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19화: 기계의 도난
"기계…… 기계가 없어!"
도윤의 절규가 제3공학관 412호 실험실을 뒤흔들었다.
방금 전 공간의 균열이 닫히고 강렬한 전자기 폭풍이 잦아들었을 때, 도윤은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자신의 낡은 백팩을 확인했다. 백팩은 밑바닥이 날카로운 열 선에 타버린 듯 길게 찢어져 있었고, 그 안에 보관해 두었던 오리지널 '싱크로(Synchro)' 장치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가방 안쪽의 차단재 섬유는 고열로 녹아내려 눌러붙어 있었지만, 기계의 실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최 경위와 형사들은 급히 가방 주변을 수색했으나 소용없었다.
"이게 말이 돼? 우리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키고 서 있었는데, 가방 안의 기계만 증발했다고?!"
형사 한 명이 제 머리를 짚으며 탄식했다.
그것은 물리적인 도둑질이 아니었다. 가짜 도윤이 10시 정각에 연출한 공간 왜곡의 일렁임은 단순한 홀로그램 경고가 아니었다. 가짜는 경찰이 랩실에 잠복해 있음을 확인하자마자 거래를 포기하는 대신, 공간 왜곡의 물질 전송 능력을 극대화하여 진짜 도윤의 가방 내부에 있던 싱크로 장치만을 표적 핀포인트로 자신의 차원으로 끌어가 버린 것이었다.
공간은 동일하지만 차원만 다른 0.01%의 틈새를 이용한, 완벽한 초차연적 도난이었다.
"경찰을 부른 순간부터 저놈은 랩실에 올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도윤이 좌절한 눈빛으로 타버린 가방 바닥을 매만졌다.
"저를 농락한 거예요. 기계의 전파를 동조해서 기계를 켜두게 만들고, 그 전류가 최고조에 달한 순간에 차원의 문을 통해 싱크로 기계 자체를 저쪽으로 낚아채 간 거라고요!"
그때, 가방 바닥의 타버린 틈새에서 조그만 종이 조각 하나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최 경위가 장갑을 낀 손으로 황급히 종이를 집어 올렸다. 그것은 붉은 진흙이 묻은 채 찢어진 편의점 영수증 조각의 뒷면이었다. 거기에는 날카롭고 삐침이 강한, 하지만 도윤의 필체와 소름 끼치도록 유사한 손글씨로 펜 글씨가 적혀 있었다.
[ 경찰을 부르면 거래는 파기라고 했을 텐데. ]
최 경위가 소리 내어 쪽지를 읽어 내려갔다. 형사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 덕분에 오리지널 싱크로 장치는 잘 가져간다. 킬 스위치를 심어둔 것도 꽤 귀여운 발상이었어. 고전압 트랩 회로는 내 손으로 직접 땜질해서 무력화해 두지. ]
도윤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밤새도록 심어둔 고전압 펄스 쇼트 트랩까지 가짜는 완벽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가짜 역시 도윤의 뇌를 공유하듯 공학적 지식이 동일했기에, 도윤이 기계에 가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미리 예측하고 해체한 것이었다.
쪽지의 문구는 최후의 절망을 담고 있었다.
[ 이 기계와 네 구형 스마트폰이 내 손에 있으니, 네 완벽한 알리바이를 깨고 네 삶을 훔치는 건 이제 시간문제겠군. 이 삶, 꽤나 아늑하네. 고마워. ]
쪽지는 그렇게 끝났다.
"이 삶, 꽤나 아늑하네. 고마워……."
도윤은 쪽지의 마지막 문장을 읊조리며 벽을 짚었다.
가짜는 이미 도윤의 구형 폰에 든 부모님의 돈을 뜯어냈고, 도윤의 외투를 입고 폭행 사건을 저질러 도윤을 범죄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차원 이동을 완벽하게 수행할 오리지널 싱크로 장치까지 훔쳐 갔다.
가짜에게 부족한 마지막 조각은 이쪽 차원의 랩실에 설치된 고출력 헬름홀츠 코일 게이트 장치뿐이었다. 만약 가짜가 그 장치까지 동조시켜 완벽한 물질 게이트를 활성화한다면, 그는 아무런 차원 굴절 왜곡 없이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이 차원에 안착하게 된다.
최 경위는 쪽지를 증거물 봉투에 담으며 도윤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임도윤. 네 말대로라면 저 살인마 놈은 이제 기계를 다 훔쳤으니 굳이 널 만나러 올 필요가 없겠군. 그럼 강민아라는 그 여자애는 어떻게 되는 거지?"
"민아는……."
도윤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기계가 완벽하게 작동해서 저놈이 이쪽 세계에 안착하는 그 순간까지는 인질로 살려둘 겁니다. 하지만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고 저놈이 제 삶을 완전히 대체하는 순간…… 민아는 죽어요. 비밀을 아는 유일한 목격자이니까요."
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시간이 없어요, 경관님. 가짜가 싱크로 장치를 켜서 랩실의 코일 장치와 최종 동조를 시도하기 전에, 저놈의 아지트를 찾아내야 합니다. 저놈이 훔쳐 간 스마트폰의 GPS 신호가 잡혔던 그 재개발 구역…… 거기가 유일한 단서예요."
최 경위는 권총을 허리춤에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상식을 벗어난 기괴한 사건이었지만, 눈앞에서 물건이 증발하고 살인마의 협박 쪽지가 남은 이상 더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강력3팀, 움직인다. 타겟은 재개발 구역이다. 임도윤, 너도 같이 간다. 딴생각하면 뇌에 구멍을 내주지."
"가요. 저도 저놈을 끝장내야 하니까요."
도윤은 가방을 고쳐 메고 랩실을 나섰다. 기계는 도난당했고, 수사망은 좁혀졌지만, 진짜 사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