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에 갇힌 소년

47화: 깨진 종이 떨어지는 날
종은 천천히 떨어졌다.
그런데도 모두가 피하지 못했다. 하늘 전체가 종의 그림자로 덮였고, 운동장의 사람들은 다시 느려졌다. 12시 18분으로 넘어간 시계는 움직이고 있었지만, 종의 추락은 정오의 마지막 힘으로 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이수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게 떨어지면?"
강유석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시계탑이 아니라 학교 전체가 종이 됩니다.
도겸이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 발악이네."
하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종을 부수면 안 돼. 안에 남은 이름들이 같이 흩어져.
민재가 소리쳤다.
"그럼 받아야 돼?"
서진은 종 아래에 서 있었다. 심장 안쪽의 종소리가 다시 커졌다. 깨진 종은 그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정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대상은 여전히 윤서진이었다.
엄마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번엔 안 돼."
서진은 엄마의 손을 잡았다.
"혼자 받을 생각 아니야."
"그 말 믿어도 돼?"
"응."
그는 모두를 보았다.
"종을 없애는 게 아니라 내려놓아야 해. 더 이상 누구 심장 안에도, 시계탑 안에도 숨기지 않고."
이수가 빠르게 말했다.
"물리적인 장소가 필요해. 종이 떨어져도 사람을 묶지 않는 곳."
소라가 스케치북을 펼쳤다.
"운동장 한가운데."
그녀는 운동장 중심에 원을 그렸다. 원 안에 이름들을 하나씩 적었다. 1974년, 1999년, 2016년, 오늘의 이름들. 원은 커다란 받침대처럼 빛났다.
지후가 수신기의 잔해를 주워 들었다.
"방송으로 안내할게. 모두 자기 이름을 부르면서 원 밖으로 물러나라고."
수신기는 망가졌지만, 운동장의 이름들이 이미 방송망이 되어 있었다. 지후가 말하자 가까운 학생들이 따라 말했고, 그 말은 파도처럼 퍼졌다.
"이름을 부르면서 원 밖으로 물러나세요!"
학생들이 움직였다. 느렸지만 움직였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며 뒤로 물러났다. 넘어진 학생을 누군가 붙잡았고, 울고 있는 교사를 학생이 부축했다.
최도윤이 서진 쪽을 보았다.
그의 손에는 샤프심이 있었다. 그는 한참 망설이다가 그것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윤서진!"
서진은 놀라 그를 봤다.
최도윤은 얼굴이 창백했다.
"너... 안 죽지?"
그 말이 사과는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던지는 물건이 아니라 이름을 보냈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죽어."
민재가 옆에서 낮게 말했다.
"죽으면 내가 진짜 화낼 거라서 안 됨."
종은 더 가까워졌다.
원 안에 서야 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서진, 민재, 이수, 소라, 지후, 엄마. 그리고 도겸, 해린, 하린, 유현의 빛. 윤재하와 한수연의 이름.
강유석도 나타났다. 그는 이전보다 훨씬 희미했다.
지후가 그를 보았다.
"선생님."
강유석은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끊지 않겠다."
하린은 그를 오래 보았다.
"그럼 같이 들어요. 끝까지."
강유석의 얼굴이 무너졌다.
"미안하다."
"늦었지만 들었어요."
그 말에 강유석의 손목에서 검은 실이 풀렸다.
종이 원 위로 내려왔다.
그 무게는 상상보다 컸다. 실제 금속의 무게가 아니었다. 잊힌 이름, 미뤄진 죽음, 덮인 사고, 말하지 못한 사과의 무게였다. 서진은 무릎이 꺾일 뻔했다.
민재가 그의 어깨를 받쳤다.
"같이 한다며!"
이수가 원의 균형을 잡았다.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서진이한테 몰려. 이름을 분산시켜!"
소라가 원 안의 이름들을 선으로 연결했다.
지후가 이름을 읽었다.
"한수연, 윤미정, 윤재하, 윤서진."
엄마가 이어 읽었다.
"문하린, 강유현, 오도겸, 서해린."
민재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김하은, 서민규, 김나연, 정우빈..."
이름은 끝없이 이어졌다.
종의 균열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검은 물이 아니라 빛이었다. 그 빛 속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1974년의 주민들, 1999년의 학생들, 2016년의 목격자, 루프 속에서 사라질 뻔한 현재의 아이들.
그들은 종을 밀어 올리지 않았다.
함께 내려놓았다.
종은 운동장 한가운데에 닿았다.
쾅.
하지만 충격은 없었다.
대신 아주 낮은 울림이 퍼졌다. 끝을 알리는 소리가 아니라, 오래 들고 있던 것을 마침내 바닥에 내려놓는 소리.
정오는 종 옆에 서 있었다. 어린 형체는 이제 거의 투명했다. 그는 종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나는 무엇이 됩니까?
서진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정오는 더 이상 결계가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살려달라는 말을 잘못 품은 기도. 너무 많은 시간 동안 사람을 묶어 버린 규칙.
엄마가 말했다.
"기록."
정오가 그녀를 보았다.
"네가 한 일을 덮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네가 처음 들은 울음도 지우지 않을 거야."
이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가 기억해야 할 기록으로 남아야 해. 다시 사람을 묶는 규칙이 아니라."
소라가 종 옆에 작은 표지판을 그렸다. 그림이 현실이 되었다. 표지판에는 아직 글자가 없었다.
지후가 마이크 없이 말했다.
"해온고 정오 기록."
민재가 덧붙였다.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한 종."
서진은 마지막 문장을 말했다.
"혼자 남기지 않기 위한 약속."
표지판에 글자가 새겨졌다.
정오의 어린 형체는 그 글자를 한참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종줄을 놓았다.
하늘의 시계가 깨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계가 무너지지 않았다.
비가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