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13화: 첫 번째 조우
시공간의 장벽이 붕괴하고, 기계가 폭주하며 거울 면을 찢어버린 그 끔찍한 새벽.
도윤은 자취방에 가만히 앉아 아침이 오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거래 약속 시간은 내일 오전 10시였지만, 민아가 그 살인마의 손에 묶여 있는 매 순간이 지옥 같았다. 자취방 거울의 균열 너머로 스며들던 피비린내와 습기는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붉게 타오르며 킬 스위치조차 눌러붙어 버린 싱크로 장치는 제어가 불가능한 채 양자 에너지를 허공으로 방출하고 있었다.
도윤은 싱크로 장치를 가방에 쑤셔 넣고, 한 손에는 랩실에서 가져왔던 쇠 파이프 조각을 품에 숨긴 채 빗속으로 뛰쳐나왔다.
하늘은 다시 검은 장막을 드리웠고, 장대비가 아스팔트를 사정없이 두들기고 있었다. 대학가 원룸 타운의 어두운 골목길은 빗물에 젖어 번들거렸고, 듬성듬성 켜진 가로등 불빛만이 물 웅덩이 위에 위태롭게 흔들렸다.
도윤은 미친 사람처럼 빗속을 헤맸다. 민아의 가방이 발견되었던 대학로 북카페 주변, 가짜가 머물렀을 법한 외진 재개발 구역 빌라 골목들을 샅샅이 뒤졌다. 차가운 빗물이 옷을 적시고 안경 유리를 흐려 놓았지만, 심장 속에서 끓어오르는 아드레날린이 그를 앞으로 밀어냈다.
새벽 1시 30분.
원룸 타운 가장 깊숙한 곳, 재개발을 앞두고 가로등 절반이 꺼진 어둡고 한적한 막다른 골목길이었다.
도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낡은 시멘트 벽면에 몸을 기댔다. 빗물에 젖은 앞머리가 눈을 찔렀다. 절망과 무력감이 온몸을 잠식해 가던 바로 그 순간, 골목 초입의 깨진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툭, 툭, 하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빗소리에 묻혀 희미했지만, 도윤은 즉각 반응했다.
그것은 젖은 운동화가 물웅덩이를 밟는 소리였고, 그 박자는 소름 끼치도록 낯익었다.
도윤은 쇠 파이프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가로등의 노란색 백열등 불빛 아래, 우산도 쓰지 않은 한 남자의 실루엣이 천천히 나타났다.
남자는 도윤이 자취방 옷장에서 잃어버렸던 바로 그 올리브색 맥코트를 입고 있었고, 도윤이 평소 쓰던 것과 똑같은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남자가 고개를 들자, 가로등 불빛이 그의 안면을 비추었다.
"……!"
도윤은 숨을 삼켰다.
거울을 마주 보는 것 같았다. 젖은 머리카락의 뭉침, 약간 삐뚤어진 콧날, 날카로운 눈매와 턱 선까지. 그곳에 서 있는 존재는 임도윤, 자기 자신이었다.
하지만 눈빛이 달랐다.
불빛 아래 드러난 가짜 도윤의 두 눈동자는 소름 끼칠 정도로 깊고 어두운 심연 같았으며, 도덕성이나 감정 같은 인간적인 온기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입꼬리는 기괴하게 위로 찢어지듯 올라가 조롱 섞인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임도윤."
가짜가 도윤의 이름을 불렀다.
성대모사가 아니었다. 도윤 본인의 목소리 테두리를 가졌지만, 한층 더 낮고 뱀이 기어가는 듯한 습한 억양을 머금은 목소리였다.
"경고했을 텐데. 내일 아침까지 쥐 죽은 듯이 기계나 켜두고 있으라고. 왜 빗속을 싸돌아다니며 꼴사납게 굴어?"
"이 미친 새끼야……!"
도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쇠 파이프를 휘두르며 가짜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몸을 가볍게 비틀었다. 도윤의 주먹과 파이프가 허공을 갈랐고, 빗속에서 도윤은 중심을 잃고 아스팔트 바닥으로 볼품없이 넘어졌다. 무릎이 까지고 옷에 더러운 빗물이 묻었다.
가짜는 넘어진 도윤을 차가운 시선으로 굽어보며 나지막하게 혀를 찼다.
"어설프군. 나랑 생물학적으로 완벽히 동일한 육체를 가졌으면서도, 이렇게 약해 빠졌다니. 역시 온실 속의 화초처럼 평화롭게 자란 놈답군."
가짜는 천천히 걸어와 도윤의 머리맡에 섰다. 가짜의 운동화 끝에서 피 섞인 붉은 빗물이 흘러나왔다.
"강민아 어디 있어! 민아 건드렸으면 내 손으로 널 찢어 죽여버리겠어!"
도윤이 소리치며 일어나려 했으나, 가짜가 뻗은 젖은 구두 굽이 도윤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억!
강력한 충격과 함께 숨이 턱 막혔다. 가짜의 다리 힘은 도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사선을 넘나들며 도망치고 사람을 죽여온 살인마 특유의 폭력성이 날것 그대로 전해졌다.
"민아는 살아 있어. 아직은 말이지."
가짜가 도윤의 안경 너머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속삭였다.
"하지만 내일 오전 10시까지 랩실의 장치들이 완벽하게 좌표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 계집의 목구멍에 빨간 볼펜을 찔러 넣어주지. 네가 내 세계에서 가져갔던 그 빨간 볼펜 말이야. 아주 어울리는 죽음이 되겠지?"
"이 개자식……."
"네가 만든 기계는 위대해, 도윤아. 하지만 넌 그걸 다룰 자격이 없어. 넌 너무 겁이 많고, 나약해. 그 장치는 나처럼 살아남기 위해 모든 걸 버릴 준비가 된 사람에게 어울려."
가짜는 발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가로등 불빛이 깜빡이며 그의 실루엣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0.01%의 시공간 오차가 두 사람의 물리적 접촉 지점에서 미세한 전자기 간섭을 일으키고 있었다.
"내일 아침 10시. 싱크로 오리지널 기계를 들고 제3공학관 랩실로 와라. 만약 경찰을 부르거나 기계를 훼손하면, 약속은 끝이야. 난 네 부모의 병원으로 갈 거다. 네 어머니가 참 다정하시더군."
"가지 마! 거기 서!"
도윤이 바닥을 딛고 일어나 가짜를 향해 돌진했지만, 그 순간 골목길의 가로등 불빛이 완전히 나갔다.
파지직, 툭.
칠흑 같은 암흑과 장대비 속에서 도윤은 허공을 움켜쥐었다.
몇 초 후, 멀리서 전원이 다시 들어오며 가로등이 켜졌을 때, 가로등 밑에는 아무도 없었다. 빗물이 고인 아스팔트 위에 붉은 진흙 찌꺼기만이 씻겨 내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도윤은 빗속에 멍하니 서서 주먹을 쥐었다. 피가 섞인 빗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두 명의 임도윤, 그들의 첫 번째 대면은 처참한 굴욕과 절망으로 끝났다. 하지만 도윤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일 아침 10시. 그 살인마의 숨통을 끊어놓지 못하면, 자신도, 민아도, 가족도 모두 저 빗물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