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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의 레이싱 라인이 보인다5화

최적의 레이싱 라인이 보인다

최적의 레이싱 라인이 보인다

5화: 중고 타이어의 라인

강한수 카트 숍의 벽에는 버려진 슬릭 타이어가 줄지어 기대어 있었다.

어떤 것은 숄더가 닳아 둥글게 무너졌고 어떤 것은 표면에 자잘한 찢김이 남아 있었다. 몇 세트는 열을 너무 많이 먹어 고무가 유리처럼 번들거렸다.

강한수는 그 더미 앞에서 한참 말이 없었다.

“진우야.”

“네.”

“이걸로 개막전을 뛴다는 건 말이 쉽지. 잘못하면 첫 코너에서 그대로 밀린다.”

진우는 대답 대신 가장 앞에 있던 타이어 하나를 들어 올렸다. 손바닥으로 트레드를 눌러보고 손톱 끝으로 표면을 긁었다.

고무는 딱딱했다.

겉보기에는 아직 매끈한 슬릭이었다. 하지만 표면 아래쪽은 이미 열을 반복해서 먹은 상태였다. 푸른 선이 타이어 원주를 따라 희미하게 돌다가 군데군데 끊겼다.

[열 사이클 과다]
[숄더 내부 경화 진행]
[예상 그립 낙폭: 7랩 이후 급격]

진우는 그 타이어를 옆으로 밀어냈다.

“이건 안 됩니다.”

“겉은 제일 멀쩡한데?”

“겉만 멀쩡해요. 안쪽이 죽었습니다. 예선 한 랩은 버틸 수 있어도 결승 중반부터 갑자기 빠질 겁니다.”

강한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그것도 보여?”

진우는 잠시 손을 멈췄다.

보인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꿔야 했다.

“표면이 너무 반짝입니다. 열이 들어갔다 빠진 자국이 일정하지 않아요. 손톱으로 긁으면 가루가 아니라 얇은 막처럼 떨어집니다.”

강한수는 말없이 같은 자리를 긁어봤다.

검은 고무가 가루처럼 부서지지 않고 얇은 껍질처럼 밀렸다.

“젠장. 진짜네.”

진우는 두 번째 세트를 꺼냈다. 이번 것은 더 형편없어 보였다. 오른쪽 앞타이어로 쓰였던 흔적이 뚜렷했고 바깥쪽 숄더가 사선으로 갈려 있었다.

강한수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버리려고 빼둔 거다. 누가 봐도 끝났어.”

“잠깐만요.”

진우는 타이어를 세워 천천히 굴렸다.

푸른 선이 원주를 따라 돌았다.

겉면은 못생겼다. 하지만 숄더에서 중앙으로 이어지는 온도 흔적이 놀랄 만큼 일정했다. 고무가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낮은 피크 그립으로 안정되어 있었다.

[피크 그립 낮음]
[열 분포 균일]
[장거리 페이스 유지 가능]

진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거 살릴 수 있습니다.”

“뭐?”

“신품처럼 쓰면 느립니다. 대신 다르게 쓰면 버팁니다.”

강한수는 타이어와 아들을 번갈아 보았다.

“다르게 쓴다는 게 뭔데.”

진우는 작업대 위에 분필을 집어 들었다. 낡은 합판 위에 파주 스피드파크의 코너를 빠르게 그렸다.

“명성은 새 타이어로 첫 세 랩 안에 피크를 만들 겁니다. 워머까지 쓰면 예선 한 랩은 엄청 빠르겠죠. 그런데 주니어 결승은 열 바퀴예요. 차가운 노면에서 새 타이어를 너무 빨리 깨우면 오른쪽 앞 숄더가 먼저 죽습니다.”

“그래도 새 타이어가 빠르지.”

“절대 속도는요.”

진우는 1번 고속 코너와 마지막 헤어핀에 동그라미를 쳤다.

“하지만 우리는 피크를 포기하고 낙폭을 줄이면 됩니다. 첫 두 랩은 버리고 세 번째 랩부터 일정하게 가는 거예요. 다른 애들이 타이어를 태울 때 우리는 살려서 갑니다.”

강한수는 한숨을 뱉었다.

“레이스에서 첫 두 랩을 버리면 자리 다 뺏긴다.”

“그래서 스타트에서 막아야 합니다. 안쪽을 지키되 무리해서 탈출하지 않습니다. 따라붙게 두고 타이어를 쓰게 만들 겁니다.”

“네가 지금 중고 타이어로 심리전까지 하겠다는 거냐?”

“돈이 없으면 상대가 돈을 쓰게 만들어야죠.”

작업장 안에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강한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너 정말 열다섯 맞냐?”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 번째 타이어를 들어 올리며 표면을 훑었다.

밤은 더 깊어졌다.

부자는 말없이 타이어를 나누어 쌓았다.

버릴 것.

연습용으로만 쓸 것.

그리고 개막전 결승에 걸 수 있는 것.

마지막 더미에 남은 것은 단 한 세트뿐이었다.


새벽 두 시.

강한수는 카트의 휠 너트를 조이며 낮게 중얼거렸다.

“미친 짓이다. 이 시간에 테스트라니.”

“노면이 제일 비슷할 때 봐야 합니다.”

“공식 연습 때 보면 되잖아.”

“그때는 명성도 볼 겁니다.”

강한수의 손이 멈췄다.

진우는 타이어 게이지를 들고 공기압을 다시 확인했다.

“0.72바.”

“너무 낮아.”

“주행 중에 중앙부가 살아나면 0.76까지 올라올 겁니다. 신품보다 카카스가 지쳐 있어서 처음부터 높게 넣으면 가운데만 뜹니다.”

강한수는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더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보강된 좌측 레일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통, 통.

둔탁하지만 일정한 소리가 났다.

“프레임은 오늘보다 나을 거다. 단단하게 막지는 않았다.”

“좋습니다.”

“다만 네 말대로 잭킹 반응이 늦게 오면 코너 진입에서 먼저 차를 던지면 안 된다. 반 박자 기다려야 해.”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치프.”

강한수는 이제 그 호칭에 놀라지 않았다. 그저 휠 너트를 마지막으로 조이고 토크 렌치를 내려놓았다.

“헬멧 써라.”

두 사람은 포터 트럭에 카트를 싣고 다시 파주로 향했다.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유리창에는 새벽 습기가 희미하게 내려앉았고 적재함의 카트는 묶인 끈 아래에서 낮게 흔들렸다.

진우는 창밖의 어둠을 보았다.

전생의 그는 늘 가장 빠른 차를 원했다. 가장 강한 엔진, 가장 정교한 공력, 가장 완벽한 새 타이어.

지금 손에 쥔 것은 그 반대였다.

낡은 프레임.

중고 타이어.

돈 없는 개인 팀.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가장 빠른 길은 늘 넓은 길이 아니었다.

때로는 아무도 보지 못한 얇은 선이었다.


파주 스피드파크의 철문은 닫혀 있었다.

강한수는 관리인과 몇 마디를 나눈 뒤 미리 잡아둔 새벽 대관 확인서를 내밀었다. 소음 민원 때문에 열두 랩 이상은 돌 수 없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그래도 충분했다.

진우는 카트에 앉아 버클을 채웠다.

차가운 공기가 바이저 안으로 스며들었다. 낡은 타이어는 아직 돌처럼 차가웠다.

타다다당!

엔진이 깨어났다.

피트 레인을 빠져나가는 순간 푸른 선이 나타났다.

낮에 보던 선보다 훨씬 얇았다. 색도 짙지 않았다. 신품 타이어의 날카로운 한계선이 아니라 오래된 고무가 버틸 수 있는 좁은 생존선이었다.

[타이어 표면 온도: 3.9℃]
[초기 그립 저하]
[권장 라인: 넓은 진입 / 완만한 하중 전환]

진우는 스로틀을 열었다.

첫 코너.

평소라면 더 안쪽으로 찔렀을 지점에서 진우는 일부러 차를 바깥쪽에 남겼다. 브레이크를 길게 끌지 않았다. 짧게 밟고 놓은 뒤 스티어링을 천천히 감았다.

끼이익.

앞타이어가 낮게 울었다.

접지력이 부족했다.

카트는 코너 바깥으로 밀리려 했다. 진우는 억지로 잡지 않았다. 밀리는 만큼 라인을 열어주고 상체를 늦게 넘겼다.

좌측 레일이 반 박자 늦게 비틀렸다.

0.04초.

그 짧은 지연을 기다린 뒤 진우는 스로틀을 열었다.

바아앙!

후륜이 미끄러질 듯하다가 붙었다.

“좋아.”

두 번째 랩.

푸른 선이 조금 굵어졌다.

진우는 헤어핀에서 연석을 깊게 타지 않았다. 대신 연석 바로 옆의 거친 아스팔트 결을 밟았다. 새 타이어라면 손해인 라인이었다. 하지만 중고 타이어에는 달랐다. 연석의 충격으로 숄더를 찢는 대신 거친 노면으로 고무 표면을 천천히 깨우는 라인.

[타이어 온도 상승 균일]
[오른쪽 앞 숄더 마모 억제]
[예상 10랩 평균: 안정]

피트 월에서 강한수가 스톱워치를 눌렀다.

첫 어택 랩.

41.26.

느렸다.

명성의 새 타이어라면 비웃을 숫자였다.

하지만 진우는 웃었다.

세 번째 랩.

41.21.

네 번째 랩.

41.19.

낙폭이 없었다.

오히려 타이어가 깨어나며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진우는 마지막 헤어핀에서 더 일찍 스로틀을 열었다. 뒤가 흐르려는 찰나 상체를 낮게 눌러 하중을 뒤쪽으로 붙였다. 보강된 프레임이 버텼고 중고 타이어가 짧은 비명을 내며 아스팔트를 물었다.

바아아아앙!

메인 라인을 통과했다.

강한수의 스톱워치에 숫자가 찍혔다.

41.16.

강한수는 숨을 멈췄다.

새 타이어 없이.

워머 없이.

낡은 중고 슬릭으로.

오전의 기록에 근접한 랩이 나온 것이다.


피트 뒤편 어둠 속에서 헤드라이트 하나가 꺼졌다.

임준서는 차 안에서 스톱워치를 들고 있었다. 옆자리에는 송 치프가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봤죠?”

준서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중고 타이어 맞죠?”

송 치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본 것은 단순한 랩타임이 아니었다.

첫 랩이 느린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이후였다. 보통 중고 슬릭은 한계가 낮아질수록 랩타임이 흔들린다. 그런데 진우의 카트는 랩을 거듭할수록 안정되었다.

드라이버가 타이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타이어가 버틸 수 있는 온도와 하중을 골라 밟고 있었다.

“감독님께 보고해야 합니다.”

임준서가 휴대폰을 꺼냈다.

송 치프가 낮게 말했다.

“보고해도 답은 하나다. 더 막으라고 하시겠지.”

“그럼 막아야죠.”

준서의 손가락이 떨렸다.

분해서가 아니었다.

두려워서였다.

강진우는 새 카트로 빠른 것이 아니었다. 낡은 카트로도 빨랐다. 백업 머신으로도 빨랐고 이제는 죽은 타이어로도 느려지지 않았다.

그 사실이 준서의 목을 조였다.

서킷 위에서는 진우가 쿨링 랩을 마치고 피트로 들어오고 있었다.

강한수가 스톱워치를 들고 다가갔다.

“41초 16.”

진우는 헬멧을 벗었다. 새벽 공기가 땀에 젖은 머리칼을 식혔다.

“한 랩 기록은 의미 없습니다.”

“뭐?”

“개막전은 열 바퀴예요. 우리가 봐야 할 건 최고 랩이 아니라 평균입니다.”

진우는 피트 뒤편의 어둠을 힐끗 보았다.

방금 헤드라이트가 꺼지는 것을 봤다. 누가 있는지도 짐작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보여줘도 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아직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아버지.”

“왜.”

“내일은 연료를 절반만 넣고 다시 맞춰보죠. 스타트 후 세 바퀴까지 버티는 라인을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

강한수가 지친 얼굴로 웃었다.

“이제 잠은 언제 자냐?”

“개막전 끝나고요.”

진우는 다시 타이어를 내려다보았다.

푸른 선은 여전히 낡은 고무 위에서 얇게 돌고 있었다.

명성은 돈으로 신품 타이어를 감췄다.

하지만 진우는 그들이 버린 고무 속에서 결승을 위한 라인을 찾아냈다.

그때 임준서의 휴대폰 너머로 백종열의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피트 배정부터 막아. 공식 연습 시간도 손봐. 저 녀석이 트랙에 오래 있을수록 더 위험해진다.”

새벽의 서킷 위로 보이지 않는 압박이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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