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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 갇힌 소년46화

정오에 갇힌 소년

정오에 갇힌 소년

46화: 마지막 증명

운동장에는 전교생이 서 있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학생들, 교사들, 급식실 조리원, 경비 아저씨, 행정실 직원까지 모두 운동장에 모여 있었다. 실제로 걸어 나온 게 아니라 정오가 그들의 시간을 한곳에 끌어모은 것 같았다.

하늘의 거대한 시계 아래, 시계탑의 깨진 종이 떠 있었다.

정오는 종 아래에 섰다. 어린아이 같은 형체는 종줄을 꼭 쥐고 있었다.

마지막 증명.

그 목소리는 모두의 머릿속에 울렸다.

되감긴 시간을 포기하면, 원래 죽었어야 할 사람은 죽습니다. 원래 잊혔어야 할 이름은 잊힙니다. 원래 닫혔어야 할 문은 닫힙니다.

운동장 한쪽에 장면들이 나타났다.

옥상에서 떨어질 뻔한 서민규.

이름이 지워질 뻔한 박소라.

방송실 잡음에 삼켜질 뻔한 오지후.

정답이라는 이름의 희생을 쓰려던 한이수.

사고 현장의 어린 서진.

정오는 말했다.

내가 없으면 이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민재가 바로 소리쳤다.

"거짓말하지 마! 네가 만든 위험도 있잖아!"

정오는 민재를 보았다.

위험이 있었기에 선택이 있었습니다.

이수가 차갑게 말했다.

"선택을 만들려고 사람을 몰아넣은 건 선택이 아니야."

그러나 결과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 논리로는 어떤 폭력도 정당화돼."

정오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살아남는 것이 목적입니다.

엄마가 앞으로 나섰다.

"아니."

운동장의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엄마는 떨고 있었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살아남는 건 목적이 아니라 시작이야. 살아남은 뒤에 어떻게 살지, 누구를 기억하며 살지,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을지. 그걸 빼앗으면 살아 있는 게 아니야."

정오가 종줄을 당겼다.

뎅.

운동장에 있던 사람들 손목에 검은 실이 나타났다. 실은 각자의 가장 약한 기억을 끌어냈다. 누군가는 친구를 외면한 순간, 누군가는 거짓말한 순간, 누군가는 도움 요청을 못 들은 척한 순간.

정오는 속삭였다.

모두가 빚졌습니다. 모두가 누군가를 놓쳤습니다. 내가 아니면 그 빚은 어디로 갑니까?

운동장이 신음으로 가득 찼다. 학생들은 자기 기억에 짓눌려 무릎을 꿇었다. 담임은 손에 든 성적표를 떨어뜨렸고, 최도윤은 자신이 던진 샤프심들이 칼날처럼 돌아오는 환영을 보았다.

서진은 깨달았다.

정오는 빚을 묻고 있었다.

누군가를 살리지 못한 죄책감, 외면한 기억, 말하지 못한 사과. 그것들을 전부 정오가 대신 받아 가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달콤한 제안이었다. 정오에게 넘기면 기억하지 않아도 되니까.

서진은 마이크를 찾았다.

없었다.

지후가 수신기를 들어 올렸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방송이 끊겼어."

소라의 스케치북도 젖은 종이처럼 축 늘어졌다. 이수의 계산도, 민재의 장난도, 엄마의 붉은 실도 검은 실에 눌려 희미해졌다.

정오가 말했다.

증명하십시오. 내가 없이도 당신들이 빚을 감당할 수 있음을.

서진은 운동장을 둘러봤다.

모두가 자기 죄책감에 갇혀 있었다. 그들을 하나씩 구할 수는 없었다. 이름을 하나씩 부르기엔 너무 많았다. 방송도 없었다.

그때 민재가 서진의 팔을 잡았다.

"야."

"왜."

"네 목소리 크지?"

"뭐?"

"맨날 작게 말해서 그렇지, 화나면 꽤 크잖아."

지후가 바로 알아들었다.

"마이크가 없으면 육성으로 시작해. 방송은 기계가 아니라 듣는 사람이 있으면 이어진다고 했어."

이수가 고개를 들었다.

"처음 한 사람이 듣고 따라 말하면 돼."

소라가 젖은 스케치북을 펼쳤다.

"내가 보이는 이름부터 그릴게."

엄마가 서진의 등을 밀었다.

"해."

서진은 숨을 들이마셨다.

운동장은 너무 넓었다. 목소리는 금방 흩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처음 루프에서 혼자 교실에 서 있던 아이가 아니었다.

"윤서진!"

그는 자기 이름을 먼저 외쳤다.

정오가 멈칫했다.

서진은 더 크게 외쳤다.

"내 이름은 윤서진!"

민재가 바로 따라 외쳤다.

"한민재!"

이수가 외쳤다.

"한이수!"

소라가 외쳤다.

"박소라!"

지후가 외쳤다.

"오지후!"

엄마가 외쳤다.

"윤미정!"

도겸과 해린, 하린과 유현, 재하와 한수연의 이름도 바람 속에서 이어졌다.

처음에는 그들뿐이었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서 있던 김나연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방금 전 방송에서 자기 이름을 말했던 학생이었다.

"김나연."

옆자리였던 정우빈이 따라 말했다.

"정우빈."

이름은 이번에도 퍼졌다. 하지만 방송처럼 매끄럽지 않았다. 누군가는 울면서 말했고, 누군가는 목이 메어 여러 번 실패했다. 어떤 학생은 자기 이름 대신 옆 사람 이름부터 불렀다.

그래도 이어졌다.

운동장 전체가 이름으로 가득 찼다.

정오의 검은 실이 하나씩 풀렸다.

정오는 종줄을 더 세게 잡았다.

이름은 죄를 없애지 않습니다.

서진이 대답했다.

"알아."

이름은 죽은 사람을 살리지 않습니다.

"알아."

이름은 시간을 되돌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서진은 한 걸음 다가갔다.

"이름을 부르면 도망칠 수 없잖아. 네가 대신 가져가게 둘 수 없잖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걸 우리가 기억하게 되잖아."

정오의 손에서 종줄이 미끄러졌다.

하늘의 시계가 흔들렸다.

그 순간 운동장 한가운데에 거대한 장부가 펼쳐졌다. 정오 보관 기록. 그 안에 있던 모든 이름들이 하늘로 떠올랐다.

이수는 소리쳤다.

"지금이야! 장부를 닫아야 해!"

엄마가 한수연의 실을 붙잡았다.

지후는 끊긴 수신기를 장부 위에 던졌다.

소라는 스케치북의 마지막 빈 페이지를 찢어 장부에 붙였다.

민재는 장부의 한쪽 모서리를 잡았다.

"서진아!"

서진은 반대쪽을 잡았다.

장부는 닫히지 않으려 발버둥쳤다. 안에서 수많은 손이 뻗어 나왔다. 살려줘, 남아줘, 대신해줘, 잊어줘.

서진은 이를 악물었다.

"같이 살아줘."

그 말에 운동장 전체가 따라왔다.

같이 살아줘.

장부가 닫혔다.

하늘의 시계가 처음으로 12시 18분을 가리켰다.

깨진 종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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