGIN SUCCESSFUL ]
[ ACCESS GRANTED: BETA_CLOUD_DRIVE ]
"됐다!"
도윤의 외침에 뒷좌석의 형사들이 일제히 몸을 앞으로 숙였다.
노트북 화면에는 수십 개의 암호화된 오디오 파일과 텍스트 기록들이 나타났다. 파일명들은 기괴했다. experiment_human_death.wav, target_logic_check.txt 등 일반적인 대학생이나 연구원의 폴더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음산한 명칭들이었다.
도윤은 헤드폰 잭을 노트북에 꽂으려다, 이내 마음을 바꾸어 스피커 볼륨을 최대로 올렸다. 최 경위와 형사들도 이 괴물의 본색을 직접 귀로 들어야만 했다.
가장 최근에 저장된 오디오 파일 하나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치지직…… 지이익.
저쪽 차원의 거친 비바람 소리와 함께, 쇠 파이프가 긁히는 듯한 습하고 날카로운 가짜 도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김 박사를 죽였다.
첫 대사부터 차량 안의 공기가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최 경위의 눈썹이 씰룩였다.
- 박사는 내 연구 자금을 가로채고, 내 양자 전송 게이트 특허를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하려 했다. 탐욕스러운 늙은이. 그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쳤을 때 튀던 뇌척수액의 온도가 아직도 내 손끝에 생생하다.
음성 속 가짜 도윤의 어조는 마치 오늘 점심 메뉴를 담담하게 읊조리는 것처럼 지극히 차분하고 감정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것은 전형적인 소시오패스, 아니 살인을 예술이나 과학 실험의 일부로 여기는 광인의 음색이었다.
- 김 박사가 숨을 거두는 찰나의 순간, 내 장치에 기록된 양자 뇌파 파형을 분석했다. 흥미롭게도 인간의 죽음 직전 발생하는 극도의 공포와 뇌 신경 붕괴 에너지는, 주변 공간의 시공간 곡률을 미세하게 왜곡시키는 강력한 물리적 중력파를 방출하더군. 살인은 과학적으로도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공간 왜곡 트리거다.
뒷좌석의 형사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이 세계(Beta 차원)는 이제 끝났다. 기술 횡령과 살인죄로 경찰들이 내 목을 조여오고 있다. 하지만 난 이곳에서 죽지 않는다. 나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가 생겼다.
오디오에서 가짜 도윤의 삐뚤어진 기괴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0.01% 어긋난 평행선 너머의 또 다른 임도윤. 그 멍청하고 나약한 녀석은 참으로 따뜻하고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더군. 부모의 다정한 안부 전화, 조용한 대학 랩실, 그리고 강민아라는 그 쓸 만한 조력자까지.
음성 속 사내의 숨소리가 한층 가깝게 귓전을 때렸다.
- 내가 그 일상을 가져간다고 해도, 그 나약한 녀석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겠지.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는 순간, 진짜 임도윤과 강민아는 이 세상에서 지워질 거다. 완벽한 대체. 완벽한 이주. 내가 진짜 임도윤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다.
뚝.
오디오가 완전히 종료되며 노트북 화면이 깜빡였다.
승합차 안에는 오직 와이퍼가 앞 유리의 빗물을 거칠게 훔쳐내는 소리만이 삐걱거리며 울릴 뿐이었다. 형사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 경위 역시 운전대를 쥔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핸들을 꽉 쥐고 있었다.
"저놈은…… 미치광이야."
최 경위가 짓씹듯 읊조렸다.
"단순한 수배범이 아니야. 사람의 목숨을 도구로 쓰는 악마 같은 괴물이지. 임도윤, 네가 저런 괴물을 이 세상에 불러들인 거다."
"알고 있습니다."
도윤이 노트북을 덮으며 낮게 대답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슬픔과 분노가 기괴하게 뒤섞여 있었다.
"그래서 제 손으로 끝내야만 합니다. 저놈이 제 일상과 부모님, 그리고 민아를 짓밟게 놔두지 않을 겁니다."
차량은 마침내 빗물에 젖어 황폐하게 방치된 재개발 구역 빌라 단지의 골목 어귀로 진입했다. 어두컴컴하고 깨진 유리창들이 즐비한 유령 도시 같은 거리.
가짜의 아지트가 있는 지옥의 문턱에, 그들이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