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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의 레이싱 라인이 보인다4화

최적의 레이싱 라인이 보인다

최적의 레이싱 라인이 보인다

4화: 낡은 프레임의 답

트레일러 문이 닫히자 안쪽에서 백종열의 억눌린 고함이 새어 나왔다.

“강진우, 저 녀석 개막전에서 반드시 눌러.”

명성 레이싱의 피트 앞에 서 있던 임준서가 어깨를 굳혔다. 백 감독의 시선은 아직도 트레일러 문밖으로 나간 진우의 뒷모습에 꽂혀 있었다.

“준서야.”

“네, 감독님.”

“네가 명성의 에이스다. 그 낡은 카트 하나 못 잡으면 네 자리도 다시 생각해야 해.”

임준서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진우는 그 말을 등 뒤로 흘려보냈다. 낡은 포터 트럭의 적재함에 카트를 묶는 아버지의 손길을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강한수는 마지막 라쳇 끈을 당겨 고정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진우야.”

“네.”

“방금 한 말, 후회 안 하냐?”

진우는 피트 저편을 보았다. 명성 레이싱의 신형 카트들은 아직도 전기 워머에 감긴 채 반짝이고 있었다. 타이어도, 프레임도, 엔진도 모두 새것이었다.

그에 비해 적재함 위의 붉은 CRG는 용접 자국과 긁힌 상처투성이였다.

“후회할 계약은 피했으니까요.”

“돈이 없어.”

강한수의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피곤했다.

“이번 시즌 엔트리비 내고 나면 새 타이어 두 세트도 빠듯해. 엔진 오버홀은 내가 어떻게든 해본다 쳐도 프레임은 답이 안 나온다. 오늘처럼 몰면 저놈도 오래 못 버텨.”

진우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전의 41초 18은 낡은 카트가 가진 모든 한계를 끌어낸 기록이었다. 프레임은 이미 휘어져 있었고 용접부는 하중을 받을 때마다 미세하게 울었다. 전생의 감각으로 버텼을 뿐 기계적 여유가 남아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 바로 뜯어봐야 합니다.”

“뭘?”

“프레임요. 새 카트 살 돈이 없으면 이 카트가 어디까지 버티는지 알아야죠.”

강한수는 아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어린 얼굴이었다. 아직 볼살도 빠지지 않은 중학생의 얼굴.

그런데 그 눈빛만큼은 오래된 피트 월의 조명처럼 차갑고 단단했다.

“알았다. 가자.”

포터 트럭이 파주 스피드파크를 빠져나갔다. 뒤쪽 사이드미러에는 명성 레이싱의 피트가 점점 작아졌다.

진우는 조수석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이번에는 남의 팀 깃발 아래 들어가지 않는다.

그 첫 선택이 옳았는지는 앞으로 3주 안에 증명해야 했다.


숍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기울고 있었다.

낡은 간판 아래 작은 작업장 안으로 카트를 밀어 넣자 휘발유와 철가루 냄새가 훅 밀려왔다. 강한수는 말없이 형광등을 켰다. 희뿌연 빛이 붉은 프레임 위에 내려앉았다.

“카울부터 벗기자.”

진우는 장갑을 끼고 볼트를 풀었다. 손가락은 아직 어렸지만 전생의 습관은 남아 있었다. 공구를 잡는 각도, 풀린 볼트를 놓는 위치, 케이블이 꼬이지 않게 빼내는 순서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강한수가 그런 아들을 곁눈질로 보았다.

“너 오늘 이상하다.”

“제가요?”

“전부터 카트를 좋아하긴 했는데 오늘은 꼭 몇 년 굴려본 사람처럼 만진다.”

진우는 잠시 손을 멈췄다.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이 수많은 그랑프리 피트에서 엔지니어들과 밤새 데이터를 뜯던 사람이라고.

“오늘 많이 배웠잖아요.”

“하루 만에 배울 게 있고 못 배울 게 있지.”

강한수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프레임 하단에 손전등을 비췄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이 굳었다.

“젠장.”

진우가 몸을 숙였다. 좌측 메인 레일 안쪽, 예전에 용접했던 비드 끝에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선이 있었다.

균열이었다.

“얼마나 갔어요?”

“겉으로 보이는 건 2cm 정도. 안쪽까지 먹었으면 더 길어.”

강한수가 손톱으로 용접부 주변을 톡톡 두드렸다. 소리가 한 지점에서 둔하게 죽었다.

“오늘 헤어핀에서 하중을 너무 세게 받은 거다. 이 상태로 개막전 나가면 코너 탈출 때 벌어진다. 잘못하면 프레임이 접혀.”

진우의 시야에 푸른 선이 떠올랐다.

트랙 위에 나타나던 레이싱 라인이 아니었다. 프레임 레일을 따라 얇은 빛줄기가 흘렀다. 좌측 앞바퀴에서 시작한 하중이 메인 레일을 타고 시트 뒤쪽으로 빠져나가는 경로. 균열 지점에서 그 빛은 잘린 전선처럼 흔들렸다.

[좌측 비틀림 강성 저하]
[헤어핀 탈출 구간 하중 집중 예상]
[프레임 파손 위험: 높음]

진우는 숨을 낮게 내쉬었다.

단순히 고장 난 부분을 고치면 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 프레임은 이미 늙었다. 새 프레임처럼 완전히 단단하게 만들 수도 없고 그렇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카트는 서스펜션이 없다. 프레임이 휘어져야 안쪽 뒷바퀴가 뜨고 코너를 돈다.

너무 물러도 죽는다.

너무 단단해도 죽는다.

“아버지.”

“왜.”

“그쪽을 완전히 막으면 안 됩니다.”

강한수의 눈썹이 올라갔다.

“균열 난 데를 안 막으면 타다가 죽어.”

“막아야죠. 그런데 좌우를 똑같이 보강하면 안 됩니다. 좌측 레일만 짧게 보강하고 시트 위치를 바꿔야 합니다.”

“뭐?”

진우는 분필을 집어 프레임 옆 바닥에 선을 그었다.

“개막전 코스는 오른쪽 헤어핀이 랩타임의 핵심이에요. 여기서 왼쪽 레일이 버티면서 프레임이 적당히 비틀려야 안쪽 뒷바퀴가 뜹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많이 휘어서 탈출 때 후륜이 밀려요. 균열 주변 18cm만 보강하고 시트를 8mm 낮춘 뒤 12mm 뒤로 빼면 하중이 뒤쪽으로 늦게 넘어갑니다.”

강한수는 분필 선을 내려다보았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진우는 대답 대신 프레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오늘 달리면서 느꼈어요. 두 번째 랩 마지막 헤어핀에서 리어가 먼저 놓였습니다. 제가 잡긴 했지만 개막전처럼 열 바퀴 넘게 달리면 타이어가 먼저 죽습니다.”

작업장 안이 조용해졌다.

강한수는 아들의 얼굴을 보았다가 다시 프레임을 보았다.

아들의 말은 위험했다.

하지만 틀리지 않았다.

그는 이 프레임을 누구보다 오래 만져왔다. 어디가 약하고 어디가 버티는지 손끝으로 알고 있었다. 진우가 방금 짚은 지점은 정말로 코너 탈출 때마다 소리가 달라지던 곳이었다.

“8mm 낮추고 12mm 뒤라.”

강한수가 천천히 말했다.

“그러면 페달 링크도 다시 맞춰야 하고 브레이크 케이블 각도도 바뀐다.”

“제가 맞출게요.”

“네 키에 맞추면 스티어링 포지션이 답답할 텐데.”

“상체를 더 낮게 쓸 수 있습니다. 목은 아직 약하니까 무게중심을 낮춰야 해요.”

강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용접 마스크를 집어 들었다.

“좋다. 대신 내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바로 원복이다.”

진우의 입가에 작게 미소가 번졌다.

“네, 치프.”

강한수의 손이 멈췄다.

그 말 한마디에 그의 목울대가 한번 크게 움직였다.

“잔말 말고 그라인더 가져와.”


불꽃이 작업장 벽을 붉게 물들였다.

치이이익!

그라인더가 오래된 용접 비드를 갈아내자 쇳가루가 비처럼 튀었다. 강한수는 균열 주변을 벗겨내고 얇은 보강판을 대었다. 진우는 옆에서 시트 브래킷을 풀고 위치를 다시 잡았다.

“너무 뒤로 간다.”

“2mm만 더요.”

“거기서 더 가면 페달 밟을 때 무릎 각도가 안 맞아.”

“브레이킹을 길게 가져가지 않을 겁니다. 짧게 찌르고 바로 하중을 돌릴 거예요.”

강한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말은 월드 챔피언처럼 하네.”

진우는 웃지 못했다.

그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한수는 다시 마스크를 내렸다. 용접봉 끝에서 푸른빛이 터지고 금속이 녹아 붙었다.

진우의 눈앞에서 프레임을 따라 흐르던 푸른 하중선이 조금씩 달라졌다. 균열 지점에서 흐트러지던 빛이 보강판을 타고 뒤쪽으로 흘렀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래의 낡은 프레임보다 훨씬 안정적인 궤적이었다.

[좌측 비틀림 강성 보정]
[예상 잭킹 반응: 지연 0.04초]
[헤어핀 탈출 안정성 증가]

0.04초.

보통 드라이버라면 느끼지 못할 차이였다.

하지만 진우에게는 랩타임을 바꾸는 숫자였다.

“아버지, 보강판 끝을 조금만 더 둥글게 갈아주세요.”

“왜.”

“끝이 각지면 하중이 거기서 끊깁니다. 코너마다 같은 부분이 다시 먹을 거예요.”

강한수가 말없이 줄을 들었다.

슥. 슥. 슥.

거친 손이 보강판 끝을 둥글게 다듬었다. 진우는 그 모습을 보고 가슴 한쪽이 뜨거워졌다.

전생의 아버지는 늘 혼자였다.

돈이 부족해서, 시간이 부족해서,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어서 밤새 혼자 쇠를 갈고 용접했다. 진우는 그때 그 노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혼자 두지 않는다.

“뭐 보냐?”

“아무것도 아니에요.”

“볼 시간 있으면 토인 게이지 가져와.”

진우는 급히 공구함으로 몸을 돌렸다.

밤은 깊어갔다.

시트는 8mm 낮아졌고 12mm 뒤로 물러났다. 페달 링크는 진우의 짧은 다리에 맞춰 다시 잘렸다. 브레이크 케이블은 더 부드러운 각도로 정리되었다.

마지막으로 강한수가 카트를 바닥에 내렸다.

낡은 붉은 카트는 여전히 낡아 보였다.

하지만 진우의 눈에는 달랐다.

프레임 안쪽으로 푸른 하중선이 살아 있었다. 이전보다 얇지만 더 곧고 단단했다.

“돌아가겠네요.”

“서킷에서 봐야 안다.”

강한수가 손등으로 땀을 닦았다.

그때 작업장 전화가 울렸다.

따르르릉.

강한수가 수화기를 들었다.

“강한수 카트 숍입니다.”

그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

“뭐? 이번 주 입고분이 전부 예약됐다고? 다음 주 것도?”

진우는 고개를 들었다.

타이어 이야기였다.

강한수는 몇 군데 더 전화를 걸었다. 대답은 비슷했다. 주니어 클래스용 신품 슬릭 타이어가 갑자기 동이 났다는 말뿐이었다. 어떤 가게는 미안하다고 했고 어떤 가게는 아예 전화를 피했다.

마지막 통화를 끊은 강한수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명성 쪽에서 손을 쓴 것 같다.”

진우는 예상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자본은 트랙 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공급망, 피트 자리, 연습 시간, 심판의 시선.

전생에서 수도 없이 봤던 방식이었다.

그때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진우가 전화를 받자 낮고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송 치프다.”

명성 레이싱의 미케닉이었다.

진우는 말없이 기다렸다.

“오해하지 마라. 도와주려는 건 아니다. 그냥 오늘 네가 한 말이 맞았는지 아직도 기분이 나빠서 전화한 거다.”

송 치프는 짧게 숨을 뱉었다.

“백 감독이 개막전 전까지 신품 타이어 물량을 죄다 묶으라고 지시했다. 네가 구할 수 있는 건 중고뿐일 거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다. 난 네가 중고 타이어로 망신당하는 꼴도 궁금하니까.”

통화가 끊겼다.

강한수가 이를 악물었다.

“치사한 놈들.”

진우는 작업장 구석을 보았다. 낡은 타이어들이 벽에 기대어 쌓여 있었다. 이미 열 사이클을 여러 번 먹은 중고 슬릭. 보통이라면 버려야 할 것들.

그 순간 진우의 시야에 다시 푸른 선이 번쩍였다.

타이어 트레드 표면 위로 희미한 온도 분포가 떠올랐다.

새 타이어보다 느리다.

하지만 한계가 낮으면 한계가 먼저 보인다.

진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버지.”

“왜.”

“버리려고 모아둔 타이어들, 아직 안 버렸죠?”

강한수가 눈을 찡그렸다.

“설마 그걸 쓰자는 거냐?”

“명성이 새 타이어를 다 가져가면 우리는 다른 걸 써야죠.”

진우는 중고 타이어 더미 앞에 쪼그려 앉았다.

푸른 선이 낡은 고무 위에서 천천히 회전했다.

“새 타이어로 못 이기면, 낡은 타이어가 가장 덜 느려지는 라인을 찾으면 됩니다.”

개막전까지 3주.

명성 레이싱은 자본으로 길을 막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우의 눈앞에는 막힌 길보다 더 얇고 날카로운 라인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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