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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 갇힌 소년38화

정오에 갇힌 소년

정오에 갇힌 소년

38화: 문하린의 마지막 방송

시계탑 꼭대기 문 앞에서 지후가 멈췄다.

그의 차례라는 걸 모두가 알았다. 문은 방송실 문이었다. 현재 해온고 방송실도, 1999년 방송부실도 아니었다. 두 시간이 겹친 문. 손잡이에는 낡은 마이크 케이블이 감겨 있었다.

지후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번엔 내가 열어야겠지."

민재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방송 담당이니까."

지후는 작게 웃었다.

"부담 주는 방식 참 별로다."

문을 열자 좁은 방송실이 나타났다. 방 한가운데에는 믹서 장비가 있었고, 벽에는 수백 개의 스피커가 박혀 있었다. 스피커마다 다른 시간이 흘러나왔다.

1974년 철거 안내 방송.

1999년 점심 방송.

현재 해온고의 수업 시작 종.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누군가의 울음소리.

지후는 장비 앞에 앉았다. 그의 손등 흉터가 붉게 빛났다.

정오의 목소리가 스피커 전체에서 울렸다.

오지후. 당신은 들었습니다.

스피커 하나에서 어린 지후의 목소리가 나왔다.

방송실에 아무도 없었어요. 진짜예요.

다른 스피커에서 어른 목소리.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또 다른 목소리.

그날 방송은 장비 오류였어.

지후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들었어."

정오는 물었다.

그런데 왜 말하지 않았습니까?

지후의 손이 멈췄다.

방송실 유리 너머로 과거가 나타났다. 어린 지후가 방송실 밖 복도에 서 있었다. 그는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문하린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누군가 이 방송을 듣고 있다면, 끊기 전에 기억해 주세요.

어린 지후는 겁에 질려 있었다. 그는 문을 열 수 있었지만 열지 않았다. 대신 도망쳤다. 그리고 다음 날 어른들에게 방송을 들었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현재의 지후는 눈을 감았다.

"무서웠어."

정오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래서 당신은 늦었습니다.

"그래."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늦었어. 하린 선배 방송을 듣고도 못 열었고, 유석 선생님 기록을 쫓으면서도 계속 숨었어. 장비 뒤에, 잡음 뒤에."

서진은 조용히 말했다.

"지후야, 그때 너도 어렸어."

"알아."

지후는 서진을 돌아보지 않았다.

"근데 어렸다는 말이 내가 안 들은 걸로 만들진 않아. 나는 들었고, 도망쳤고, 그래서 지금 다시 듣고 있어."

그는 카세트테이프를 장비에 넣었다. 전에 들었던 문하린의 원본이 재생됐다.

해온고 학생 여러분. 지금부터 제 말을 듣는 사람은 자기 이름을 잊지 마세요...

지후는 믹서의 주파수를 12.17MHz에 맞췄다. 장비가 비명을 질렀다. 스피커에서 피드백 소리가 터졌다.

소라가 귀를 막았다.

"너무 세!"

이수가 장비 패널을 붙잡았다.

"세 시간이 한꺼번에 물리고 있어. 하나씩 맞춰야 해."

지후는 눈을 뜨고 스피커들을 바라봤다.

"하린 선배 방송의 잘린 부분을 찾아야 해. 녹음이 아니라 들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은 잔향."

엄마가 말했다.

"그걸 어떻게 찾아?"

지후는 자기 손등 흉터를 눌렀다.

"내가 들었으니까."

그는 헤드폰을 썼다.

순간 지후의 몸이 굳었다. 스피커들이 하나씩 꺼지고, 방송실은 완전한 침묵에 잠겼다. 그 침묵 속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문하린.

혼자 듣지 마.

지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뭐?"

방송은 혼자 듣는 게 아니야. 네가 들었다면, 다른 사람에게 이어줘.

지후는 헤드폰을 벗었다. 그리고 그것을 서진에게 주려다 멈췄다.

이수의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혼자 책임지지 않는 것.

지후는 헤드폰 선을 뽑아 스피커 출력에 연결했다.

"다 같이 들어."

방송실 전체가 울렸다.

문하린의 잘린 목소리가 돌아왔다.

종을 깨울 사람은 대답하지 마세요. 질문을 바꾸세요. 정오가 묻는 것은 누구를 버릴지입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누구의 이름을 함께 부를지입니다.

서진의 손목 실이 빛났다.

종은 하나의 희생으로 멈추지 않습니다. 종은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로 풀립니다.

스피커들이 차례로 켜졌다. 1974년의 아이들, 1999년의 학생들, 현재의 교실에서 점심을 먹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겹쳤다.

이름들.

잊혔던 이름들이 잡음 속에서 떠올랐다.

소라가 스케치북을 펼치자 페이지가 스스로 넘어갔다. 이름들이 그림처럼 새겨졌다.

한수연

문하린

강유현

오도겸

서해린

윤재하

그리고 아직 검게 지워진 수많은 칸.

지후는 마이크를 켰다.

"여기는 해온고 방송실."

그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끊기지 않았다.

"이 방송을 듣는 사람은 자기 이름을 말해 주세요. 혼자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옆 사람 이름을 같이 불러 주세요."

정오의 목소리가 찢어지듯 끼어들었다.

허가되지 않은 방송입니다.

민재가 다른 마이크를 잡았다.

"허가 안 받는다니까."

이수도 마이크 앞에 섰다.

"이 방송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소라가 스케치북을 카메라처럼 들어 올렸다.

"그림에 이름을 남길게요."

엄마는 서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윤서진."

그녀가 먼저 말했다.

"내 아들 윤서진."

서진의 심장이 크게 울렸다. 하지만 이번 종소리는 아프지 않았다.

방송실 문 밖에서 수많은 목소리가 따라왔다.

윤서진.

한민재.

한이수.

박소라.

오지후.

이름들이 이어질수록 깨진 종을 묶고 있던 검은 실이 하나씩 풀렸다. 그러나 종은 무너지지 않았다. 민재와 이수의 붉은 실, 지후의 방송선, 소라의 그림선이 새롭게 받치고 있었다.

방송실 천장이 열렸다.

위에는 깨진 종의 내부가 보였다.

문하린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올 거야. 이번에는 대답하지 말고, 너희의 질문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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