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에 갇힌 소년

21화: 12시 18분의 세계
점심시간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 사실이 서진에게는 가장 이상했다. 세상은 무너졌어야 했다. 시계탑의 종은 갈라졌고, 검은 태양은 깨졌고, 수백 개의 이름이 종 안에서 쏟아졌다. 그런데 교실에서는 누군가 카레를 흘렸다고 소리를 질렀고, 담임은 복도에서 생활지도부 교사와 점심 방송 문제로 말다툼하고 있었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야."
민재가 젓가락을 든 채 서진의 팔을 툭 쳤다.
"나 지금 밥 먹어도 돼?"
서진은 멍하니 민재를 보았다.
"그게 지금 중요해?"
"중요하지. 나 아침부터 루프니 시계탑이니 하면서 제대로 못 먹었어."
민재는 카레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씹던 얼굴이 굳었다.
"맛이 나."
그 말에 소라가 자기 우유팩을 내려다봤다. 그녀는 천천히 빨대를 꽂고 한 모금 마셨다. 곧바로 얼굴을 찡그렸다.
"역시 못 마시겠어."
이수가 아주 작게 웃었다.
"돌아왔네."
서진도 웃으려 했다. 하지만 창밖 시계탑 꼭대기의 금이 눈에 들어왔다. 금 사이로 검은 물방울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빗물과 섞이지 않는 검은 물. 운동장 바닥에 닿은 물방울은 아주 작은 시곗바늘 모양으로 퍼졌다가 사라졌다.
오지후는 방송실에서 내려온 뒤 말이 없었다. 그는 손등의 흉터를 만지며 창밖만 보고 있었다.
"지후야."
이수가 불렀다.
그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돌렸다.
"어?"
"너 괜찮아?"
"안 괜찮은데 할 수 있어."
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우리 공식 답변 그걸로 하자."
소라가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녀는 시계탑을 그렸다. 금 간 종탑, 검은 물, 운동장에 퍼지는 작은 바늘들. 그런데 그림 아래쪽에 이상한 것이 나타났다. 소라가 그리지 않은 선이었다.
작은 문.
시계탑 밑이 아니라 학교 정문 밖, 횡단보도 너머에 검은 문이 그려졌다.
"이거 내가 안 그렸어."
서진은 스케치북을 들여다봤다.
"학교 밖?"
그 순간 교실 스피커가 켜졌다.
치직.
아이들이 짜증 섞인 소리를 냈다.
"아, 방송 또 왜 저래?"
이번에는 모두가 들었다. 루프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스피커를 올려다봤다.
점심 방송 장비 점검 중입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평범한 방송이었다. 방송부 후배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뒤에 아주 작은 속삭임이 섞였다.
문이 하나 열렸습니다.
서진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문으로 가자."
"지금?"
민재가 카레를 아깝다는 듯 내려다봤다.
"응. 지금."
다섯 명은 교실을 빠져나갔다. 이상하게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담임은 그들을 보았지만 눈이 잠깐 흐려지더니 다시 생활지도부 교사와 이야기했다. 마치 다섯 명이 복도에서 빠져나가는 사실을 세계가 일부러 보지 않는 것 같았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서진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오후 12시 23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동시에 무서웠다. 흐르는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 비는 거의 그쳐가고 있었다. 교문 밖 횡단보도에는 자동차들이 정상적으로 오갔다. 신호등은 초록불과 빨간불을 번갈아 켰고, 편의점 앞에는 학생 둘이 컵라면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횡단보도 가운데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해온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 오래된 디자인의 교복이었다. 1999년의 하복.
그녀는 차들이 자신을 통과하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지 못했다.
소라가 스케치북을 꽉 잡았다.
"그림 속 문 앞에 있던 사람."
여학생은 서진 일행을 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을 찾아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입모양은 분명했다.
이수가 낮게 말했다.
"풀려난 이름 중 하나야."
서진은 횡단보도 쪽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 순간 신호등의 숫자가 멈췄다.
17
남은 시간 17초.
차들이 동시에 속도를 줄였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학교 밖의 시간도 어긋나고 있었다.
민재가 중얼거렸다.
"우리 학교 안에서 끝낸 거 아니었냐?"
서진은 여학생의 눈을 보았다. 텅 빈 듯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붙잡고 있는 눈.
"아직 시작이었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