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에 갇힌 소년

45화: 정오의 이름
마지막 문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문 위에는 정오의 이름이라는 글자만 떠 있었다. 글자는 검은색이 아니라 비어 있었다. 글자 모양으로 복도 너머의 어둠이 보였다.
민재가 문을 밀어봤다.
"안 열리네."
이수는 문 주변을 살폈다.
"이름을 알아야 열리는 문이야."
소라가 스케치북을 펼쳤다. 페이지 위에는 문이 그려졌고, 그 안에 빈 이름 칸이 있었다.
____
지후가 방송을 연결했다.
"정오한테도 이름이 있을까?"
도겸이 말했다.
"처음엔 없었을 거야. 한수연 선배님이 울린 종소리였으니까."
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 사람들이 잊고, 덮고, 반복하면서 이름 없는 규칙이 됐겠지."
엄마는 문을 보며 말했다.
"이름이 없으면 우리가 붙여야 하는 거야?"
이수는 잠시 생각했다.
"아니. 이름을 붙이는 건 위험해. 우리가 붙인 이름이 또 다른 규칙이 될 수 있어."
서진은 손목의 실을 내려다봤다. 1974년, 1999년, 2016년, 오늘의 이름들이 모두 얽혀 있었다. 그리고 그 실들 사이에 아직 하나의 빈틈이 있었다.
정오가 잊은 이름.
정오 자신이 되기 전의 이름.
"정오는 기도였다고 했어."
서진이 말했다.
"한수연이 아이들을 살리려고 울린 종. 그런데 그 기도가 이름을 잃고 규칙이 됐어."
지후가 수신기를 조정했다.
"기도를 한 사람이 한수연이면, 정오의 이름도 한수연 아닌가?"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엄마 이름은 돌아왔어. 그런데 문은 안 열려."
소라가 스케치북의 빈칸을 들여다봤다.
"빈칸 길이가 네 글자야."
민재가 바로 말했다.
"정오결계?"
이수가 흘겨봤다.
"그런 식은 아닐 거야."
"나도 알아. 생각나는 거 말한 거야."
서진은 복도에 남은 이름표들을 보았다.
한수연. 문하린. 강유현. 오도겸. 서해린. 윤재하. 김하은. 윤미정. 그리고 오늘의 이름들.
누구도 정오가 아니었다.
그때 문 뒤에서 아주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 울음소리.
엄마의 얼굴이 굳었다.
"미정이?"
아니었다. 울음소리는 더 많았다. 여러 아이가 동시에 울고 있었다. 1974년 잔해 속 아이들, 1999년 복도에 갇힌 학생들, 2016년 사고 앞의 목격자, 오늘의 교실에서 멈춘 아이들.
그 울음들이 겹쳐 하나의 소리가 되었다.
서진은 문에 귀를 댔다.
울음 사이에서 단어가 들렸다.
살려줘.
민재가 조용해졌다.
이수는 눈을 감았다.
"정오의 이름은 한 사람 이름이 아니야."
서진도 같은 생각을 했다.
"살려줘."
그가 말했다.
문 위 빈칸이 흔들렸다.
살려줘
네 글자가 새겨졌다.
민재가 낮게 말했다.
"그게 이름이라고?"
도겸이 대답했다.
"처음 종이 들은 말."
해린이 이어 말했다.
"그리고 정오가 끝까지 오해한 말."
정오는 살려달라는 말을 살려내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죽을 사람을 미루고, 사라질 시간을 붙잡고, 누군가를 대신 묶었다. 하지만 살려달라는 말은 누군가를 영원히 남기라는 뜻이 아니었다.
서진은 문 앞에 섰다.
"살려줘는 이름이 아니야."
문 위 글자가 흔들렸다.
"도와달라는 말이지."
순간 복도가 흔들렸다. 정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정의 오류.
이름 불일치.
회수 절차 재개.
문 주변의 어둠이 시곗바늘처럼 뻗어 나왔다. 가장 먼저 서진의 손목을 감았다. 이어 엄마, 민재, 이수, 소라, 지후, 도겸과 해린의 실을 잡아당겼다.
민재가 이를 악물었다.
"야, 말 예쁘게 해도 못 알아듣네!"
이수가 빠르게 말했다.
"정오가 자기 이름을 부정당해서 방어하는 거야. 계속 말해야 해."
지후가 마이크를 켰다.
"방송 연결!"
소라가 스케치북 빈칸을 찢었다. 찢어진 종이는 작은 흰 조각이 되어 문 위로 날아갔다.
엄마가 먼저 말했다.
"살려줘는 혼자 남으라는 말이 아니야."
도겸이 말했다.
"문턱에 묶이라는 말도 아니야."
해린이 말했다.
"이름을 빼앗아 보관하라는 말도 아니야."
지후가 말했다.
"혼자 듣고 숨기라는 말도 아니야."
소라가 말했다.
"누군가를 그림 속에 가두라는 말도 아니야."
이수가 말했다.
"정답 하나를 고르라는 말도 아니야."
민재가 말했다.
"친구 버리고 멋있는 척하라는 말도 아니야."
마지막으로 서진이 말했다.
"살려줘는 같이 살아달라는 말이야."
문 위 글자가 갈라졌다.
살려줘
그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아래에 새로운 문장이 생겼다.
같이 살아줘
문이 열렸다.
안쪽은 빛도 어둠도 아니었다. 거대한 종 내부였다. 시계탑의 종 안쪽, 하지만 종보다 훨씬 넓었다. 천장에는 수많은 시곗바늘이 매달려 있었고, 바닥에는 이름들이 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정오가 서 있었다.
이전의 검은 형체보다 작았다.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얼굴은 없었지만, 손에는 녹슨 종줄을 쥐고 있었다.
정오는 말했다.
그러면 누가 죽은 사람들을 살립니까?
그 질문에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정오는 다시 물었다.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들었습니다. 나는 멈췄습니다. 나는 되돌렸습니다. 그런데 왜 틀렸습니까?
서진은 어린 형체를 보았다.
그것은 괴물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 같은 말을 잘못 붙잡은 아이였다.
그렇다고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서진은 천천히 다가갔다.
"죽은 사람은 우리가 살릴 수 없어."
정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면 실패입니다.
"아니. 이름을 부를 수 있어. 잊지 않을 수 있어.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의 시간까지 먹고 살지 않게 할 수 있어."
정오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엄마가 서진 옆에 섰다.
"그래. 구원은 아닐지도 몰라."
그녀는 한수연의 이름이 담긴 실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내가 계속 살기를 바랐지, 누군가 대신 갇히기를 바라지 않았어."
지후의 방송이 종 내부에 울렸다. 바깥 학교의 이름들이 함께 들어왔다.
정오는 처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종 내부 바닥에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 아래로 마지막 장소가 보였다.
해온고 운동장.
현재의 12시 17분.
정오는 종줄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그렇다면 마지막 증명이 필요합니다.
문이 닫혔다.
그들은 종 내부에서 운동장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하늘에는 거대한 시계가 떠 있었다.
시곗바늘은 12시 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