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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너머의 침입자14화

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14화: 도망자

골목길의 찬 빗물 속에 버려졌던 도윤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가슴팍에는 가짜의 무자비한 구두 굽에 짓눌린 멍 자국이 시퍼렇게 들어 있었고, 갈비뼈가 숨을 쉴 때마다 찌르듯 쑤셔왔다. 하지만 육체적인 통증보다 그를 괴롭힌 것은 가짜의 실체에 대한 무거운 절망감이었다. 가짜의 다리 힘, 그리고 민아의 목을 빨간 볼펜으로 그어버리겠다던 막힘없는 폭언에는 사람을 죽여본 자 특유의 서늘함이 깃들어 있었다.

가짜는 단순한 도플갱어가 아니었다. 그는 극한의 상황에 몰린 살인마였다.

도윤은 책상 앞에 앉아 붉게 고정되어 버린 싱크로 장치를 쳐다보았다.

기계는 가짜의 차원 송신 장치와 동조되어 여전히 웅웅거리는 진동을 내뿜고 있었다. 도윤은 노트북을 열어 기계와 연동된 USB 포트를 연결했다. 가짜가 훔쳐 간 구형 스마트폰이 이쪽 차원의 신호와 얽히며 남긴 양자 궤적(Quantum Trajectory) 로그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메모리 버퍼에 쌓여 있었다.

도윤은 떨리는 손으로 분석 툴을 가동했다. 저쪽 세계의 침입자가 남긴 디지털 흔적들을 역추적하여, 그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내야만 했다.

타타타탁-.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어두운 방 안을 채웠다. 간이 데이터 복원 스크립트가 실행되며, 가짜가 훔쳐 간 폰에 동기화되었던 저편 세계(Beta 차원)의 시스템 백업 데이터 일부가 노트북 화면에 깨진 문자열과 함께 복원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짜 임도윤이 저쪽 차원에서 도망치며 남긴 기괴한 범죄 기록과 음성 일지들의 파편이었다.

[ TARGET_LOG_RECOVERED ]
[ DIM_INDEX: 1.0001 ]
[ FILE: beta_incident_report.db ]

도윤은 마우스를 클릭해 텍스트를 읽어 내렸다.

화면에 출력된 것은 Beta 차원의 뉴스 기사와 경찰의 수색 영장 텍스트였다.

『한성 시립대학교 연구원 임도윤, 국책 양자 역학 연구 재단의 프로젝트 기금 50억 원을 횡령 및 기술 유출 혐의로 수색 중. 피해자인 수석 연구원 김성민(42) 박사는 연구실 내에서 둔기에 머리를 맞아 참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됨. 용의자 임도윤은 살인 및 방화 혐의로 전국에 긴급 수배……』

도윤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쪽 차원의 임도윤은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으나 철저한 소시오패스였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동료 연구원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건물을 불태운 뒤, 국가 연구소의 프로토타입 차원 게이트 제어 장치를 훔쳐 달아난 무시무시한 도망자였던 것이다.

이어 오디오 복원 파일이 재생되었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기계 발진음이 섞인 가짜의 독백이었다.

치지직거리는 노이즈 너머로 차가운 음성이 이어졌다.

가짜의 목소리에는 악랄한 희열이 담겨 있었다.

뚝.

오디오가 끊어졌다.

도윤은 모니터의 푸른 빛을 받으며 깊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모든 미스터리가 풀렸다. 가짜는 도윤이 우연히 쏘아 올린 미세한 양자 노이즈 비콘(Beacon) 신호를 목숨줄처럼 잡고 역추적해 차원의 문을 열었던 것이었다. 그는 본래 차원에서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벼랑 끝의 살인마였고, 그렇기에 이쪽 차원으로 넘어오는 데 자신의 목숨과 타인의 목숨을 아낌없이 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미친놈과 내일 아침에 거래를 해야 한다고……?"

가짜는 민아를 살려둘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다. 거래 장소인 랩실에 오리지널 싱크로 장치를 가져가는 순간, 가짜는 도윤과 민아를 모두 처참하게 살해하고 유일한 탈출 통로인 장치를 완전히 탈취해 이 세상의 '임도윤'으로 안락하게 살아갈 음모를 완성하려 할 터였다.

도윤은 주먹을 쥐었다. 무릎을 꿇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상대는 프로 살인마이자 천재 공학자였다. 육체적인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진 유일한 무기, 즉 이 실험실 장치들의 물리적 작동 메커니즘을 이용한 지적 함정을 파야 했다.

도윤은 책상 서랍을 열어 고전압 충격기 부품들과 랩실에서 여분으로 챙겨두었던 대용량 리튬 배터리 팩을 꺼냈다.

"게이트를 닫을 수 없다면…… 차원 이동이 완료되는 그 순간에 파괴적인 과전류를 흘려보내야 해."

그는 싱크로 장치의 안테나 도파관 주변에 미세한 강제 쇼트 회로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가짜가 싱크로 장치를 빼앗아 기계를 만지거나 가동하려 하는 순간, 손가락 끝을 통해 양자 상태의 고전압 펄스가 몸으로 방출되도록 설계하는 치명적인 트랩이었다.

밤새도록 인두기 끝에서 튀는 스파크가 도윤의 안경 유리에 붉게 반사되었다.

도망칠 곳 없는 가짜 도윤과,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살인귀로 변해가는 진짜 도윤. 두 도망자와 추격자의 운명을 건 마지막 아침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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