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에 갇힌 소년

9화: 방송실의 목소리
방송실은 본관 4층 끝에 있었다.
평소엔 방송부 학생들이 점심 음악을 틀거나 행사 안내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 복도는 낯설었다. 창문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는데, 복도 바닥에는 마른 낙엽이 굴러다녔다. 여름 학교에 있을 리 없는 낙엽이었다.
도겸은 앞장서지 않았다. 그는 늘 반 발 뒤에 머물렀다. 도와주지만 책임지지는 않겠다는 거리였다.
서진이 물었다.
"너는 왜 우리를 돕는 거야?"
도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민재가 대신 말했다.
"양심 찔려서겠지."
"맞아."
뜻밖의 대답에 모두가 도겸을 보았다. 도겸은 무표정했다.
"나는 예전에 친구들을 버리고 혼자 살아남았어. 그래서 아직 여기 있지."
그 말이 복도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누구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방송실 문 앞에는 방송부장 오지후가 서 있었다. 그는 멈춰 있었다. 손에는 점심 방송 대본이 들려 있었고, 입은 무언가 말하려는 모양으로 벌어져 있었다.
이수가 속삭였다.
"오지후."
"왜?"
"아침에 방송 장비 점검한다고 했어. 잡음이 나기 시작한 것도 방송실이고."
서진은 멈춘 지후를 보았다. 단정한 안경, 늘 웃는 얼굴, 누구에게나 친절한 태도. 하지만 그의 손등에는 검은 잉크처럼 번진 자국이 있었다. 시곗바늘 문양이었다.
도겸이 낮게 말했다.
"다섯 번째."
그 순간 지후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늦었네."
그가 웃었다.
소라가 뒷걸음질쳤다. 민재가 욕을 내뱉으며 서진 앞에 섰다.
"너도 기억자야?"
지후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억자라기보단 전달자."
그의 목소리는 방송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와 같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물속에서 울리는 음성.
"정오가 오면 문이 닫힙니다."
도겸이 우산을 들어 올렸다.
"비켜."
"싫어. 이번엔 다섯 명이 모였잖아. 탑이 오래 기다렸어."
이수는 차갑게 물었다.
"네 의지야?"
지후의 웃음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처음엔 아니었지."
서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문하린 선배를 알아?"
지후의 손등 문양이 꿈틀거렸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 이름..."
"하린 선배는 추락한 게 아니야. 누가 밀었어."
"그만."
"너도 알고 있지?"
"그만하라고!"
방송실 유리창이 동시에 깨졌다. 멈춰 있던 빗방울들이 총알처럼 복도로 쏟아졌다. 도겸이 우산을 펼쳤고, 검은 천 위로 빗방울이 박히며 하얀 불꽃을 튀겼다.
이수가 문을 열었다.
"서진, 테이프!"
서진은 방송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낡은 카세트 플레이어가 장비함 아래에 있었다. 마치 누군가 오래전부터 그곳에 숨겨 둔 것처럼.
그가 테이프를 넣는 순간, 지후가 뒤에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틀면 모두 듣게 돼."
"그래서 트는 거야."
재생 버튼이 눌렸다.
치직거리는 잡음 뒤로 한 여학생의 숨소리가 들렸다.
이걸 듣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아마 내일을 못 봤을 거야.
문하린의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차분했다.
시계탑은 소원을 들어주는 곳이 아니야. 누군가의 시간을 먹고, 남은 사람들에게 같은 하루를 돌려줘. 내가 죽으면 그 애는 살겠지. 하지만 이건 사고가 아니야. 나를 밀 사람은...
테이프가 늘어졌다.
지후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손등 문양이 팔 전체로 번졌다.
나를 밀 사람은, 미래의 나를 구하고 싶어 하는 사람.
녹음이 끊겼다.
방송실 스피커에서 전교생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다섯 명의 기억자가 확인되었습니다. 이름 회수를 시작합니다.
소라의 명찰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민재가 서진을 보며 물었다.
"너... 누구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