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에 갇힌 소년

5화: 다섯 명의 기억자
강유현은 자신이 스물일곱 살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학생증에는 1999년 입학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진 속 소년은 지금의 얼굴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서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유현은 학생증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시간에 갇히면 나이도 예의상 멈춘다."
"예의가 있긴 해요?"
"없지. 그래서 문제고."
이수는 칠판의 숫자를 지우지 않고 바라봤다.
"다섯 명의 기억자라는 건 루프를 기억하는 사람이 다섯 명 필요하다는 뜻이죠?"
"맞아. 정오 이전의 반복을 기억하고, 정오 이후에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
"지금은 저희 둘, 그리고 선배님?"
"나는 반쯤 죽은 예외라 숫자에 안 들어간다."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서진은 유현의 그림자가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실험대 밑에도, 교탁 아래에도 그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검은 우산은요?"
유현의 표정이 굳었다.
"그 애 이름은 백도겸. 너희보다 먼저 갇힌 기억자다. 그리고 지금은 시계탑 편에 더 가까워."
"사람이 시계탑 편이 될 수 있어요?"
"오래 혼자 있으면 사람이 아닌 것과도 타협하게 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과학실 창문에 금이 갔다. 멈춰 있던 빗방울 하나가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실험대 위에 떨어졌다. 물방울은 검은색이었다.
유현이 낮게 욕을 했다.
"시간이 새고 있어. 오늘은 여기까지다."
"잠깐만요. 다섯 명을 어떻게 찾아요?"
유현은 서진을 보았다.
"반복되는 하루에서 달라지는 사람을 찾아. 사소한 어긋남이 기억의 흔적이다."
다음 순간, 세계가 되감겼다.
네 번째 아침. 7시 42분.
서진은 눈을 뜨자마자 노트를 펼쳤다. 어젯밤 쓴 적 없는 문장이 첫 장에 남아 있었다.
백도겸. 강유현. 다섯 명. 그림자를 조심.
몸은 되돌아가도 기록은 남는다. 아니, 정확히는 기억을 가진 사람이 쓴 기록만 남는다. 서진은 그 규칙을 가슴에 새겼다.
학교에 도착하자 이수는 이미 교실에 와 있었다. 그녀도 노트를 보여 주었다. 깨알같이 정리된 문장 사이에 동그라미 친 이름이 하나 있었다.
박소라
"우리 반 미술부 애?"
"응. 어제 방송 잡음 때 혼자 귀를 막았어. 다른 애들은 장난이라고만 했는데."
박소라는 늘 창문 쪽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학생이었다. 말수가 적고, 점심시간마다 미술실로 사라졌다. 서진은 그녀와 제대로 대화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둘은 2교시 쉬는 시간에 미술실로 갔다. 소라는 커다란 스케치북에 검은 우산을 그리고 있었다.
서진의 발이 멈췄다.
"그거 누구야?"
소라는 놀라 스케치북을 덮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수가 조용히 말했다.
"너도 기억하지?"
소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문 쪽을 확인하고 속삭였다.
"어제 꿈에서 봤어. 아니, 꿈이 아니었어. 다 멈췄는데 너희 둘이 뛰어갔고, 내 그림자가 나한테 말을 걸었어."
"뭐라고 했는데?"
소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섯 번째가 오면 한 명은 사라진다고."
서진은 그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미술실 스피커가 켜지는 소리를 들었다.
치직.
아직 10시 31분이었다.
방송의 시간이 앞당겨졌다.
기억자가 늘었습니다. 문이 좁아집니다.
소라가 울음을 터뜨렸다. 이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서진은 창밖 시계탑을 노려봤다. 분명히 느껴졌다. 저 낡은 탑이 그들을 보고 있었다.
운동장 한가운데, 검은 우산이 펼쳐졌다.
백도겸이 비를 맞지 않는 곳에서 서 있었다.
그가 입 모양으로 말했다.
찾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