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에 갇힌 소년

8화: 첫 번째 죽음
백도겸은 계단을 막고 있었다.
좁은 시계탑 내부에서 그의 검은 우산은 펼쳐지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벽보다 넓어 보였다. 민재가 앞으로 나서려 하자 도겸이 손을 들었다.
"싸우러 온 거 아니야."
"그럼 길 막지 마."
"나가면 정오 전까지 너희는 계속 불릴 거야."
서진이 물었다.
"누가?"
도겸은 천장을 보았다. 톱니바퀴가 아주 천천히 돌고 있었다. 금속이 서로 맞물리는 소리가 심장 박동처럼 울렸다.
"탑. 정확히는 탑 안에 묶인 것."
이수는 낡은 사진을 들어 보였다.
"첫 번째 죽음. 이 사람이 누구야?"
도겸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 스쳤다. 두려움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문하린."
그 이름이 방 안에 떨어지는 순간, 벽의 긁힌 글자들이 일제히 검게 젖었다. 소라가 비틀거렸다. 그녀의 교복 명찰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수가 다급히 말했다.
"이름을 말하면 반응해. 왜?"
도겸은 낮게 말했다.
"그 애가 시작이니까."
1999년 6월 14일. 해온고 2학년 문하린은 정오에 시계탑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기록됐다. 학교는 사고라고 했다. 시험 스트레스, 우울감, 불안정한 가정환경. 어른들은 너무 쉽게 이유를 붙였다.
하지만 도겸은 고개를 저었다.
"하린 선배는 떨어진 게 아니야. 누군가 밀었어.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이 멈췄지."
"범인은?"
"모른다."
"넌 어떻게 알아?"
도겸은 손목을 걷었다. 피부 아래에 시곗바늘 같은 검은 문양이 박혀 있었다.
"난 2006년에 여기 갇혔어. 처음엔 너희처럼 나가려고 했고, 친구들을 모았고, 진실을 찾았지. 그런데 다섯 번째 기억자를 찾은 날부터 한 명씩 지워졌다."
그는 소라를 보았다.
"이름부터, 얼굴, 목소리, 마지막엔 존재 자체."
소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난 어떻게 돼?"
"너희가 다섯 번째를 찾기 전에 루프를 깨면 산다."
"방법은?"
도겸은 대답 대신 책상 아래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녹슨 열쇠와 오래된 카세트테이프가 있었다.
"하린 선배가 죽기 전 남긴 녹음. 하지만 재생하면 탑이 깨어난다."
민재가 헛웃음을 쳤다.
"뭘 해도 망하는 선택지뿐이네."
"그래서 실패작이라고 했잖아."
서진은 카세트테이프를 집어 들었다. 낡은 라벨에는 흐린 글씨가 남아 있었다.
12:17 전에 들어야 함.
그때 학교 방송이 켜졌다.
치직.
아직 11시 02분이었다.
문하린의 이름이 호명되었습니다. 회수 절차를 시작합니다.
시계탑 문 밖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소리, 발소리, 교사의 호통. 하지만 정작 창밖 운동장은 비어 있었다.
도겸이 얼굴을 굳혔다.
"가짜야. 대답하지 마."
민재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서진의 번호가 떠 있었다. 서진은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민재가 손을 떨며 전화를 끊었다.
다시 울렸다.
이번엔 소라의 목소리가 스피커 밖으로 새어 나왔다.
민재야, 나 좀 봐줘. 나 여기 있어.
소라는 창백하게 질렸다.
"나 아니야."
도겸이 말했다.
"이제 너희 목소리도 배웠어."
서진은 카세트테이프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우리가 먼저 들어야겠네."
이수가 그를 보았다.
"어디서?"
"방송실."
정오까지 1시간 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