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에 갇힌 소년

43화: 2016년에 남은 아이
세 번째 문 앞에서 서진은 멈췄다.
2016.06.14 12:17
그 날짜는 그에게 직접적인 기억이 없었다. 너무 어릴 때도 아니고, 지금도 아닌 애매한 시간. 하지만 손목의 붉은 실은 그 문 앞에서 유난히 아프게 당겨졌다.
엄마가 낮게 말했다.
"네 사고가 난 해야."
서진은 알고 있었지만, 엄마의 입으로 들으니 더 무겁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5학년."
민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문 안에는 삼촌 사고가 있는 거야?"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도겸과 해린은 이제 완전히 함께 걷고 있었다. 몸은 아직 빛처럼 희미했지만, 이전처럼 사라질 듯 흔들리지는 않았다. 해린은 문을 보며 말했다.
"이 문은 네가 직접 지나야 해."
"알아요."
"하지만 혼자 지나라는 뜻은 아니야."
서진은 문을 열었다.
비가 쏟아졌다.
해온초 앞 사거리. 전에 봤던 사고 현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복 장면이 아니었다. 시간이 앞으로 흐르고 있었다.
어린 서진이 공책을 줍기 위해 도로로 뛰어들었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졌다.
윤재하가 핸들을 꺾었다.
충돌.
서진은 눈을 감지 않았다. 이미 봤던 장면인데도 몸이 굳었다. 윤재하가 가로수 아래 쓰러졌고, 어린 서진은 멍하니 서 있었다. 비는 모든 소리를 뭉갰다.
그때 새로운 장면이 보였다.
도로 건너편에 한 아이가 서 있었다.
서진은 그 아이를 처음 봤다. 해온초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 손에는 노란 우산을 들고 있었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수가 말했다.
"목격자야."
지후의 수신기에서 신고 음성이 들렸다.
여기 해온초 앞 사거리인데요! 오토바이 사고요! 애도 있어요!
그 목소리.
소라가 여자아이를 보았다.
"신고한 애."
여자아이는 떨리는 손으로 공중전화를 붙잡고 있었다. 휴대폰이 아니라 학교 앞 문구점 옆에 있던 오래된 공중전화. 그녀는 울면서 주소를 말했다.
해온초 앞이에요. 빨리 와주세요. 아저씨가 피를 많이 흘려요.
서진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저 애는 왜 기록에 없었지?"
엄마가 숨을 삼켰다.
"그날 경찰이 목격자를 찾았는데 아무도 없다고 했어. 나는 사고 경위도 제대로 못 들었고..."
정오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복도 밖에서 들렸다.
목격자는 정리되었습니다.
민재가 이를 갈았다.
"정리 같은 소리 하지 마."
여자아이의 몸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신고를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 검은 실이 입을 막았다. 이름을 말하려던 입술이 닫혔다.
지후가 수신기를 그녀 쪽으로 향했다.
"신고 기록에 이름이 남아 있을 거야."
수신기에서 구급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 이름이 뭐예요? 보호자한테 연락해야 해요.
여자아이는 대답하려 했다.
잡음.
이름이 잘려 있었다.
소라가 스케치북을 펼쳤다. 여자아이의 모습을 그리자 우산에 적힌 작은 글씨가 나타났다.
5-3 김...
나머지는 비에 번져 있었다.
이수는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초등학교 명찰. 가방. 공책."
민재가 문구점 쪽으로 달려갔다.
"저기 가방!"
문구점 처마 밑에 노란 가방이 떨어져 있었다. 민재가 집어 들려고 했지만 손이 통과했다. 과거의 물건이었다.
소라가 가방을 그렸다. 그림 속 지퍼를 열자 현실처럼 가방이 열렸다. 안에는 받아쓰기 공책이 있었다.
첫 장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김하은
서진은 그 이름을 불렀다.
"김하은."
여자아이의 몸이 선명해졌다. 그녀는 현재의 서진을 보았다.
"오빠, 괜찮아요?"
서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아이가 보는 것은 아마 어린 서진일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는 현재의 서진에게 닿았다.
"나 때문에..."
김하은은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가 오빠 피하라고 했어요. 나는 전화만 했어요."
"그래도 네가 신고해서 삼촌이..."
"살진 못했잖아요."
그 말은 원망이 아니었다. 사실을 확인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김하은은 공중전화를 돌아봤다.
"근데 아무도 내가 전화한 걸 기억 안 했어요. 선생님도, 경찰도, 엄마도. 내가 거짓말한 애가 됐어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래서 나도 나중엔 내가 전화했는지 헷갈렸어요."
엄마가 한 걸음 다가갔다.
"미안해."
김하은은 엄마를 보았다.
"아줌마는 누구예요?"
"그때 병원에서 울고 있던 아이 엄마."
김하은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그 애 살았어요?"
엄마는 서진의 손을 잡았다.
"응. 살았어."
김하은은 서진을 보았다. 이번에는 현재의 서진을 알아보는 듯했다.
"그럼 됐어요."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됐어. 네 이름도 남아야 돼."
지후가 마이크를 켰다.
"2016년 해온초 앞 사거리 신고자. 김하은."
밖의 방송이 이어졌다.
김하은.
학교의 현재 학생들이 그 이름을 따라 불렀다. 2016년의 비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김하은은 자신의 노란 우산을 펼쳤다. 우산 안쪽에는 작은 별 스티커들이 붙어 있었다.
"나 이제 거짓말쟁이 아니에요?"
서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야."
"그럼 됐어요."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 빛으로 흩어지며 공중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수화기가 제자리에 닿는 순간, 구급차 사이렌이 선명하게 울렸다.
윤재하가 가로수 아래에서 눈을 떴다.
이번에는 고통스러운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서진을 보며 작게 말했다.
"이제 그날에 남은 애도 나가는구나."
서진은 무릎을 꿇었다.
"삼촌."
"괜찮다. 너는 계속 가."
"같이 가요."
윤재하는 고개를 저었다가, 잠시 후 웃었다.
"전에는 여기까지라고 했지."
그는 김하은이 사라진 자리를 보았다.
"그런데 이제 길이 생겼네."
그의 손목에서 남은 붉은 실이 풀려 서진의 실과 이어졌다.
2016년의 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복도로 돌아왔을 때 세 번째 문도 사라졌다.
이름표 두 개가 남았다.
윤재하
김하은
서진은 그 이름들을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2016년의 사고를 자신의 죄가 아니라 모두가 잊지 않아야 할 사건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