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의 레이싱 라인이 보인다

3화: 제안과 거래
“41초 18……?”
피트 벽에 기대서 있던 명성 레이싱의 백종열 감독이 스톱워치를 쥔 손을 그대로 굳혔다. 그의 이마에 굵은 내천(川) 자 주름이 패어 들어갔다. 옆에 선 임준서는 자신이 들고 있는 스톱워치와 백 감독의 스톱워치 액정을 번갈아 보며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두 기계가 가리키는 숫자는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41.18초.
영하에 가까운 혹한의 3월 초순, 얼음장 같은 노면 온도 5도. 게다가 카트는 군데군데 투박하게 때운 용접 자국이 선명한 구형 CRG 모델이었다. 국내 모터스포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기록이었다.
“계측기가 고장 난 거 아닙니까? 아니면 코스를 단축해서 돌았다거나…….”
백 감독의 목소리에 깊은 의구심과 불쾌함이 동시에 묻어났다. 하지만 임준서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준서의 눈동자는 여전히 진우가 돌고 온 코너 끝자락에 고정된 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닙니다, 감독님. 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어요. 쇼트컷(Short-cut) 같은 건 없었습니다. 헤어핀 돌 때 안쪽 뒷바퀴를 띄우면서 돌았는데…… 그 잭킹 거동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끄러웠어요.”
백 감독의 시선이 피트로 돌아와 헬멧을 벗는 진우에게로 꽂혔다. 15세의 왜소한 체구, 다소 해진 레이싱 수트. 그 뒤에는 낡은 포터 트럭 옆에서 멍하니 서서 스톱워치만 쳐다보고 있는 미케닉 강한수가 있었다.
백 감독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진우 부자에게 걸어갔다. 그의 뒤로 명성 레이싱의 미케닉들과 임준서가 그림자처럼 뒤따랐다.
“너, 강진우라고 했지?”
백 감독이 진우의 앞에 서서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명문 대기업 팀 감독 특유의 거만함과 상대방을 떠보려는 심산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네, 감독님.”
진우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전생에서 수천억 원이 오가는 F1 패독에서 세계적인 거물들과 계약을 협상했던 그였다. 국내 카트 팀 감독의 설익은 기세 따위에 위축될 진우가 아니었다.
“방금 랩타임, 41초 18이 나왔다. 주니어 코스 레코드보다 0.6초 이상 빠른 기록이지. 솔직히 말해서 이 날씨에 그 낡은 차로 이런 기록이 나왔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군. 장비 오작동이거나 일시적인 요행일 가능성이 크다.”
진우는 헬멧을 옆구리에 낀 채 눈을 가늘게 뜨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요행이라고 생각하시면 그렇게 믿으셔도 됩니다.”
“뭐?”
백 감독의 눈썹이 꿈틀했다. 애송이의 당돌한 태도에 심사가 뒤틀린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피트 저편에 번쩍이는 리버리를 입고 정렬되어 있는 명성 레이싱의 카트들을 가리켰다.
“준서의 백업 머신이 마침 세팅을 끝내고 대기 중이다. 올해 나온 신형 토니카트(Tony Kart) 섀시에 새로 오버홀을 마친 로탁스 엔진이지. 타이어 워머로 온도를 올려둔 신품 슬릭 타이어도 끼워져 있고.”
백 감독이 스톱워치를 흔들며 진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요행이 아니라 진짜 실력이라면, 우리 팀 머신을 타고도 비슷한 기록을 낼 수 있겠지. 당장 저 차에 타서 41초 5 안쪽으로 끊어봐라. 그럼 네 실력을 인정해주지.”
강한수가 깜짝 놀라며 진우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
“감독님, 아무리 그래도 다른 팀 장비를 함부로 탈 수는…….”
“아버지, 괜찮아요.”
진우가 아버지를 조용히 제지하며 한 걸음 나아섰다.
“타 보겠습니다. 어차피 명성의 신형 섀시 거동이 궁금하던 참이었거든요.”
진우의 눈빛은 한없이 깊고 고요했다. 백 감독은 속으로 흠칫 놀랐다. 도저히 15살짜리 중학생에게서 나올 수 없는 대담함이자 여유였다.
명성 레이싱의 피트로 들어선 진우는 초록색 광택이 선명한 신형 토니카트 시트에 몸을 밀어 넣었다.
과연 대기업의 전폭적인 예산 지원을 받는 팀다웠다. 시트의 유격은 단 1mm도 없었고, 페달과 스티어링 휠의 얼라인먼트 상태도 완벽했다. 용접으로 뒤틀린 자신의 구형 카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짱짱한 프레임 강성이 척추를 통해 날것 그대로 전해졌다.
진우는 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가볍게 흔들며 섀시의 반발력을 가늠했다. 그러다 휠 타이어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섀시 옆에 서 있던 명성의 송 치프 미케닉을 올려다보았다.
“타이어 공기압이 몇인가요?”
송 치프는 코웃음을 치며 스패너를 만지작거렸다.
“0.85바(bar)다. 혹한기 노면에서 그립을 빠르게 끌어올리기 위한 우리 팀 표준 세팅이지. 꼬맹아,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페달 위치나 맞춰라.”
진우가 고개를 저었다.
“0.85는 너무 높습니다. 지금 노면 온도는 5도 안팎이에요. 토니카트의 이 신형 섀시는 프레임 강성이 매우 높아서 코너링 시 섀시가 휘어지며 노면을 누르는 잭킹 력이 강합니다. 이 상태에서 공기압을 0.85까지 높이면, 타이어가 주행 중에 열을 받으면서 트레드 중앙부가 미세하게 부풀어 올라 접지 면적이 오히려 줄어듭니다. 고속 코너에서 언더스티어가 날 수밖에 없어요.”
송 치프의 손길이 뚝 멈췄다. 들고 있던 휠 렌치가 바닥으로 툭 떨어져 쨍그랑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주변 미케닉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적을 이어갔다.
“그리고 카스터 각도(Caster Angle)도 한 단계만 낮춰주세요. 전륜의 잭킹 반응이 너무 급격하게 세팅되어 있습니다. 코너 진입은 빠르겠지만, 코너 탈출 시 후륜 그립이 갑자기 빠지면서 뒤가 흐르는 오버스티어로 이어질 겁니다. 공기압은 0.78바가 적당합니다.”
“하! 이 녀석 보게? 야, 네가 프레임 거동이랑 공기압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알아? 우리가 겨우내 데이터 쌓아가며 잡은 셋업이야. 주는 대로 타고 나가기나 해!”
송 치프가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백 감독은 진우의 조목조목 짚어내는 피드백에 이미 온몸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15세 카트 드라이버가 섀시 강성과 타이어 공기압의 상호작용, 그리고 카스터 각도에 따른 잭킹 거동의 변화를 논한다고?
이건 현역 프로 드라이버나 오랜 경력의 전문 레이싱 엔지니어가 아니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수준의 지식이었다.
“……송 치프.”
백 감독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공기압 0.78로 낮추고, 카스터 각도도 진우가 말한 대로 한 단계 내려라.”
“감독님! 이 꼬마 녀석 말도 안 되는 억지에 장단을 맞추시는 겁니까?”
“말 말고 조절해. 기록으로 보면 될 것 아닌가.”
백 감독의 서슬 퍼런 명령에 송 치프는 신경질적으로 공구 상자를 열어 에어 게이지를 타이어 밸브에 꽂았다. 피트 한구석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거대한 경외감에 휩싸여 있었다. 자신이 가르친 적도 없는 전문적인 레이싱 엔지니어링 지식을 진우는 대체 어디서 배운 것일까.
셋업 변경이 완료되었다.
진우는 헬멧 바이저를 조용히 내렸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타다당! 타다다당!
스타터가 맞물리며 오버홀을 마친 로탁스 엔진이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고주파 소리를 피트 가득 내뿜었다. 진우는 미끄러지듯 서킷 위로 카트를 올렸다.
피트 레인을 빠져나와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진우의 시야에 다시 한번 푸른색 선이 번쩍이며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최적의 길을 그렸다.
[섀시 강성: 100% (양호)]
[타이어 공기압: 0.78 bar (최적)]
[노면 온도 대비 타이어 그립 예상 수치: 94%]
[예상 랩타임: 40.5초]
눈앞의 푸른 라인은 자신의 구형 카트를 탈 때보다 훨씬 넓고 짙은 색으로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프레임이 뒤틀리지 않으니 머신의 물리적 한계 한도 자체가 극적으로 늘어난 덕분이었다.
“완벽하네.”
진우는 첫 번째 코너로 진입하며 스티어링 휠을 매끄럽게 꺾었다.
카스터 각도를 낮춘 덕분에 전륜이 날카롭지만 부드럽게 코너 안쪽을 파고들었고, 리어 타이어는 아스팔트를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0.78바의 공기압은 타이어의 접지 면적을 최대로 넓혀주어 코너 정점(Apex)을 지날 때 한 치의 슬립도 허용하지 않았다.
바아아아아아앙!
메인 스트레이트를 통과한 진우는 본격적으로 엔진 회전수를 한계까지 밀어 올렸다.
피트 월에 서서 스톱워치를 들고 있던 백 감독과 송 치프, 그리고 임준서의 시선이 카트의 거동을 따라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미친.”
송 치프의 입에서 저절로 넋 나간 신음이 흘러나왔다.
카트는 코너를 돌 때마다 연석 바로 옆의 먼지 한 톨까지 계산한 듯 완벽하게 기하학적인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브레이킹 시 차체의 흔들림은 자로 잰 듯 억제되어 있었고, 탈출 시에는 타이어 슬립을 최소화하며 화살처럼 튀어 나갔다.
보통 드라이버들은 카트가 미끄러지면 카운터 스티어를 먹이며 거칠게 차체를 제어하지만, 진우의 드라이빙에는 그런 불필요한 거동이 단 1mm도 존재하지 않았다. 극단적인 하중 이동과 정교한 잭킹 제어로 타이어의 그립 한계선 바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슬립 앵글(Slip Angle) 주행의 정수였다.
바아앙!
진우가 첫 번째 타임 어택 랩을 끝내고 메인 라인을 통과했다.
백 감독이 스톱워치 버튼을 눌렀다.
[40.85]
“……이럴 수가.”
송 치프의 목소리가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임준서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40초대 진입. 자신이 그토록 도달하고 싶었던 신의 영역을, 동갑내기 강진우가 백업 머신에 앉자마자 단 한 랩 만에 달성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진우의 질주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두 번째 랩. 타이어 온도가 최적으로 달아오른 순간, 진우는 마지막 헤어핀 코너에서 연석을 깊게 타고 넘으며 카트의 안쪽 바퀴를 정확히 2cm 상공으로 띄웠다. 프레임의 탄성을 극한으로 활용한 완벽한 코너 탈출이었다.
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엔진이 비명을 지르며 메인 라인을 다시 통과했다.
피익!
두 번째 랩타임이 찍혔다.
[40.52]
서킷 전체에 무겁고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명성 레이싱의 미케닉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스톱워치 화면만을 바라보았다. 백 감독의 손에 쥐어진 펜이 툭 하고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혹한의 3월, 국내 카트 역사상 그 누구도 도달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신기록이었다.
진우가 피트로 복귀하여 엔진 시동을 껐다. 그는 헬멧을 벗고 이마의 땀을 훔쳐내며 송 치프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세팅이 아주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송 치프는 귀신을 본 듯한 표정으로 어버버하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백 감독은 마른침을 삼키며 강한수와 진우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미 탐욕과 흥분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 아이는 단순히 잘 타는 영재 수준이 아니었다. 한국 레이싱 판의 생태계를 파괴할, 아니 머지않아 세계 무대를 뒤흔들 천재 괴물이었다.
“강 사장님, 그리고 진우 군. 잠시 우리 팀 트레일러로 들어가지.”
백 감독의 목소리 톤이 확연히 부드러워져 있었다.
대형 트레일러 내부의 고급스러운 회의실. 백 감독은 서랍에서 계약서 한 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명성 레이싱 주니어 드라이버 정식 계약서다. 진우의 가능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확인했어. 우리는 진우에게 최고급 토니카트 섀시 2대와 시즌 중 무제한 타이어 지원, 그리고 연말 유럽 연수 기회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 국내 카트 챔피언십 출전 비용도 당연히 팀에서 전액 부담하지.”
강한수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평생 아들의 타이어 값을 대기 위해 뼈 빠지게 일하던 그였다. 대기업 명성 레이싱의 전폭적인 스폰서십 제안은 꿈에서나 그리던 일이었다.
“게다가 강 사장님도 우리 팀의 미케닉으로 특별 채용하겠소. 낡은 카트 숍은 정리하시고, 우리 팀에서 안정적인 대기업 월급을 받으며 아들의 커리어를 서포트해주십시오.”
강한수가 감격에 젖어 진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진우의 표정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진우는 계약서를 집어 들고 한 장씩 천천히 넘기기 시작했다.
전생에서 세계적인 F1 매니지먼트사들과 계약 조항을 두고 밀고 당기던 진우였다. 대기업들이 유망주들을 평생 노예처럼 옭아매기 위해 파놓는 함정들이 그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진우의 손가락이 계약서 제5조와 제9조를 탁탁 짚었다.
“제5조. ‘드라이버는 계약 기간(5년) 동안 명성 레이싱의 사전 서면 동의 없이 해외 팀의 테스트 및 공식 경기에 참가할 수 없다.’ 그리고 제9조. ‘해외 진출 시 발생하는 모든 스폰서십 및 상금의 분배는 명성 레이싱이 80%, 드라이버가 20%를 가진다. 또한 해외 매니지먼트 권한은 명성 레이싱이 독점한다.’”
진우가 계약서를 덮고 테이블 위로 건조하게 밀어 놓았다.
“이 계약은 하지 않겠습니다.”
백 감독의 온화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뭐? 진우 군, 이게 어떤 기회인지 잘 모르는 모양이군. 명성의 지원 없이 개인 자격으로 레이싱을 지속하는 건 국내 환경에서 불가능해. 시즌당 수천만 원이 깨지는 카트조차 감당하기 힘들 텐데, 포뮬러 진출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게다가 이건 국내 최고 대우야!”
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독소 조항이 너무 많습니다. 5년 동안 명성의 허락 없이는 해외 진출을 못 한다는 조항은 제 발목을 묶겠다는 뜻이겠죠. 해외 진출 시 스폰서십 8:2 배분도 드라이버에게 터무니없이 불리합니다. 무엇보다 제 아버지는 당신들 팀 밑에서 바닥 청소나 하며 월급을 받을 분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치프 미케닉이십니다.”
강한수가 놀란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백 감독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상기되었다. 15세의 어린 소년이 자신의 음험한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고 조목조목 짚어내자 극심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사실 명성 레이싱은 뛰어난 유망주들을 미리 선점해 해외 진출을 빌미로 대기업 홍보에 이용하되, 유럽 진출 시 발생하는 거액의 이적료나 스폰서십을 갈취하려는 목적이 컸다. 전생의 많은 천재 드라이버들이 이 족쇄에 묶여 국내용 드라이버로 안타깝게 사라져 갔다.
“강진우! 네가 지금 아주 크게 오판을 하고 있군. 이 바닥이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굴러가는 줄 아나? 거대 자본과 든든한 스폰서 없이는 아무리 빨라도 서킷 아스팔트에 타이어 자국 하나 남기지 못하고 도태되는 게 레이싱의 냉혹한 현실이야!”
백 감독이 권위적인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진우는 헬멧을 품에 안으며 백 감독을 빤히 응시했다. 그의 두 눈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강인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감독님.”
“뭐?”
“3주 뒤에 코리아 카트 챔피언십 개막전이 열립니다. 그 경기에서 제가 아버지와 함께 손본 그 낡고 용접된 카트로 명성 레이싱의 엘리트 머신들을 전부 이기겠습니다. 1위 시상대 위에서 실력으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진우의 입꼬리가 호기롭게 올라갔다.
“스폰서와 자본이 없다면, 제 실력으로 스폰서들이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들겠습니다. 개막전 서킷 위에서 뵙겠습니다, 감독님.”
진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주저 없이 트레일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강한수 역시 백 감독에게 묵묵히 목례를 한 뒤, 아들의 뒤를 따라 든든한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남겨진 백 감독은 분노와 당혹감에 부르르 떨며 주먹을 꽉 쥐었고, 회의실 구석에 서 있던 임준서는 진우가 남긴 차가운 선언에 등줄기에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아스팔트 위의 전쟁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