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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 갇힌 소년18화

정오에 갇힌 소년

정오에 갇힌 소년

18화: 붉은 실의 주인

시계탑 내부는 과거와 현재가 겹쳐 있었다.

한 계단은 깨끗한 1999년의 나무였고, 다음 계단은 녹슨 2026년의 철제였다. 벽에는 아직 긁히지 않은 낙서가 보였다가, 눈을 깜빡이면 "나는 여기 있었다"는 문장으로 변했다.

문하린은 빠르게 올라갔다.

"하린아!"

젊은 유현이 뒤쫓았다. 그는 계단참에서 미끄러져 무릎을 찧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살아 있는 강유현은 자신이 얼마나 오래 이곳에 묶일지 아직 몰랐다.

서진은 그 뒤를 따라가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위에 누가 있어!"

그가 소리쳤지만 과거의 두 사람은 듣지 못했다. 아니, 들었더라도 바람 소리로 여겼을 것이다. 과거는 미래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수가 뒤에서 외쳤다.

"서진, 오른쪽!"

벽에서 검은 시곗바늘이 튀어나왔다. 서진은 몸을 숙였다. 바늘은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 계단 난간에 박혔다.

민재가 욕을 하며 난간을 붙잡았다.

"이 탑 진짜 인성 별로다!"

소라는 스케치북에 빠르게 계단을 그렸다. 그녀가 그린 선이 허공에 놓이며 끊어진 계단을 이어 붙였다. 지후는 방송실 마이크를 손에 쥔 채 중얼거렸다.

"잡음이 커지고 있어. 누가 계속 방송을 켜려고 해."

"막을 수 있어?"

"해볼게."

지후는 마이크 스위치를 켰다. 작은 장비에서 날카로운 하울링이 울렸다. 순간 학생들의 합창 같은 목소리가 끊겼다.

정오가... 정... 치직...

"오지후!"

이수가 그를 붙잡았다. 지후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다는 말 금지."

"그럼 안 괜찮은데 할 수 있어."

이수는 잠시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꼭대기 방에 도착했을 때, 문하린은 이미 검은 인영과 마주하고 있었다.

방 중앙에는 거대한 시계 장치가 있었다. 톱니바퀴들이 벽 전체를 채웠고, 그 사이로 검은 물이 맥박처럼 흘렀다. 창밖에는 멈춰가는 운동장과 두 개의 태양이 보였다.

검은 인영은 하린의 목소리로 말했다.

"늦었어."

하린은 떨리는 손으로 붉은 실을 쥐었다.

"하율이를 살려줘."

"정오를 바치면."

"내가 뭘 하면 돼?"

젊은 유현이 소리쳤다.

"하지 마!"

검은 인영이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없었다. 대신 수많은 얼굴의 윤곽이 겹쳐 있었다. 하린, 유현, 도겸, 소라, 민재, 이수, 지후, 그리고 서진. 아직 일어나지 않은 기억들이 그 얼굴 위에서 깜빡였다.

도겸이 낮게 말했다.

"저게 탑의 심장인가?"

문하린의 환영이 서진 옆에 나타났다. 음악실에서 만난 죽은 하린이었다.

"아니."

그녀는 검은 인영을 보며 말했다.

"저건 첫 번째 계약자야."

"계약자?"

"나보다 먼저 탑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

검은 인영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손목에는 붉은 실이 감겨 있었다. 그 끝은 하린의 손목으로 이어져 있었고, 다시 유현의 손목으로, 도겸의 손목으로, 서진 일행의 손목으로 이어져 있었다.

소라가 속삭였다.

"우리 모두 묶여 있어."

인영이 말했다.

"시간은 혼자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 멈추길 바라야 한다."

이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럼 당신은 누구죠?"

인영의 얼굴이 잠시 선명해졌다.

해온고 교복을 입은 남학생. 낯선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너무 지쳐 있었다.

강유현이 뒤늦게 방에 들어왔다.

현재의 유현이었다. 그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굳어 버렸다.

"형..."

서진이 돌아봤다.

"형이라고요?"

유현의 입술이 떨렸다.

"강유석. 내 형이야. 해온고에서... 1998년에 실종됐어."

죽은 하린이 조용히 말했다.

"탑은 내가 시작한 게 아니야. 나는 문이었고, 유석 선배는 열쇠였어."

검은 인영, 강유석이 웃었다.

"유현아. 아직도 여기 있구나."

현재의 유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이 다시 선명해졌다.

유석은 살아 있는 하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 동생을 살리고 싶지?"

하린은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오를 줘."

서진은 달려들었다.

"안 돼!"

이번에는 과거의 하린이 그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 과거와 미래가 연결됐다. 하린은 서진을 보며 물었다.

"너는 누구야?"

서진은 숨을 몰아쉬었다.

"당신이 구하려고 한 내일에서 온 사람."

하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틈에 강유석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붉은 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종이 울렸다.

12시 17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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