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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 갇힌 소년42화

정오에 갇힌 소년

정오에 갇힌 소년

42화: 1999년의 문

복도로 돌아오자 첫 번째 문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작은 이름표 하나가 남았다.

한수연

엄마는 이름표를 한참 바라봤다. 손을 뻗어 만지려 했지만 이름표는 빛처럼 흩어져 그녀의 손목 실에 스며들었다.

서진은 엄마의 얼굴을 살폈다.

"괜찮아?"

엄마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괜찮진 않은데, 이제 피하고 싶진 않아."

민재가 작게 말했다.

"우리 공식 답변 바뀌었네. 안 괜찮은데 피하지 않는다."

이수는 두 번째 문을 보았다.

1999.06.14 12:17

"여긴 문하린 선배와 강유현 선배, 도겸 선배, 해린 선배의 시간이야."

지후가 테이프를 확인했다. 문하린의 마지막 방송 원본은 이제 거의 투명해져 있었다.

"잘린 방송의 나머지를 완전히 이어야 할 것 같아."

서진은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비 냄새가 아니라 먼지와 뜨거운 전선 냄새가 났다.

그들은 1999년의 해온고 복도에 서 있었다. 복도에는 학생들이 뛰어다녔지만, 모두 멈춰 있었다. 손에는 급식판, 빗자루, 공책이 들려 있었고 얼굴에는 정오 직전의 표정이 얼어붙어 있었다.

방송실 쪽에서 문하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름은 출석부에 있는 글자가 아니라, 누군가가 당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소라가 속삭였다.

"우리가 들었던 방송."

하지만 이번에는 끊기지 않았다.

문하린의 목소리는 복도 끝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제가 부르는 이름은 지워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돌아와야 할 사람들입니다.

서진 일행은 방송실로 달렸다.

문 앞에는 젊은 강유현이 서 있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고리를 붙잡은 채 떨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서해린이 있었다. 아직 이름을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유현아, 열어."

서해린이 말했다.

"하린이가 혼자 못 버텨."

유현은 문고리를 잡고 있었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열면 학교가 무너질지도 몰라."

"안 열면 하린이가 혼자 무너져."

그때 복도 반대편에서 강유석이 달려왔다. 젊은 강유석이었다. 그는 손에 전원 차단기를 들고 있었다.

"비켜!"

서진은 본능적으로 막아서려 했다. 하지만 손이 통과했다. 과거는 이미 일어난 장면이었다.

지후가 이를 악물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기억뿐이야."

방송실 안의 문하린이 계속 말했다.

정오가 하나를 남기라고 말하면 믿지 마세요. 정오는 혼자 남은 사람을 영원히 씁니다.

강유석이 차단기를 내렸다.

방송이 끊겼다.

복도가 암흑에 잠겼다.

그 순간 현재의 도겸과 해린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복도 끝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몸은 희미했지만 눈빛은 선명했다.

도겸은 젊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아니, 이 시간의 오도겸은 아직 복도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중이었다. 그는 방송이 끊긴 직후 시계탑으로 향할 아이였다.

현재의 도겸이 낮게 말했다.

"여기서부터였어."

젊은 도겸은 방송이 끊기자마자 시계탑 쪽으로 달렸다.

"하린아!"

현재의 해린은 젊은 자신을 보았다. 젊은 서해린은 방송실 문 앞에서 울고 있었다.

"유현아, 네가 기억해야 해. 나중에라도."

젊은 강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순간 정오의 검은 실이 서해린의 명찰로 파고들었다. 이름이 번지기 시작했다.

현재의 해린이 앞으로 나섰다.

"아니."

그녀는 자신의 이름표를 떼어 젊은 자신의 명찰 위에 겹쳤다.

"이번에는 내가 나를 기억해."

젊은 서해린의 명찰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검은 얼룩 속에서 한 글자가 남았다.

현재의 해린은 웃었다.

"그거면 됐어. 누군가 이어받을 수 있으니까."

도겸은 시계탑 쪽을 보았다.

"내 몫도 해야지."

복도 끝에서 젊은 도겸이 시계탑 문을 열었다. 그 뒤로 검은 물이 쏟아졌다. 그는 겁에 질렸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현재의 도겸은 젊은 자신 옆에 섰다.

"너 혼자 오래 버틸 거야."

젊은 도겸은 들을 수 없었다.

"근데 끝까지 혼자는 아니야."

현재의 도겸이 강유현의 학생증을 들어 올렸다. 학생증에서 빛이 퍼져 시계탑 문턱에 박혔다. 검은 물이 잠시 밀려났다.

지후가 방송 장비를 꺼냈다.

"끊긴 방송을 여기서 이어야 해. 과거 방송실 안으로 직접 보낼 순 없어도, 이 복도의 기억에 덧씌울 수 있어."

이수가 빠르게 말했다.

"문하린 선배가 끊긴 뒤 부르려던 이름부터 연결해야 해."

소라의 스케치북에 네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문하린

강유현

오도겸

서해린

서진은 마이크를 잡았다.

"문하린."

방송실 안에서 멈춰 있던 하린의 그림자가 고개를 들었다.

민재가 이어 말했다.

"강유현."

과학실 쪽에서 젊은 유현이 눈을 감았다. 그의 가슴속에 숨겨지던 이름들이 완전히 삼켜지지 않고 흔들렸다.

이수가 말했다.

"오도겸."

시계탑 문턱의 젊은 도겸이 한 발 더 버텼다.

소라가 말했다.

"서해린."

젊은 해린의 명찰에 남은 한 글자가 번져 완전한 이름이 되었다.

그 순간 방송실 문이 열렸다.

문하린이 나왔다.

그녀는 1999년의 교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하지만 더 이상 혼자 종 안에 갇힌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늦었네."

민재가 머쓱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시간대가 좀 꼬여서요."

하린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도 왔으니까 됐어."

그녀는 서진을 보았다.

"마지막 문까지 가려면 내 방송을 가지고 가야 해."

지후가 테이프를 들어 보였다.

"원본은 거의 사라졌어요."

"원본은 물건이 아니야."

하린은 마이크 앞에 섰다.

"방송은 듣는 사람이 있으면 계속돼."

그녀가 다시 말했다.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혼자가 아닙니다. 누군가 당신을 따라 부르는 순간, 정오는 당신을 혼자 남길 수 없습니다.

그 문장이 지후의 수신기에 새겨졌다. 테이프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수신기 화면에 작은 글자가 남았다.

방송 지속

1999년의 문이 무너졌다.

복도로 돌아오기 직전, 하린은 도겸과 해린을 보았다.

"이제 와도 돼."

도겸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린은 눈물을 닦았다.

"같이 갈게."

두 사람의 희미한 실이 서진 일행의 실에 합쳐졌다.

복도로 돌아왔을 때 두 번째 문도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에는 네 개의 이름표가 남았다.

문하린

강유현

오도겸

서해린

그리고 복도 끝의 글자 없는 문이 조금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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