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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의 레이싱 라인이 보인다6화

최적의 레이싱 라인이 보인다

최적의 레이싱 라인이 보인다

6화: 피트 끝자리

코리아 카트 챔피언십 개막전 접수처는 이른 오전부터 붐볐다.

팀 트럭들이 서킷 입구를 따라 줄을 섰고 새 타이어의 비닐 냄새와 휘발유 냄새가 차가운 공기 속에 섞였다. 명성 레이싱의 대형 트레일러는 이미 패독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강한수의 낡은 포터가 접수 창구 앞에 멈췄을 때 운영위원은 서류철을 넘기다가 손을 멈췄다.

“강진우 선수요?”

“네. 주니어 클래스 개인 참가입니다.”

강한수가 엔트리 확인서를 내밀었다. 운영위원은 뒤쪽 유리문을 한번 흘끗 보더니 피트 배정표를 꺼냈다.

“피트는 D-12입니다. 공식 연습은 주니어 마지막 조, 오후 세 시 사십 분.”

강한수의 얼굴이 굳었다.

“D-12면 끝자리 아닙니까?”

“맞습니다.”

“거긴 전기 콘센트도 멀고 콤프레서 라인도 안 닿을 텐데요. 접수는 우리도 기간 안에 했습니다.”

운영위원은 준비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팀 단위 신청이 우선 배정됐습니다. 개인 참가자는 잔여 피트로 들어갑니다.”

“그럼 공식 연습은요. 마지막 조면 노면도 식고 마블도 다 깔립니다.”

“배정은 끝났습니다.”

짧은 말이었다.

진우는 배정표를 조용히 내려다봤다. A라인과 B라인에는 명성 레이싱과 협력 팀 이름이 빼곡했다. D-12는 피트 레인 가장 끝, 정비 차량이 돌아 나가는 배수로 옆이었다.

우연일 리 없었다.

유리문 너머로 백종열이 누군가와 악수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강한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려 했다.

진우가 먼저 말했다.

“아버지.”

“왜.”

“자리부터 보죠. 여기서 싸워도 바뀌지 않습니다.”

강한수의 턱 근육이 꿈틀했다. 그래도 그는 서류를 챙겨 들었다.

진우는 창구를 떠나며 다시 배정표를 떠올렸다.

피트 끝자리.

마지막 공식 연습.

명성은 트랙에 오르기 전부터 브레이크를 걸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 브레이크 포인트까지 라인에 넣으면 된다.


D-12는 말 그대로 끝자리였다.

피트 벽은 낮았고 바닥에는 전날 물청소가 마른 자국이 얼룩처럼 남아 있었다. 바람은 패독 안쪽보다 더 세게 불었다. 옆 배수 홈에는 먼지와 고무 찌꺼기가 검게 뭉쳐 있었다.

강한수는 카트를 내리자마자 낮게 숨을 뱉었다.

“여기서 정비하라는 건 그냥 나가라는 소리지.”

전기 릴선을 두 개 이어도 콘센트까지 빠듯했다. 콤프레서 호스는 닿지 않았다. 타이어 압력을 맞추려면 휴대용 펌프와 작은 에어 탱크에 의지해야 했다.

다른 팀 피트에서는 이미 워머에 감긴 신품 슬릭이 트롤리 위에서 김을 올리고 있었다. 미케닉들은 장갑을 낀 손으로 타이어 표면을 눌러보며 기록지를 주고받았다.

진우는 그쪽을 오래 보지 않았다.

대신 카트를 피트아웃 쪽으로 천천히 밀었다. D-12에서 트랙으로 나가려면 다른 피트를 전부 지나야 했다. 시간은 손해였다. 하지만 합류 각도는 묘하게 넓었다.

피트 레인 끝 바깥쪽 아스팔트는 안쪽보다 거칠었다. 청소 차량이 닿지 않은 구간에는 모래와 마블이 얇게 깔려 있었다.

진우는 쪼그려 앉아 장갑 낀 손끝으로 노면을 문질렀다.

고운 먼지가 묻어 나왔다.

그 아래쪽에는 거친 결이 살아 있었다.

푸른 선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피트아웃 합류 각도: 넓음]
[바깥 노면 마찰 계수 불균일]
[저온 중고 타이어 표면 활성 가능]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강한수가 어이없다는 듯 돌아봤다.

“뭐가?”

“첫 랩은 손해입니다. 대신 타이어 표면을 천천히 깨울 수 있어요.”

“먼지 위로 달리겠다고?”

“먼지를 밟겠다는 게 아니라 먼지 아래 결을 쓸 겁니다. 안쪽 라인은 오전 내내 신품 타이어가 지나가면서 고무를 깔아놓을 거예요. 처음엔 빠르겠지만 오후가 되면 열이 빨리 올라옵니다. 오른쪽 앞 숄더부터 죽을 가능성이 큽니다.”

강한수는 배수 홈과 피트아웃 끝을 번갈아 봤다.

“저놈들은 첫 연습부터 기록 찍으려고 들겠지.”

“그래야 사람들이 믿으니까요.”

“우리는?”

“첫 두 랩은 버립니다.”

강한수의 눈썹이 꿈틀했다.

“또 그 소리냐.”

“오늘은 최고 기록을 보여주는 날이 아닙니다. 어디가 살아 있는지 찾는 날이에요.”

진우는 피트 끝에서 트랙을 바라봤다.

한눈에 보이는 길은 안쪽이 아니었다. 바깥으로 돌아 들어가 코너 중반에서 살짝 접히는 먼지 낀 선.

그 선은 느렸다.

하지만 덜 죽었다.

강한수는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휴대용 펌프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좋다. 대신 숫자는 내가 본다. 네가 타이어 아낀다고 헛바퀴 돌면 바로 불러들인다.”

“네, 치프.”

강한수는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 올라오려는 웃음을 감추려는 얼굴이었다.


명성 레이싱의 피트 앞에는 사람이 몰려 있었다.

임준서는 새 레이싱 수트를 입고 서 있었다. 옆에는 백종열이 팔짱을 낀 채 다른 팀 관계자들과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진우 부자가 D-12에 짐을 푸는 순간 더 짙어졌다.

백종열이 느릿하게 걸어왔다.

“강 사장님. 자리가 마음에 드십니까?”

강한수의 손등에 핏줄이 섰다.

“감독님 작품입니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대회 운영은 운영위가 하는 겁니다.”

백종열의 시선이 진우에게 내려왔다.

“개인 참가자는 원래 불편한 법이지. 레이싱은 실력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진우는 카트의 프런트 너클을 확인하며 고개도 들지 않았다.

“서킷 위에서는 굴러갑니다.”

백종열의 눈가가 차갑게 식었다.

“서킷 위에 올라가는 것부터가 레이스다.”

그는 몸을 돌려 임준서를 불렀다.

“준서야. 오늘 첫 연습에서 40초대 찍어라. 사람들이 무엇이 진짜 실력인지 보게 해줘야지.”

임준서는 진우를 바라봤다.

새벽 어둠 속에서 본 41.16초가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낡은 중고 타이어가 랩을 거듭할수록 안정되던 장면. 그때 느낀 감각은 분노보다 두려움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입은 다르게 움직였다.

“끝자리에서 나오다가 시간 다 쓰는 거 아니냐?”

진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연습은 시간 쓰는 법을 배우는 거야.”

준서의 얼굴이 굳었다.

백종열의 미소도 잠깐 멈췄다.

진우는 다시 카트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도발이 아니었다. D-12에서 피트아웃까지 걸리는 시간. 첫 코너 바깥 노면의 결. 그리고 중고 타이어가 깨어나는 온도.

그것뿐이었다.


오후 세 시 사십 분.

주니어 마지막 공식 연습 조가 피트 레인에 섰다.

명성의 앞선 조는 이미 소란을 만들고 지나갔다. 임준서는 신품 슬릭과 워머를 이용해 40.88초를 찍었다. 패독 전체가 그 숫자를 이야기했다.

“준서 올해도 우승이겠네.”

“명성은 장비가 다르다니까.”

“강진우는 어디야? 끝 피트에 있던 애?”

진우는 헬멧 바이저를 내렸다.

강한수가 카트 뒤를 잡았다.

“첫 두 랩 버린다.”

“네.”

“대신 세 번째부터 못 찾으면 바로 들어와. 타이어 낭비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피트 출구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었다.

타다다당!

카트가 움직였다.

D-12에서 출발한 진우는 일부러 가장 바깥쪽으로 넓게 돌았다. 다른 카트 두 대가 먼저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한 대는 뒤에서 손짓까지 했다. 비켜 달라는 뜻이었다.

진우는 비켜줬다.

첫 랩은 느렸다.

41.72.

피트 월 근처에서 누군가 웃었다.

“끝났네.”

강한수는 스톱워치를 꽉 쥐었다.

두 번째 랩.

진우는 여전히 바깥쪽을 썼다. 첫 코너 안쪽의 고무가 깔린 라인을 지나치고 조금 더 먼지가 많은 곳에서 브레이크를 짧게 밟았다.

앞타이어가 미끄러졌다.

하지만 미끄러짐은 날카롭지 않았다. 거친 노면 결이 중고 타이어 표면을 얇게 긁었다. 죽은 고무 막이 벗겨지고 아래쪽의 낮은 그립층이 일정하게 열을 받았다.

[표면 활성 진행]
[숄더 온도 편차 감소]
[권장 하중 전환: 0.2초 지연]

진우는 스로틀을 참았다.

반 박자.

좌측 레일이 비틀리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다음 열었다.

바아앙!

41.38.

웃음이 줄었다.

세 번째 랩.

진우는 마지막 헤어핀에서 안쪽 연석을 타지 않았다. 모두가 달리는 검은 고무 라인보다 반 차폭 바깥을 밟았다. 먼지가 살짝 튀었지만 카트는 바깥으로 흐르지 않았다.

푸른 선이 굵어졌다.

[노면 결 활용 가능]
[결승 후반 대체 라인 후보]
[예상 랩타임 낙폭: 낮음]

진우의 입가가 올라갔다.

찾았다.

기록을 위한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새 타이어를 태운 뒤에도 남아 있을 길이었다.

메인 라인을 통과했다.

41.12.

강한수는 스톱워치 액정을 보고 숨을 삼켰다.

끝자리 피트.

마지막 연습 조.

중고 타이어.

그 조건에서도 41초 초반.

더 중요한 것은 카트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진우는 쿨링 랩으로 들어가며 피트 벽 뒤를 봤다. 송 치프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불쾌함보다 이해한 사람의 굳은 침묵이 떠 있었다.

백종열은 그 옆에서 휴대폰을 들었다.

“예선 조 편성 확인해. 저 녀석을 깨끗한 노면에 올리지 마.”

진우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백종열의 눈빛은 보았다.

압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라인도 아직 다 보여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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