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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 갇힌 소년1화

정오에 갇힌 소년

정오에 갇힌 소년

시놉시스

서울 외곽의 평범한 고등학교, 해온고. 열일곱 살 윤서진은 시험, 급식, 야자, 무심한 어른들 사이에서 매일 비슷한 하루를 견디는 학생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오 12시 17분, 학교 옥상 시계탑의 종이 울린 순간 세상이 멈춘다. 그리고 다시 아침 7시 42분으로 되감긴다.

처음엔 악몽이라 여겼다. 하지만 같은 말, 같은 사고, 같은 죽음의 징조가 반복될수록 서진은 자신이 단순한 시간 루프가 아니라 누군가가 만든 '정오의 결계'에 갇혔음을 깨닫는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변하지 않는 건 사람들의 선택뿐이고, 바뀌는 건 서진이 기억하는 죄책감과 용기뿐이다.

서진은 루프를 이용해 친구들을 구하고, 학교에 숨겨진 도시 괴담과 오래된 시간의 신을 추적한다. 하지만 루프의 규칙은 잔혹하다. 정오를 넘기려 할수록 누군가의 기억이 지워지고, 세상은 서진을 이물질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반복되는 하루의 끝에서 서진은 선택해야 한다. 모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하루 밖으로 밀어낼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정오 속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남을 것인가.

1화: 12시 17분

윤서진은 알람보다 3분 먼저 눈을 떴다.

창밖으로는 비가 오고 있었다. 여름비치고는 차가웠다. 얇은 커튼 너머로 회색빛이 방 안에 고여 있었고, 책상 위 참고서 모서리에는 어젯밤 흘린 라면 국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핸드폰 화면이 켜졌다.

오전 7시 42분.

"아, 진짜."

서진은 이불을 걷어찼다. 월요일이었다.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자, 담임이 생활기록부 상담을 한다고 예고한 날. 그리고 무엇보다, 3교시 수학 시간에 최도윤이 또 뒤에서 샤프심을 던질 게 분명한 날이었다.

부엌에는 엄마가 없었다. 대신 식탁 위에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와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엄마 야근. 밥 챙겨 먹어. 우산 가져가.

서진은 메모지를 뒤집어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게 더 쓸쓸했다.

학교까지 가는 버스는 늘 그렇듯 만원이었다. 젖은 교복 냄새, 이어폰 밖으로 새는 아이돌 음악, 기사 아저씨의 짧은 욕설. 모든 게 지겨울 만큼 익숙했다. 해온고 정문 앞에서 내렸을 때, 운동장 시계탑은 8시 1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윤서진!"

뒤에서 누군가 우산을 들이받았다. 한민재였다. 중학교 때부터 붙어 다닌 친구이자, 세상 모든 일을 게임 퀘스트처럼 해석하는 인간.

"오늘 성적표 나오는 거 알지?"

"모르고 싶다."

"도망칠래? 지금이라면 가능해. 1교시 전에 담 넘으면 전설로 남을 수 있어."

"넌 담 넘다가 체육쌤한테 잡히고 난 네 보호자로 불려가겠지."

민재가 웃었다. 그 웃음이 빗속에서 묘하게 밝았다.

교실은 습기와 분필 가루로 가득했다. 서진은 창가 맨 뒷자리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앞줄의 한 여학생이 고개를 돌렸다.

한이수.

반장이자 전교 1등. 언제나 단정했고, 말투는 차분했으며,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만 유지했다. 이수는 서진의 책상 위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오늘 우산 안 접으면 바닥 또 물바다 돼."

"내 우산만 그런 거 아닌데."

"네 자리 쪽만 항상 심해."

서진은 투덜거리며 우산을 접었다. 이수는 더 말하지 않고 앞을 봤다. 이상하게도 그 짧은 대화가 하루 중 가장 선명하게 남았다.

오전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최도윤은 수학 시간에 샤프심을 던졌고, 담임은 성적표를 나눠 주며 "지금 정신 차리면 아직 늦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이 얼마나 오래된 협박인지 어른들은 모르는 듯했다.

점심시간 직전, 방송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잡음이 났다.

치직.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담임이 천장을 올려다봤다.

전교생은...

목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물속에서 말하는 듯한 음성.

정오가 오면 문이 닫힙니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뭐야, 방송반 장난?"

민재가 웃었지만, 서진은 웃지 못했다. 등골에 차가운 것이 내려앉았다.

운동장 시계탑의 종이 울린 건 12시 17분이었다.

뎅.

첫 번째 종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공중에 멈췄다.

뎅.

창밖에서 뛰던 1학년 학생의 발이 허공에 고정됐다.

뎅.

교실 안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서진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 소리만 들렸다. 자신만 움직이고 있었다.

"민재야."

대답이 없었다. 민재는 젓가락을 든 채 굳어 있었다. 앞자리의 이수도, 칠판 앞의 담임도, 복도에서 떠들던 아이들도 모두 멈춰 있었다.

서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렸다.

그때 창밖 시계탑 아래에 누군가 서 있었다.

검은 우산을 든 학생.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학생은 분명히 서진을 보고 있었다.

서진이 창문 쪽으로 다가간 순간, 시계탑의 분침이 거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야."

교실이 찢어지듯 흔들렸다. 서진의 시야가 하얗게 번졌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는 비가 오고 있었다.

핸드폰 화면이 켜졌다.

오전 7시 42분.

서진은 침대 위에서 얼어붙었다. 식은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알람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말도 안 돼."

3분 뒤, 알람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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