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17화: 알리바이 패러독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최 경위의 등 뒤에 서 있던 형사가 쥐고 있던 권총을 떨어뜨릴 뻔하며 비틀거렸다.
랩실 중앙의 공기는 액체처럼 끈적하게 요동치며 주변의 빛을 굴절시키고 있었다. 지지직거리는 고주파 노이즈와 함께, 텅 빈 테이블 위 공간에 가로세로 수 미터 크기의 기하학적인 왜곡 선들이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차원의 장벽에 가해진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현실이 쩍 쩍 갈라지는 듯한 기괴한 균열이었다.
그리고 그 틈새 너머로, 한 사내의 실루엣이 투명한 홀로그램처럼 드리워졌다.
올리브색 맥코트를 입고 안경을 쓴 채, 빗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사내.
그것은 임도윤의 얼굴이었다. 도윤의 발끝에 수갑을 던지려던 최 경위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어버렸다. 눈앞에 서서 피를 흘리며 땀에 젖어 있는 임도윤과, 공간의 균열 너머에서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들을 굽어보고 있는 또 다른 임도윤.
두 명의 임도윤이 한 방에 물리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 아쉽군. 기계 소자가 조금만 더 버텨줬다면 완전히 건너갔을 텐데.
공간의 왜곡 균열 속에서 가짜 도윤의 목소리가 에코를 머금고 울려 퍼졌다.
그의 음성은 랩실 안의 전자 장비 디스플레이 스피커들을 강제로 공진시키며 동시다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가짜의 발밑에는 결박된 채 신음하고 있는 강민아의 실루엣이 불투명하게 겹쳐 보였다.
- 임도윤, 역시 멍청한 짓을 해놨더군. 장치에 쇼트 회로를 심어둘 줄이야. 하지만 소용없어. 게이트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고 일방통행으로 열렸다. 곧 동조가 완료되면 난 그쪽으로 넘어간다.
"이 미친 새끼야! 민아 어떻게 했어!"
도윤이 달려들려 하자, 가짜는 싱긋 웃으며 민아의 머리칼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 까불지 마. 게이트의 공률을 100%로 고정해라. 1초라도 주파수가 틀어지면 이 계집의 심장에 쇠 송곳을 박아넣겠다.
가짜의 섬뜩한 선언과 함께, 랩실 중앙을 가르던 공간 왜곡이 파지직 소리를 내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먹먹했던 귀가 뚫리며 랩실 안에는 다시 차가운 형광등 불빛과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형사들은 넋이 나간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20년 동안 강력계에서 온갖 잔인한 살인마와 조직폭력배를 상대해 온 최 경위조차, 난생처음 겪는 초자연적인 모순 앞에 권총을 쥔 손을 바르바르 떨고 있었다.
"방금…… 방금 저게 뭐지? 특수 효과인가? 홀로그램 빔 프로젝터 같은 거야?"
사복 형사가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이성을 유지하려는 비겁한 자기최면이 묻어 있었다.
"아닙니다, 반장님."
도윤이 최 경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억울함과 절망이 가득 차 있었다.
"저게 바로 제가 말씀드린 가짜예요. 0.01%의 오차를 가진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살인마 임도윤이라고요. 오늘 아침 8시 반에 대학로에서 지나가던 행인을 벽돌로 친 것도, 어제 조교 지훈 형의 멱살을 잡은 것도 다 저놈이에요!"
최 경위는 수갑을 천천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는 도윤의 멱살을 쥐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의 눈빛은 혼란과 충격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설명해. 임도윤. 이게 대체 무슨 해괴망측한 패러독스야? 동일인이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말이 안 되니까 알리바이 패러독스죠!"
도윤은 벽에 기댄 채 최 경위의 눈을 피하지 않고 소리쳤다.
"오늘 아침 8시 반, 대학로에서 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저는 제 자취방에서 기계를 밤새 개조하고 있었어요. 컴퓨터 타임스탬프와 기기 로그 데이터가 제 자취방 IP 주소로 완벽하게 기록되어 있다고요! 동시에 대학로 CCTV에는 제 얼굴을 한 놈이 벽돌을 휘두르고 있었죠. 지문도, 얼굴도, 심지어 제 자취방 옷장에서 사라진 맥코트까지 완벽하게 동일한 증거물들이죠."
도윤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법정에서는 제 얼굴과 지문이 나왔으니 저를 범인으로 확정하겠죠. 하지만 저는 그 시간에 제 방에서 코딩을 하고 있었다는 물리적, 디지털적 알리바이가 존재해요. 동일한 존재가 물리적 공간 법칙을 무시하고 동시에 두 군데에 나타난 이 모순을, 수사 과학으로 어떻게 증명하실 건가요?"
최 경위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도윤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그는 뒷걸음질 치며 랩실 중앙의 헬름홀츠 코일 장치와 도윤이 안고 있는 붉은 싱크로 장치를 쳐다보았다. 방금 눈앞에서 찢어졌던 시공간의 균열, 그리고 무전기를 마비시켰던 강렬한 양자 자기장은 단순한 사기극이나 홀로그램으로 연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반장님, 저 새끼 일단 서에 연행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윗선에 보고는 어떡하고……."
"닥쳐 봐."
최 경위가 형사의 말을 잘랐다.
그는 담배를 물려다 랩실 내부의 경고 표시를 보고 주머니에 다시 찔러 넣었다. 머릿속이 수천 개의 부서진 톱니바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만약 임도윤의 말이 진짜라면, 지금 수사망이 쫓고 있는 것은 눈앞의 가냘픈 대학생이 아닌, 물리 법칙을 뛰어넘어 차원을 넘나드는 괴물이었다.
"임도윤."
최 경위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도윤을 불렀다.
"일단 널 체포하진 않겠다. 하지만 넌 이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어. 그 '가짜'라는 살인마가 저기 갇혀 있는 강민아를 데리고 완전히 넘어올 때까지, 여기서 나랑 대기한다."
도윤은 주먹을 꽉 쥐었다.
경찰의 수사망은 보류되었지만, 가짜가 던진 모순의 그물은 여전히 팽팽하게 그들의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