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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 갇힌 소년2화

정오에 갇힌 소년

정오에 갇힌 소년

2화: 같은 샤프심

서진은 삼각김밥 포장지를 뜯지 못했다.

식탁 위 메모지는 어제와 같았다. 엄마 야근. 밥 챙겨 먹어. 우산 가져가. 글씨의 삐침까지 똑같았다. 서진은 메모지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잉크는 번지지 않았다.

"꿈이면 되게 성의 없네."

그는 일부러 우산을 놓고 집을 나섰다. 달라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뛰는 동안 비가 교복 어깨를 적셨고, 버스 안에서는 어제와 같은 노래가 같은 타이밍에 흘러나왔다.

해온고 정문 앞에서 한민재가 우산으로 등을 쳤다.

"윤서진! 오늘 성적표 나오는 거 알지?"

서진은 대답 대신 민재의 손목을 붙잡았다.

"너 오늘 3교시 끝나고 매점 가지 마."

"뭐?"

"그리고 수학 시간에 도윤이가 샤프심 던질 거야. 맞으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바로 선생님한테 말해."

민재는 잠시 서진을 보더니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 열 있냐?"

"없어."

"있어 보이는데."

교실에 들어서자 한이수가 고개를 돌렸다. 서진은 그녀가 말하기 전에 우산이 없다는 걸 보여 주듯 양손을 들었다.

"오늘은 바닥 안 젖어."

이수가 미간을 좁혔다.

"왜 나한테 말해?"

그 반응은 어제와 달랐다. 아주 작지만 달랐다. 서진은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바뀐다. 바꿀 수 있다.

하지만 3교시 수학 시간, 최도윤은 똑같이 샤프심을 던졌다. 서진은 고개를 숙여 피했다. 샤프심은 칠판 쪽으로 날아가 수학 선생님의 구두 앞에 떨어졌다.

"누구야."

교실이 얼어붙었다. 도윤은 뻔뻔하게 창밖을 봤다. 서진은 손을 들었다.

"최도윤이 던졌습니다."

순간 반 전체가 서진을 보았다. 도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야, 윤서진. 증거 있어?"

"네가 오른손 검지에 샤프심 가루 묻히고 있잖아."

도윤은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숨겼다. 그게 증거가 됐다.

쉬는 시간에 도윤은 서진의 멱살을 잡았다.

"너 오늘 왜 나대?"

서진은 도윤의 팔을 떼어 내지 않았다.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차피 하루가 반복된다면 맞아도 내일이면 사라진다. 그 생각이 묘한 용기를 줬다.

"정오 되면 아무 일도 아니게 될 수도 있어서."

"뭔 개소리야?"

그때 한이수가 다가왔다.

"놔."

짧은 한마디였다. 이상하게도 도윤은 바로 손을 놓았다. 이수는 서진을 한 번 훑어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오늘 이상해."

"나도 알아."

"무슨 일 있어?"

서진은 말하려다 멈췄다. 믿을 리 없었다. 시간 반복, 멈춘 비, 검은 우산.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자신이 미친 사람처럼 들릴 게 뻔했다.

"12시 17분에 시계탑 보지 마."

이수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왜?"

방송 스피커가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치직.

서진은 숨을 삼켰다. 아직 점심 전이었다. 같은 시간. 같은 잡음.

정오가 오면 문이 닫힙니다.

이번에는 이수도 스피커를 올려다봤다. 서진은 그녀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놀람이 아니었다. 기억을 더듬는 얼굴이었다.

"너도 들었지?"

"...응."

12시 17분.

종이 울렸다. 빗방울이 멈췄다. 교실이 정적에 잠겼다. 모두가 멈춘 가운데, 이번에는 서진 혼자가 아니었다.

한이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윤서진."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도 움직여?"

서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시계탑 아래 검은 우산의 학생이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잠깐 보였다. 아무 표정 없는, 낯선 소년.

그리고 세상이 다시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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