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에 갇힌 소년

16화: 남는 사람
"또 한 명이야?"
민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왜 여기선 뭐만 하면 한 명씩 남고 사라지고 잃어버리는데?"
문하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할 자격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음악실 벽 뒤로 드러난 톱니바퀴들은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검은 문이 있었다. 문고리는 없고, 대신 다섯 개의 손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이수가 말했다.
"조건을 정확히 말해주세요."
"다섯 명이 손을 대면 문이 열려. 하지만 시간은 균형을 요구해. 2026년의 누군가가 1999년에 남아야 탑의 심장으로 갈 수 있어."
"남는다는 건 죽는다는 뜻이에요?"
"아니."
하린은 고개를 저었다.
"1999년 6월 14일 정오를 반복하게 돼. 너희가 나를 만나기 전까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침묵이 내려앉았다.
서진은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누군가가 남아야 한다면 자신이어야 했다. 애초에 처음 루프를 기억한 것도 자신이었다. 이 일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인 것도 자신이었다.
그런데 입을 열기 전, 이수가 말했다.
"제가 남을게요."
"뭐?"
서진이 그녀를 돌아봤다.
이수는 담담했다.
"내가 제일 오래 버틸 수 있어. 기록도 가장 잘 정리할 수 있고, 감정적으로 흔들릴 가능성도 낮아."
민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야, 방금 네 방에서 오답 찢고 나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그래서 말하는 거야. 내가 늘 쓸모 있는 선택만 하려고 했으니까, 이번엔 내가 선택할래."
소라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지후도 말했다.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문하린은 슬픈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
"다들 그렇게 말했어."
도겸이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는 하린을 보지 않았다.
"나도 남겠다고 했었지. 그런데 결국 제일 약한 애가 남았어.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라 탑이 선택하게 내버려 뒀으니까."
서진은 도겸의 말에서 뭔가를 붙잡았다.
"탑이 선택하게 내버려 뒀다?"
도겸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서로 미루다가 시간이 끝났어. 그러자 탑이 가장 많이 지워진 애를 잡아갔지."
소라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가장 많이 지워진 사람은 그녀였다.
서진은 검은 문을 보았다. 다섯 개의 손자국. 균형. 한 명이 남아야 한다는 조건.
"혹시 한 명이 전부 남아야 한다고 했어요?"
문하린이 눈을 깜빡였다.
"무슨 뜻이야?"
"시간이 균형을 요구한다면서요. 2026년의 누군가가 1999년에 남아야 한다고 했고."
이수가 바로 이해했다.
"존재 전체가 아니라 시간 일부."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다섯 명이 각자 가장 후회하는 시간을 이미 지나왔어. 그 시간을 조금씩 남기면?"
민재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게 가능해?"
하린은 당황한 듯했다.
"그런 시도는..."
"해본 적 없죠?"
서진이 물었다.
문하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도겸이 천천히 웃었다. 기쁜 웃음은 아니었다. 너무 늦게 도착한 가능성을 보는 사람의 웃음이었다.
"멍청한데 괜찮네."
"칭찬이야?"
"내 기준에선."
이수는 빠르게 정리했다.
"각자의 후회에서 얻은 물건이 있어. 서진의 이름표, 소라의 그림, 민재의 농구공 조각, 내 찢어진 답안지."
지후가 주머니를 뒤졌다. 그는 작은 방송 대본 조각을 꺼냈다.
"나도 있어. 내 방에서 나왔어. 내가 처음 거짓 방송을 한 날의 대본."
다섯 명은 문 앞에 섰다.
문하린은 그들을 막지 않았다. 다만 말했다.
"시간 일부를 남긴다는 건, 그 후회를 잊는다는 뜻일 수도 있어."
서진은 어린 시절 이름표를 보았다. 엄마가 늦게 왔던 날. 상처였지만, 동시에 엄마가 끝내 왔다는 기억.
"잊고 싶어서 놓는 게 아니에요."
그는 이름표를 첫 번째 손자국에 대었다.
"앞으로 가려고 놓는 거지."
소라는 그림을, 민재는 깨진 농구공 조각을, 이수는 답안지를, 지후는 대본 조각을 손자국에 올렸다. 검은 문이 숨을 쉬듯 부풀었다.
다섯 개의 물건이 빛으로 변해 문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1999년의 햇빛이 쏟아졌다.
문하린이 작게 속삭였다.
"처음이야."
서진은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럼 처음으로 성공해보죠."