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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 갇힌 소년17화

정오에 갇힌 소년

정오에 갇힌 소년

17화: 1999년 6월 14일

1999년의 학교는 냄새부터 달랐다.

분필 가루와 나무 책상 냄새, 흙먼지, 오래된 왁스 냄새가 섞여 있었다. 복도 창문은 지금보다 낮았고, 벽에는 낯선 표어가 붙어 있었다.

성실한 오늘이 밝은 내일을 만든다.

민재가 표어를 보며 중얼거렸다.

"여긴 오늘이 너무 성실해서 문제인데."

아무도 웃지 못했다.

운동장에서는 1999년의 학생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으로 멈추지 않은 과거였다. 남학생들이 축구공을 차고, 여학생들이 매점 앞에 줄을 섰고, 교사들이 교무실 창문을 열었다.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

그러나 하늘은 이상했다.

태양이 두 개였다. 하나는 정상적인 태양, 다른 하나는 시계처럼 검은 원형의 태양이었다. 검은 태양은 12시 17분을 향해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이수가 손목시계를 봤다.

"11시 43분."

"정오까지 17분."

지후가 말했다.

"아니, 여기선 12시 17분까지 34분."

서진은 시계탑을 보았다. 1999년의 시계탑은 지금보다 깨끗했다. 벽돌은 덜 낡았고, 철문에도 녹이 없었다. 그 앞에 문하린이 서 있었다.

아니, 방금 음악실에 있던 문하린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문하린.

그녀는 손목에 붉은 실을 감고, 시계탑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작은 남자아이 사진이 쥐어져 있었다. 동생 문하율일 것이다.

서진이 달려가려 하자 도겸이 팔을 붙잡았다.

"조심해. 과거는 우리를 모른다."

"말 걸면 안 돼?"

"말 걸 수는 있어. 하지만 하린 선배의 선택을 억지로 바꾸면 탑이 더 빨리 깨어나."

"그럼 뭘 해야 해?"

도겸은 시계탑 위를 가리켰다.

"탑이 처음 목소리를 낸 순간을 찾아야 해. 누가 하린 선배에게 '정오를 바치라'고 속삭였는지."

그때 운동장 반대편에서 소란이 일었다. 한 남학생이 하린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교복 셔츠가 반쯤 빠져 있었고, 손에는 낡은 카세트 녹음기가 들려 있었다.

"하린아!"

문하린이 돌아봤다.

"유현아?"

강유현.

서진은 숨을 삼켰다. 젊은 강유현은 지금의 유현보다 훨씬 밝은 얼굴이었다. 아직 그림자를 잃지 않은,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

유현은 하린 앞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가지 마. 방금 이상한 방송 들었어. 네 목소리였는데 네가 아니었어."

"무슨 소리야?"

"시계탑에 들어가면 하율이를 살릴 수 있다고 했잖아. 그거 거짓말이야."

하린의 얼굴이 굳었다.

"네가 어떻게 알아?"

유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녹음기를 내밀었다.

"들어봐."

녹음기에서 잡음이 흘렀다.

정오를 바치면 하루를 돌려주겠다.

분명 하린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하린은 그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이수가 낮게 말했다.

"미래의 하린 목소리."

지후가 창백해졌다.

"내가 들었던 것과 같아.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리는 방식."

민재가 이를 악물었다.

"그럼 탑이 하린 선배 목소리로 하린 선배를 속인 거야?"

소라가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녀는 빠르게 시계탑 위쪽을 그렸다. 종탑 안 어둠 속에 사람 모양의 빈칸이 나타났다.

"아니. 누군가 있어."

그림 속 빈칸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서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시계탑 3층 창문 뒤, 정말로 누군가 서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손목에 감긴 붉은 실은 보였다.

문하린과 같은 붉은 실.

살아 있는 하린은 유현의 손을 밀어냈다.

"하율이가 죽는 걸 그냥 보라고?"

"같이 막자. 탑 말고 다른 방법으로."

"시간이 없잖아!"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늘 시간이 없었어. 엄마 아빠는 일하느라 없고, 나는 하율이 데리러 가야 하고, 시험도 봐야 하고, 웃어야 하고, 괜찮아야 하고..."

하린은 울고 있었다.

"오늘만이라도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그 말에 서진은 가슴이 아팠다. 너무 많은 것을 혼자 감당한 사람의 말이었다.

시계탑 위의 검은 인영이 움직였다.

유현이 하린을 붙잡는 순간, 종이 울렸다.

뎅.

아직 12시가 아니었다.

도겸이 소리쳤다.

"시작됐다!"

1999년의 학생들이 하나둘 멈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전히 멈추진 않았다. 몸은 굳었는데 눈동자만 움직였다. 수백 개의 눈이 동시에 시계탑을 향했다.

그리고 모두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오가 오면 문이 닫힙니다.

하린이 시계탑 안으로 뛰어들었다.

유현이 뒤따랐다.

서진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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