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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너머의 침입자12화

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평행선 너머의 침입자

12화: 문을 열다

침묵 속에서 붉은빛만을 뿜어내는 싱크로 장치를 내려다보며, 도윤은 절망의 소용돌이 속으로 가라앉았다.

가짜의 요구는 명확했다. 내일 오전 10시, 제3공학관 랩실에서 오리지널 싱크로 장치를 들고 가 강민아와 맞바꾸는 것. 하지만 도윤은 알고 있었다. 가짜가 원하는 것은 거래가 아니었다.

가짜는 이쪽 차원으로 완전히 도피하기 위해, 진짜 도윤과 그 비밀을 아는 유일한 조력자인 민아를 모두 지워버릴 셈이었다. 가짜의 지시대로 두 개의 게이트(자취방의 싱크로, 랩실의 코일 장치)를 계속 켜둔다면, 두 차원을 가로막고 있는 0.01%의 장벽은 완전히 붕괴하고 말 터였다.

그렇게 되면 가짜는 아무런 제약 없이 이쪽 세계를 유린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둘 순 없어. 어떻게든 이 게이트를 내 손으로 닫아야 돼."

도윤은 분노로 가득 찬 손으로 십자 드라이버를 쥐었다.

그는 싱크로 장치의 플라스틱 케이스를 거칠게 분해했다. 가짜의 위협이 무서웠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차원의 벽이 허물어져 일상이 통째로 살인마의 손에 넘어가는 일이었다. 민아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기습적으로 게이트의 동조 주파수를 비틀어 가짜의 차원 이동 경로를 차단할 '안전장치' 혹은 '킬 스위치'를 만들어야 했다.

도윤은 주파수 발진 단의 회로선에 인두기를 가져다 대었다.

차원 동조 회로의 특정 다이오드를 끊어내어, 수신은 가능하되 물질 전송은 불가능하도록 물리적 위상차를 고정하려는 시도였다.

치지직.

인두기 끝이 납땜 부위에 닿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싱크로 장치의 스피커에서 귀가 먹먹해지는 저음의 진동음이 웅웅거리며 터져 나왔다.

우우우우웅-!

동시에 방 안의 모든 전등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이 미친 듯이 일렁이더니 파란색 블루스크린으로 변해버렸다.

"뭐야……?"

도윤은 당황하여 인두기를 떼어냈다. 하지만 장치의 폭주는 멈추지 않았다.

OLED 디스플레이의 붉은 액정 화면 위로, 수치들이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기 시작했다.

[ OUTPUT_POWER: OVERLOAD ]
[ SYNCHRONIZATION: 99.9% ]
[ DIM_INDEX: 1.0000 -> 1.0001 (FUSION ACTIVE) ]

"역류하고 있어!"

도윤은 깨달았다. 반대편 차원의 가짜 도윤 역시 그쪽 세계의 장비출력을 강제로 최대치까지 끌어올려 이쪽 싱크로 장치로 고출력 전자기 에너지를 역송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차원의 기계가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상태로 고정되자, 회로는 피드백 루프에 빠져 끝없이 과부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도윤은 다급하게 전원 플러그를 뽑았다.

툭.

하지만 소용없었다.

콘센트에서 플러그가 뽑혀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싱크로 장치의 붉은 액정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판 내부의 구리 안테나 코일이 붉게 달아오르며 스스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외부 전원 공급 없이도, 두 차원 사이의 위상차에서 발생하는 양자 위치 에너지가 자체적으로 무한한 전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안 돼! 멈춰!"

도윤은 기계를 강제로 종료하기 위해 주파수 다이얼을 억지로 돌리려 했다.

하지만 이미 뜨겁게 달아오른 알루미늄 다이얼 노브는 고열로 인해 기판 내부의 플라스틱 가변 저항 소자들과 완전히 '눌러붙어' 있었다. 손으로 아무리 돌리려 해도 노브는 바위처럼 고정되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짜의 교활한 덫이었다. 가짜는 도윤이 기계를 끌 수 없도록 반대편에서 차원 주파수 채널을 물리적으로 땜질해 고정해 버린 것이었다.

파지직! 콰아아아!

기판 중앙에서 파란색 스파크가 거세게 튀며 연기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자취방 안의 중력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플라스틱 펜과 종이컵, 책상 위의 전공 서적들이 서서히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공간의 밀도가 비정상적으로 뒤틀리며 도윤의 귀가 마치 깊은 물속에 잠긴 것처럼 먹먹하게 조여왔다.

벽면에 비뚤게 걸려 있던 원형 거울 표면에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거울 유리가 스스로 비틀리며 미세한 차원의 경계 틈새가 검은 구멍처럼 쩍 벌어졌다. 그 틈새 너머로, 젖은 비바람 소리와 함께 피비린내 섞인 저쪽 세계의 공기가 이쪽 방 안으로 마구 들이닥쳤다.

차원의 문이 기계의 폭주와 함께 완전히 '열려버린' 것이었다.

"아아……."

도윤은 공중에 뜬 책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무릎을 꿇었다.

이제 포털의 제어는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0.01%의 장벽은 조각나 부서졌고, 두 세계의 경계선은 폭발적으로 중첩되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 10시.

제3공학관 랩실에서 벌어질 그 살인마와의 조우는 단순한 인질 교환이 아닐 터였다. 그것은 찢어진 시공간의 틈새 속에서 벌어질, 단 한 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피비린내 나는 생존의 종착역이었다.

도윤은 바닥에 흩어진 붉은 흙을 꽉 움켜쥐며 붉게 타오르는 싱크로 장치를 노려보았다.

문은 열렸고, 침입자는 이미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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