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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 갇힌 소년35화

정오에 갇힌 소년

정오에 갇힌 소년

35화: 깨진 종을 묶는 법

당신은 누구를 두고 갈 겁니까.

질문은 한 번만 들렸는데, 머릿속에서는 계속 반복됐다. 서진은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하지만 그 말이 너무 쉬워서 오히려 두려웠다.

정오는 쉬운 말을 가장 좋아했다.

"대답하지 마."

이수가 먼저 말했다.

서진은 그녀를 보았다.

이수의 얼굴은 차분했지만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지금 대답하면 정오가 그 말을 계약으로 바꿀 거야. 아무도 두고 가지 않겠다는 말도, 결국 네가 전부 책임지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

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얘 말 맞아. 저쪽은 말장난 전문이야."

정오의 목소리는 웃지 않았지만 방 안 공기가 비틀렸다.

응답 지연.

교장실 바닥이 갈라졌다. 갈라진 틈 아래로 시계탑 내부가 보였다. 깨진 종, 검은 물, 수많은 붉은 실. 실들은 종의 균열을 임시로 묶고 있었고, 그 끝은 학교 곳곳의 사람들에게 이어져 있었다.

소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종이 깨졌는데 실이 붙잡고 있어."

지후는 수신기를 조정했다.

"실이 끊기면 종이 완전히 무너지고, 안에 있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터질 거야."

강유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하린이는 방송으로 이름들을 먼저 밖으로 보내려 했다. 종을 깨우는 게 아니라, 종 안에 갇힌 사람들을 깨우는 방식으로."

엄마가 서진의 팔을 붙잡았다.

"그럼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되잖아. 방송을 다시 틀면..."

"원본은 일부만 남았습니다."

강유석은 테이프를 보았다.

"마지막 문장이 잘렸고, 그 뒤에 하린이가 남긴 실행 방법도 끊겼습니다."

지후가 테이프를 뒤집어 보았다.

"물리적으로 잘린 게 아니에요. 녹음된 시간 자체가 잘렸어요."

이수가 빠르게 정리했다.

"그럼 방법은 두 가지야. 잘린 시간을 찾거나, 같은 기능을 하는 새 방송을 만드는 것."

민재가 손을 들었다.

"새 방송 만들자. 우리 세대 버전으로."

모두가 그를 보았다.

"왜. 방송 장비는 지후가 알고, 소라는 그림으로 문 만들고, 이수는 규칙 해석하고, 서진이는 정오 주인공 됐고, 어머님은 기존 계약자고. 나만 빼면 역할 다 있네. 좀 서운하다."

서진은 피식 웃을 뻔했다. 상황과 맞지 않는 웃음이었지만, 그 웃음 덕분에 숨이 트였다.

"너는?"

"나는 분위기 담당."

"중요하네."

"그치?"

짧은 대화가 끝나자 다시 무게가 돌아왔다. 하지만 아주 조금 덜 무거웠다.

소라가 스케치북을 펼쳤다.

"방송실로 가야 해. 그런데 그냥 학교 방송실로는 안 될 것 같아."

그녀의 그림에는 현재 방송실, 1999년 방송부실, 1974년 당집의 종이 한 점에서 겹쳐 있었다.

"세 시간이 만나는 방송실이 있어."

지후가 그림을 들여다봤다.

"시계탑 내부."

이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종을 묶고 있는 실의 중심에서 방송해야 해. 그래야 이름이 안쪽까지 닿아."

정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허가되지 않은 절차입니다.

민재가 천장을 향해 말했다.

"허가 안 해줘도 할 건데?"

그 순간 교장실 문이 닫혔다. 문고리가 사라졌다. 벽에 걸린 교훈 액자가 녹아내리며 검은 글자로 바뀌었다.

대답하지 않는 자는 문을 잃습니다.

강유석이 힘겹게 일어났다.

"여기서 나가려면 누군가 죄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게 뭔데요?"

"내가 숨긴 것을 모두에게 보이는 것."

그는 책상 위의 서류와 테이프를 모았다. 그리고 금고를 열었다. 안에는 더 많은 기록이 있었다. 1974년 사고 은폐 문서, 1999년 문하린 사고 보고서, 강유현의 상담 기록, 오도겸 실종 신고서, 서해린의 삭제된 생활기록부.

강유석은 그것들을 교장실 바닥에 뿌렸다.

"나는 학교를 지킨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킨 것은 학교의 이름뿐이었다. 사람들의 이름은 숨겼다."

서류들이 불붙듯 빛났다.

교장실 문이 다시 생겼다.

하지만 강유석의 몸은 점점 투명해졌다.

지후가 다급히 말했다.

"선생님도 같이 나가요."

강유석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나갈 기회를 잃었다."

이수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 말이 정오가 원하는 말이라고 방금 배웠잖아요."

강유석이 멈칫했다.

"뭐?"

"혼자 남겠다는 말 하지 마세요. 죄를 인정했으면 책임지는 방식도 바꾸세요."

강유석은 한동안 이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습관을 내려놓는 사람처럼 웃었다.

"전교 1등답군."

"지금 그런 말 할 때 아니에요."

"그래."

그는 서류 하나를 집어 지후에게 건넸다.

"그럼 나도 나가겠다. 대신 이 기록을 가지고 가라. 방송에 필요한 주파수다."

지후가 서류를 받았다.

12.17MHz

민재가 눈을 찡그렸다.

"주파수도 12.17이야? 집착 대단하다."

강유석은 문을 열었다. 문밖은 시계탑 나선계단이었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과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동시에 보였다. 계단 벽에는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중 일부는 빛났고, 일부는 아직 검었다.

서진은 계단을 올려다봤다.

정오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누구를 두고 갈 것인가. 대답을 미룬 것뿐이다.

그는 자신의 손목 실을 보았다. 실들은 이제 심장으로만 향하지 않았다. 민재, 이수, 소라, 지후, 엄마에게도 가느다란 빛의 실이 이어져 있었다.

혼자 남지 않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대신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뜻만이 아니었다.

도망치지 않고 각자의 몫을 들고 서는 것.

서진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시계탑 위에서 깨진 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종 아래, 문하린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방송을 듣는 사람은 자기 이름을 기억하세요. 곧 정오가 당신에게 가장 쉬운 거짓말을 속삭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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