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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 갇힌 소년3화

정오에 갇힌 소년

정오에 갇힌 소년

3화: 기억하는 사람

세 번째 아침에도 비가 왔다.

서진은 더 이상 알람을 기다리지 않았다. 7시 42분을 확인한 뒤 곧장 교복을 입고, 식탁 위 삼각김밥을 가방에 넣고, 메모지를 주머니에 접어 넣었다. 엄마의 글씨가 하루마다 새로 태어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학교 정문에서 민재가 소리쳤다.

"윤서진! 오늘 성적표..."

"알아. 나오지."

"뭐야, 재미없게."

서진은 민재의 얼굴을 오래 봤다. 어제 정오에 멈춘 민재는 아무것도 모른다. 오늘도 모를 것이다. 같은 농담을 하고, 같은 급식을 먹고, 같은 시간에 멈출 것이다.

교실 앞문을 열자 한이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서진을 보자마자 말했다.

"12시 17분."

서진의 손에서 가방끈이 미끄러졌다.

"기억해?"

"전부는 아니야." 이수는 주변을 살피고 목소리를 낮췄다. "종소리, 멈춘 비, 네가 나를 보는 얼굴. 그리고 검은 우산."

둘은 점심시간 전까지 말을 아꼈다. 수업은 흘러갔지만, 칠판 위 숫자와 교과서 문장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서진은 시계탑을 보았다. 이수는 노트 한쪽에 시간표처럼 무언가를 적었다.

4교시가 끝나자 둘은 도서관 뒤편 계단으로 갔다. 그곳은 CCTV 사각지대라는 소문이 있어 학생들이 몰래 간식을 먹는 장소였다.

이수가 노트를 펼쳤다.

"반복되는 시간은 7시 42분부터 12시 17분까지. 정확히 4시간 35분."

"왜 하필 그 시간이야?"

"몰라. 하지만 정오는 아니야. 방송은 정오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12시 17분이야."

서진은 주머니에서 엄마의 메모지를 꺼냈다.

"내가 가져온 건 남아. 어제는 없었는데 오늘은 있어."

이수가 메모지를 받아 들었다. 그녀는 종이를 빛에 비춰 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이거 뒷면에 뭐가 있어."

"뭐?"

서진은 메모지를 빼앗듯 받아 뒤집었다. 아침에는 분명 비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연필로 긁은 듯 희미한 문장이 떠올라 있었다.

첫째, 종소리를 세지 마라.

두 사람은 동시에 침묵했다.

"누가 쓴 거야?"

"엄마는 아니야."

"네가 쓴 것도 아니고?"

"내 글씨 아니야."

이수는 한참 동안 메모지를 보다가 말했다.

"우리를 보는 누군가가 있어."

그 말이 끝나자 계단 아래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서진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검은색 학생화. 젖은 바지 밑단. 그리고 닫힌 검은 우산.

낯선 소년이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

"종소리를 세면 안 돼."

그의 목소리는 방송에서 들었던 것과 비슷했다. 물속에서 울리는 듯했지만, 분명한 인간의 목소리였다.

서진이 물었다.

"너 누구야?"

소년은 대답하지 않고 이수를 보았다.

"이번에도 둘이네."

"이번에도?"

이수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소년은 계단을 한 칸 올라왔다. 그 순간 주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도서관 안쪽에서 책장이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오늘 정오를 넘기려 하지 마.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무슨 준비?"

"살아남을 준비."

서진은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잡아야 했다. 적어도 이름이라도 알아내야 했다. 그러나 손끝이 소년의 교복 소매에 닿는 순간, 손가락이 얼음물에 담긴 것처럼 굳었다.

소년은 서진의 귓가에 속삭였다.

"윤서진. 네가 처음이 아니야."

종이 울렸다.

서진은 반사적으로 소리를 세려 했다. 하나. 둘. 셋.

이수가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세지 마."

네 번째 종이 울린 순간, 검은 우산의 소년은 사라졌다. 멈춘 빗방울 사이로 시계탑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되감기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12시 18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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