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정오에 갇힌 소년37화

정오에 갇힌 소년

정오에 갇힌 소년

37화: 한이수의 오답

민재의 실이 묶인 뒤 계단은 한동안 조용했다.

하지만 조용하다는 건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시계탑은 숨을 죽이고 다음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진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장 안의 종이 아주 작게 떨렸다.

계단 중간에 도착했을 때, 벽 한쪽이 칠판으로 변했다.

분필 가루 냄새가 퍼졌다.

칠판에는 수학 문제가 적혀 있었다. 단순한 방정식처럼 보였지만 숫자가 전부 12와 17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앞에 어린 이수가 서 있었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이수는 손에 분필을 쥐고 있었고, 뒤에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틀리면 안 돼.

이수는 잘하잖아.

네가 실수하면 다 무너져.

현재의 이수는 표정이 굳었다.

민재가 낮게 말했다.

"이번엔 네 차례인가 보다."

이수는 바로 대답했다.

"무시하고 가."

하지만 계단은 사라졌다. 위로도 아래로도 길이 끊겼고, 그들 앞에는 칠판과 책상만 남았다. 책상 위에는 답안지가 놓여 있었다.

정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이수. 정답을 쓰십시오.

이수는 답안지를 내려다봤다.

문제는 하나였다.

윤서진을 살리기 위해 누가 남아야 하는가.

보기는 다섯 개였다.

1. 한민재

2. 박소라

3. 오지후

4. 윤미정

5. 한이수

서진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이딴 문제 풀지 마."

이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답안지를 보고 있었다. 너무 오래 훈련된 눈이었다. 조건을 읽고, 가능성을 나누고, 손실을 계산하는 눈.

소라가 그녀의 소매를 잡았다.

"이수야."

이수는 작게 말했다.

"정답이 없어."

정오의 목소리가 바로 대답했다.

오답입니다.

칠판의 숫자들이 붉게 변했다. 어린 이수의 손등에 분필 자국이 아니라 붉은 실이 떠올랐다.

어른들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정답이 없다는 말은 포기야.

제일 나은 답을 골라야지.

너는 늘 맞혀야 하잖아.

이수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서진은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책상들이 사이를 막았다. 책상마다 다른 답안지가 놓여 있었다. 모든 답안지에는 이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수는 천천히 분필을 집어 들었다.

"계산하면..."

민재가 소리쳤다.

"계산하지 마!"

"누군가 남아야 한다면, 손실이 가장 적은 사람을..."

"야!"

이수는 말을 멈췄다. 민재가 책상 하나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너 지금 네 이름 쓰려고 했지?"

이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똑똑한 아이들이 제일 빨리 자기 목숨을 숫자로 만들더라."

그 말에 이수의 눈이 흔들렸다.

엄마는 더 다가가지 않았다. 대신 자기 손목의 붉은 실을 들어 보였다.

"나도 그랬어. 내 시간이면 된다고 생각했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내 시간쯤은 싸다고. 그런데 그 선택이 내 아들을 여기까지 끌고 왔어."

이수는 분필을 꽉 쥐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누군가는 답을 써야 하잖아요."

서진이 말했다.

"안 써도 돼."

"그건 도망이야."

"아니. 문제를 거부하는 것도 답이야."

이수는 서진을 보았다. 그 눈에는 분노도 있었다.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너야말로 계속 혼자 답 쓰려고 했잖아."

서진은 반박하지 못했다.

이수는 숨을 떨며 말했다.

"네가 사라지면 민재는 무너질 거고, 소라는 또 자기 이름을 의심할 거고, 지후는 방송 잡음 속에서 너를 찾을 거야. 어머님은 평생 그날로 돌아갈 거고. 그래서 내가 계산했어. 내가 남으면 적어도..."

"적어도 뭐."

서진이 낮게 물었다.

"우리가 덜 아플 것 같아?"

이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늘 맞혀야 했어."

그 말은 변명처럼 들리지 않았다. 구조 요청처럼 들렸다.

"틀리면 누가 실망하고, 틀리면 누가 다치고, 틀리면 내가 쓸모없어질 것 같았어."

칠판 앞 어린 이수가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오답이 제일 무서웠어."

정오가 속삭였다.

정답을 쓰십시오.

이수는 분필을 들었다. 모두가 숨을 멈췄다.

그녀는 칠판에 보기 번호를 쓰지 않았다.

대신 문제 위에 큰 X를 그었다.

분필이 부러졌다.

"이 문제는 틀렸어."

정오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오답입니다.

이수는 고개를 들었다.

"그래. 오답."

그녀는 남은 분필 조각으로 답안지에도 같은 X를 그었다.

"나는 오늘 오답을 선택할 거야. 누군가를 남겨야만 풀리는 문제라면, 그 문제를 만든 쪽이 틀린 거니까."

칠판이 갈라졌다. 어린 이수의 손등에 감겼던 붉은 실이 풀려 현재의 이수에게 이어졌다. 하지만 그녀를 묶지 않았다. 실은 민재의 난간 실과 교차하며 새로운 계단을 만들었다.

지후가 수신기를 확인했다.

"방송 회로가 하나 더 열렸어."

소라가 웃음 섞인 울음을 삼켰다.

"이수야, 멋있었어."

이수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멋있는 거 아니야. 손 떨려."

민재가 바로 말했다.

"손 떨면서 하는 게 멋있는 거지."

이수는 그를 흘겨봤지만, 이번에는 아주 작게 웃었다.

서진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고마워."

"아직 고마워하지 마. 너도 나중에 네 문제 틀려야 해."

"알았어."

그들은 다시 계단을 올랐다.

뒤쪽 칠판에는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보기들은 모두 지워지고, 이수가 그은 X만 선명하게 빛났다.

문하린의 방송이 이어졌다.

정답처럼 보이는 희생을 조심하세요. 정오는 늘 가장 착한 대답을 먼저 내밉니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