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에 갇힌 소년

19화: 정오를 바친 사람
12시 17분.
종소리가 방 안에서 폭발했다.
문하린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녀의 손목에 감긴 붉은 실이 살을 파고들었다. 젊은 유현이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손끝이 닿기 직전, 투명한 벽에 막혔다.
"하린아!"
그의 목소리는 찢어졌다.
강유석은 웃고 있었다. 아니, 웃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이 여러 겹으로 흔들려 정확한 표정을 알 수 없었다.
"정오를 바치면 하루는 돌아온다."
죽은 하린이 서진 옆에서 중얼거렸다.
"저 말에 속았어."
서진은 붉은 실을 잡아당겼다. 손바닥이 베였다. 피가 흐르자 실이 꿈틀거리며 그의 손목에 감기려 했다. 이수가 바로 실을 끊으려 했지만, 손이 닿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 시험지가 펼쳐졌다.
"한이수!"
서진의 외침에 이수는 이를 악물고 환영을 밀어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잖아."
그녀는 자기 손등을 꼬집어 피를 냈다. 붉은 실이 이수의 피에 닿자 잠시 느슨해졌다.
소라가 외쳤다.
"피에 반응해!"
도겸이 우산살을 뽑았다. 검은 금속 끝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각자 실을 잡아. 같은 시간에 당겨!"
민재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 진짜 아픈 건 싫은데!"
"너 무섭다며!"
"무서우니까 더 싫지!"
그래도 민재는 손바닥을 그어 실을 잡았다. 지후도 방송 대본 조각으로 손끝을 베었다. 소라는 떨리는 손으로 연필심을 부러뜨려 손가락을 찔렀다.
다섯 명의 피가 붉은 실에 묻었다.
실은 더 이상 한 사람의 후회를 먹지 못했다. 서로 다른 후회, 서로 다른 시간이 얽히자 실은 방향을 잃은 뱀처럼 꿈틀거렸다.
강유석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너희는 정오를 이해하지 못한다."
서진이 이를 악물었다.
"이해하기 싫어."
그들은 동시에 실을 당겼다.
하린의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젊은 유현이 그녀를 받아냈다. 둘은 바닥에 굴렀고, 시계 장치가 거칠게 흔들렸다.
강유석이 처음으로 분노했다.
"그 아이는 죽어야 해. 그래야 하루가 열린다."
현재의 강유현이 앞으로 나섰다.
"형."
그 목소리에 강유석이 멈칫했다.
"유현아."
"왜 그랬어?"
유석의 얼굴이 흔들렸다. 겹쳐 있던 얼굴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지친 고등학생의 얼굴이 남았다.
"너를 살리려고."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유현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유석은 1998년에 같은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중학생이던 유현은 사고로 죽을 예정이었다. 유석은 동생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정오를 바쳤다. 하지만 탑은 그에게 동생을 살려주는 대신, 정오를 반복해 먹는 문지기가 되라고 했다.
"처음엔 하루만 반복됐어. 그런데 누군가 또 시간을 멈추고 싶어 했고, 또 누군가 후회를 바쳤지. 탑은 점점 커졌어."
유석은 하린을 보았다.
"저 아이는 나처럼 될 뻔했어. 그래서 내가 대신 문이 되게 하려고 했다."
민재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게 더 나쁜 거잖아."
"알아."
유석은 웃었다. 이번엔 정말로 울고 있는 얼굴이었다.
"오래 갇히면 나쁜 선택을 덜 나쁜 선택이라고 부르게 돼."
유현이 한 걸음 다가갔다.
"형이 날 살린 거야?"
"응."
"그럼 왜 나까지 여기 갇히게 했어?"
유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답이었다.
동생을 살리고 싶었던 마음은 진짜였지만, 혼자 남기 싫었던 마음도 진짜였다. 사랑과 두려움은 같은 실에 묶여 있었다.
종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번엔 방 전체가 갈라졌다. 하린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과거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수가 빠르게 말했다.
"하린 선배가 죽지 않으면 루프의 시작점이 바뀌어요. 하지만 탑 자체는 아직 살아 있어요."
지후가 방송 장비의 잡음을 들으며 고개를 들었다.
"심장은 따로 있어. 아래가 아니라 위."
소라가 스케치북을 펼쳤다. 종이에 시계탑 꼭대기 종이 그려졌다. 종 안쪽에는 검은 태양과 같은 문양이 있었다.
"종."
도겸이 말했다.
"열일곱 번째 종소리."
서진은 위를 올려다봤다. 천장이 열리며 거대한 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쪽에 수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지워진 사람들의 이름. 실패한 기억자들. 도겸의 친구들. 유석 이전의 누군가들.
그리고 아직 희미하게 새겨지는 이름 하나.
박소라
소라가 숨을 삼켰다.
서진은 주먹을 쥐었다.
"종을 멈춘다."
유석이 고개를 저었다.
"종을 멈추면 갇힌 이름들이 전부 풀려난다. 하지만 풀려난 시간이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몰라."
"그럼?"
"누군가는 종 안에 들어가 울림을 받아야 한다."
도겸이 조용히 우산을 접었다.
"이번엔 내가 갈게."
유현이 그를 보았다.
"도겸아."
"선배님, 나는 이미 너무 오래 남았어요."
서진은 도겸의 팔을 붙잡았다.
"혼자 가는 거 금지."
도겸은 그를 내려다봤다.
"넌 진짜 말 안 듣는 후배네."
"칭찬이죠?"
도겸은 처음으로 제대로 웃었다.
"그래."
종이 열일곱 번째로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