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의 레이싱 라인이 보인다

7화: 차가운 첫 조
예선 순서표가 D-12 피트 벽에 붙은 것은 공식 연습이 끝난 지 십 분 뒤였다.
강한수는 종이를 읽다가 손을 멈췄다.
“1조?”
진우도 표를 확인했다.
열두 명의 주니어 선수가 여섯 명씩 두 조로 나뉘어 있었다. 명성 레이싱의 임준서는 2조. 준서의 팀 동료 한도윤도 2조였다. 진우의 이름은 1조 맨 아래에 적혀 있었다.
예선은 아웃랩 하나와 어택 랩 둘뿐이었다. 조가 바뀌는 사이에 노면을 청소하는 시간은 없었다. 차갑고 먼지가 남은 트랙을 1조가 먼저 지나가면 2조는 여섯 대의 타이어가 문질러 놓은 길에서 기록을 낼 수 있었다.
강한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번에도 우연이라고 하겠지.”
“그럴 겁니다.”
“항의하자. 최소한 조는 다시 뽑아야지.”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시간만 뺏깁니다. 저쪽은 우리가 여기서 화내길 바랄 거예요.”
강한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종이를 쥔 손가락 관절만 하얗게 질렸다.
진우는 피트아웃 쪽으로 걸어갔다. D-12에서 바라보는 트랙 가장자리는 다른 피트보다 가까웠다. 배수 홈에서 밀려난 고운 모래가 바람을 따라 바깥쪽 아스팔트로 옮겨가고 있었다.
오전부터 쌓인 먼지 위로 타이어 자국이 성기게 겹쳤다.
첫 코너 안쪽의 검은 라인은 아직 차가웠다.
푸른 선은 그 앞에서 희미해졌다.
[노면 온도: 7.1℃]
[1조 초기 그립 저하]
[권장 시작 압력: 0.74 bar]
강한수가 뒤따라와 게이지를 내려다봤다.
“어젯밤보다 올린다고?”
“랩이 너무 짧아요. 0.72로 시작하면 두 번째 어택 랩에도 가운데가 안 깨어납니다.”
“그럼 첫 랩부터 세게 밀어붙여야 하는 거 아니냐.”
“아니요. 첫 랩은 길을 닦는 랩이에요.”
진우는 먼지가 쌓인 바깥쪽 노면을 가리켰다.
“여기서 억지로 안쪽을 물면 오른쪽 앞 숄더가 먼저 뜯깁니다. 첫 랩에 그립을 만들고 두 번째 한 랩만 쓰겠습니다.”
“한 랩으로 충분하겠어?”
“충분하게 만들어야죠.”
강한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한참 뒤 휴대용 펌프를 집어 들었다.
“좋다. 0.74. 대신 카트가 한 번 크게 흐르면 바로 접어.”
“미끄러질 겁니다.”
진우가 헬멧을 들어 올렸다.
“대신 어디까지 미끄러질지는 제가 고를게요.”
명성 레이싱 피트에는 이미 구경꾼들이 모여 있었다.
백종열은 임준서와 한도윤 사이에 서서 순서표를 접었다. 그의 표정은 느긋했다.
“1조 기록은 신경 쓰지 마라. 너희가 나갈 때쯤이면 길이 열릴 거다.”
한도윤이 새 타이어 표면을 손으로 눌러보며 웃었다.
“중고 타이어에 첫 조면 사실상 끝난 거 아닙니까?”
“레이스는 시작 위치부터 실력이지.”
백종열의 시선이 D-12로 향했다.
준서는 웃지 못했다.
새벽의 서킷이 떠올랐다. 진우의 낡은 카트는 첫 랩에서 느렸다. 그런데 랩이 쌓일수록 중고 타이어는 죽지 않고 오히려 일정해졌다. 그 장면을 보고도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송 치프가 공구함을 닫으며 진우 쪽을 바라봤다.
“차갑다고 핸들로 깨우려 하지 마라.”
짧은 말이었다.
백종열의 눈빛이 그에게 날아갔다.
“송 치프.”
“운전대 꺾지 말라는 말도 규정 위반입니까?”
송 치프는 무표정하게 장갑을 정리했다.
진우는 멀리서 그 말을 듣고 고개만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백종열은 준서에게 몸을 돌렸다.
“상위 넷만 앞줄이다. 네가 봐야 할 건 저 애가 아니라 폴 포지션이야.”
준서는 장갑 끈을 세게 당겼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진우가 1조에서 남길 숫자가 자기 기준이 될 것이다. 낮으면 비웃을 수 있다. 높으면 넘어야 한다.
어느 쪽도 편하지 않았다.
“주니어 예선 1조. 피트 레인으로!”
호출이 울렸다.
진우는 카트에 앉아 버클을 잠갔다. 강한수가 뒤에서 리어 범퍼를 잡았다. 두 사람은 헬멧 너머로 눈을 마주쳤다.
“0.74.”
“확인.”
“오른쪽 앞이 먼저 울면?”
“마지막 헤어핀까지 참습니다.”
“돌아와.”
“기록 내고요.”
초록 신호가 켜졌다.
타다다당!
카트가 움직였다.
진우는 선두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다섯 번째 위치에서 바깥쪽으로 합류했다. 앞카트 한 대가 첫 코너 안쪽 연석을 거칠게 밟았다.
검은 먼지가 바이저 앞으로 튀었다.
진우는 고개를 숙인 채 앞차와 거리를 벌렸다. 아웃랩에서 타이어를 흔들어 깨우지 않았다. 무리한 좌우 움직임은 열보다 마모를 먼저 남긴다.
첫 어택 랩.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오른쪽 앞타이어가 낮게 울었다.
[표면 활성 부족]
[과도한 조향 입력 금지]
스티어링을 조금만 더 감으면 카트는 안쪽으로 들어가는 대신 숄더를 깎아낼 것이다. 짧은 예선에서 그 선택은 달콤해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 헤어핀에서 타이어가 무너지면 두 번째 랩은 사라진다.
진우는 안쪽으로 파고들지 않았다.
모두가 밟는 검은 선보다 반 차폭 바깥. 먼지 아래 거친 아스팔트 결이 남은 곳에 카트를 얹었다.
끼이익.
뒤가 가볍게 흘렀다.
그는 바로 잡지 않았다. 상체를 늦게 넘기고 보강된 좌측 레일이 비틀리는 감각을 기다렸다. 반 박자 뒤 안쪽 뒷바퀴가 뜨는 느낌이 왔다.
그때 스로틀을 짧게 열었다.
바앙!
카트는 밀린 만큼만 넓게 돌고 다시 안으로 접혔다.
두 번째 코너에서도 진우는 연석을 피했다. 연석 옆 거친 결을 밟을 때마다 타이어 표면의 얇은 막이 벗겨졌다. 차가운 고무가 조금씩 아스팔트의 온도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메인 라인을 통과했다.
41.91.
피트 벽 너머에서 웅성거림이 퍼졌다.
“느리네.”
“첫 조는 답 없지.”
강한수는 스톱워치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불안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진우가 피트로 들어오지 않는 이상 부를 수 없었다.
진우에게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헤어핀으로 향하며 그는 시트 아래로 전해지는 작은 떨림만 읽었다. 앞타이어가 아직 완전히 붙지는 않았다. 그래도 고무가 미끄러지는 방식이 바뀌었다.
날카롭게 도망가던 감각이 둔하고 일정해졌다.
고무가 막을 벗기고 있었다.
두 번째 어택 랩.
푸른 선이 한 번에 이어졌다.
[표면 온도 상승]
[오른쪽 앞 그립 회복]
[기록 창: 1랩]
첫 코너에서 진우는 브레이크를 짧게 밟았다. 차는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그는 더 깊게 밀어 넣지 않았다. 반 차폭 넓게 남긴 뒤 정점이 늦어지는 자리에서 스티어링을 한 번에 감았다.
카트가 바닥에 붙었다.
앞카트가 남긴 먼지 띠가 두 번째 코너 출구에 걸려 있었다. 진우는 그 위를 피하려고 안쪽으로 급히 틀지 않았다. 스티어링을 잠깐 풀고 하중을 뒤로 보냈다.
프레임이 비틀렸다.
후륜이 아스팔트를 물었다.
바아앙!
세 번째 코너에서 푸른 선은 다시 바깥을 향했다. 기록만 생각하면 겁나는 라인이었다. 하지만 첫 랩에 표면을 열어 둔 타이어는 그 거친 결 위에서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았다.
진우는 스로틀을 끝까지 열었다.
마지막 헤어핀.
오른쪽 앞이 다시 울었다.
이번에는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그는 연석을 포기했다. 연석 옆 거친 결을 밟고 반 박자 늦게 몸을 눌렀다.
차체가 짧게 떨렸다.
보강된 프레임이 버텼다.
바아아앙!
후륜이 붙었다.
메인 라인을 가로질렀다.
전광판의 숫자가 바뀌었다.
41.34.
강한수는 스톱워치를 든 손을 내리지 못했다.
첫 조의 차가운 트랙. 중고 타이어. 단 한 번뿐인 기록 창.
그 모든 조건을 끌어안고 낸 숫자였다.
진우는 쿨링 랩으로 들어가며 고개를 들었다. 명성 피트 앞에서 준서가 전광판을 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비웃음이 없었다.
2조가 트랙에 나갔다.
여섯 대가 지나간 노면은 눈에 띄게 달랐다. 첫 코너 안쪽에는 얇은 고무막이 생겼고 바깥으로 밀려난 먼지는 라인에서 조금 멀어졌다.
한도윤은 깨끗해진 안쪽을 타고 41.29초를 찍었다. 명성 피트에서 박수가 터졌다.
백종열은 준서의 어깨를 두드렸다.
“봐라. 이게 정상이다.”
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트랙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진우의 기록이 가벼워진 것도 아니었다. 자신도 같은 두 번의 어택 랩으로 41.34초를 넘어야 했다.
준서가 초록 신호에 맞춰 출발했다.
첫 랩부터 새 타이어의 그립은 날카로웠다. 그는 첫 코너 안쪽을 깊게 물고 두 번째 코너에서 카트를 억지로 눌렀다.
40.96.
피트 쪽에서 환호가 터졌다.
두 번째 랩.
준서는 조금 더 욕심을 냈다. 마지막 헤어핀에서 오른쪽 앞이 살짝 밀렸다. 새 타이어의 비명이 헬멧 안에서 길게 울렸다.
그래도 기록은 나왔다.
40.82.
준서가 폴 포지션을 차지했다. 한도윤이 2위. 진우는 전체 3위였다.
진우가 피트 벽에 붙은 결과표를 바라봤다.
3번 그리드.
결승 2열 바깥.
백종열은 한도윤을 가까이 불렀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송 치프와 두 드라이버에게는 또렷했다.
“스타트에서 진우가 안쪽으로 파고들 틈을 주지 마. 준서는 바깥을 넓게 쓴다. 도윤이는 자기 라인만 지켜.”
한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서의 손은 핸들 위에서 잠깐 멈췄다.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네 레이스를 하라는 거다. 네 앞자리도 못 지키겠어?”
백종열의 말은 부드러웠다. 그래서 더 거절하기 어려웠다.
준서는 고개를 숙였다.
진우는 그 대화를 듣지 못했다.
그는 결과표 아래에 붙은 그리드 도면을 보고 있었다. 첫 코너까지 짧은 거리. 안쪽에는 한도윤이 있고 바로 앞 바깥에는 임준서가 있다.
보통이라면 막힌 자리였다.
하지만 3번 그리드의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스타트 마크와 피트 월 사이에 얇은 아스팔트가 남아 있었다. 모두가 첫 코너의 안쪽을 노릴 때 비어 있게 될 길.
푸른 선이 그 자리에 가늘게 떠올랐다.
[첫 코너 외곽 빈 공간: 0.6초]
진우는 헬멧 턱끈을 다시 조였다.
결승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